등산

2.25 대피소 - 보국문 - 정릉, 정 박사와

PAROM 2023. 2. 26. 09:32

자주 함께 산길을 걸었던 정 박사와 올 들어 처음 만나 북한동에서 대피소, 동장대, 대동문을 지나 정릉 청수장으로 걷고 광장시장에 가서 소원했던 빈대떡을 먹고 나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출출해져서 마신 막걸리 한 병에 얼큰하다.(이번주는 안산에 가지 않아서 여유가 있었지만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이제 주식에서 손을 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본전 생각에 질질 끌리다보니 생활이 영 잘못 흐르고 있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집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어서 털고 이제는 내 생활로 돌아가야겠다.) 
 
정 박사와 같이 산에 간다는 것을 안 아내가 샌드위치 두 개를 만들어 놓고 출근을 했다. 다른친구들을 산에서 만난다고 하면 술 좀 조금만 마시라는 둥 잔소리 일색인 아내가 정 박사에게 만큼은 환영 일색이다. 젠틀맨인데다 만날 때마다 늘 맨 정신에 일찍 집에 들어와서 그런가 보다고 짐작하고 있다.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려는데 앞 차가 그냥 떠나서 조금 늦겠다고 문자가 왔다. 그 늦는 만큼 늦게 집을 나섰다. 
 
구파발역에 내려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날이 쌀쌀해 춥다. 늘 계절이 바뀌는 이맘 때가 더 춥게 느껴진다. 기다리는 잠깐, 정거장 안의 철제의자에 앉으니 엉덩이가 뜨끈한 것이 늘어질 듯 하여 참 좋다. 이대로 있고 싶다.
바로 도착한 정 박사를 만나 주말버스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궁금한 것과 할 말이 많다. SNS나 친구들을 통해 들은 소식과는 다른 팔딱거리는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이 필요했던 거다.(졸려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젠 전과 같지 않아 늦어 지고, 더뎌 지고, 힘들어 지고, 고집 쎄 지고, 서러워 지고, 보고 싶어 지고, 외로워 지고, 잊고 잊혀져 간다. 세월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다가 그냥 엎어져 자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할 일을 마치고 난 기분이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물소리가 밝고 크게 들린다.아직은 아침 기온이 영하라 그런지 계곡 곳곳에 얼음이 남았고 길의 돌틈과 물이 흐른 응달은 어두운 반짝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곳을 잘못 딛었다가는 미끄러져 다치기 십상이다. 부지런한 물고기들은 벌써 일어나 바삐 꼬리깃을 흔들고 있다. 이른 아침의 산속 하늘과 계곡은 맑지만 차갑게 얼어 붙었다. 자주 보이던 까만 새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속을 헤치며 둘이 좁은 계곡길을 올랐다. 
 
산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한겨울을 지내고 이제 바깥 나들이를 시작했나 보다. 역사관 앞 데크 위의 의자가 꽉 차서 바위에 배낭을 내려 놓고 겉옷을 벗어 넣으며 보니 물을 넣지 않았다. 생각만 하고 그냥 집을 나왔다. 이제 한두 가지 잊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정 박사가 물 한 병을 건네 주었다. 어디로 걸을까 하다가 문수봉을 오르기로 했다.  거기서 행궁지로 내려오면 10.7키로고 남장대지능선의 전망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산길을 오르며 얘기하다가 광장시장 말이 나왔고 그리 가기로 했다. 그러러면 수유리나 정릉으로 내려가야 가기 편하다. 능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들은 다 경사가 급하고 그래서 6짧다. 내려가기 전에 최대한 길게 걷기 위해 대피소로 올랐다.  
 
대피소에 오르니 이미 두 팀이나 쉬고 있다. 한 팀은 자리를 잡고 막걸리병까지 꺼내 놓았다. 대피소 한켠에 서서 따스한 둥글래차를 한 잔 마시고 단감을 먹으니 참 달고 시원하고 아삭하다. 한겨울 동안 나는 과일을 갖고 다니지 않았다. 추운데 찬 과일을 먹으면 더 추워져서 그랬는데 이제는 가지고 다녀야겠다.
우리가 떠날 즈음 도착한 두 명 중 수염을 기른 이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산 아래 산다고 했더니 고향이냐며 옛날에 짐승들 다  잡아 먹었냔다. 친구가 일제가 몰살한 호랑이 빼고 다 잡았다고 답했다. 참 실없는 친구다. 하긴 어렸을 적 신원리 장마철 냇가의 피라미와 도랑의 붕어, 미꾸라지는 다 내 차지였었다. 옛 생각에 작은 미소가 스쳤다. 
 
대피소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평온한 길을 멧돼지들이 다 파헤쳐 놓아 울퉁불퉁해 졌다. 자칫 헛디뎌 발목을 삐기 쉽게 되었다. 멧돼지들이 산 전체를 다 뒤집고 있다. 개체수가 늘어나서 일텐데 먹이가 부족해지면 사람들과 맞닥드려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대책이 필요하겠다. 
 
주능선 성곽길에 아직 숨은 얼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낮의 영상 기온에도 살아 남은 얼음들을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보다 한 시간도 늦지 않았는데 산에 사람들이 참 많았다. 평소 내가 산을 걷는 시간에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인데 조금 늦으니 거의 젊은이들이고 외국인들도 많다. 이제부터는 조금 늦게 산을 걸을까? 
 
보국문에서 능선길 따라 걷기를 마치고 청수장으로 내려섰다. 정오가 지나지 않은 것으로 알았는데 한참 지나 있었다. 정 박사는 이 길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급경사의 돌계단이 한참 이어지고 급경사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돌계단이다. 내려가는 길 2.5키로 중 거의 2키로가 그렇다. 무릎이 좋지 않으면 수유리,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들과 함께 피해야 한다. 하긴 북한산 대부분의 산길이 돌길이긴 하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는 흙길이 반갑다. 
 
내려오는 길에서 처음 만나는 볕이 드는 너른 공터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벗었다. 맛있는 커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일어서며 보니 낮은 곳에 휴지가 많다. 보기 참 나쁘다. 소변을 보려니 윗쪽에서 여자 둘이 내려오는 것이 보여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옆 길가 바위에 앉아 다리를 만진다. 쉽게 일어날 기세가 아니다. 참고 그냥 내려가야 한다. 땀을 많이 내면 산 속을 걷는 동안 화장실을 찾지 않는데 오늘은 땀을 내지 못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점심 후에 2키로 정도를 더 내려와서 산행을 마치고 143번 시내버스를 타고 원남동에서 내려 종로5가 광장시장으로 갔다. 시장 안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가끔 여길 오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기는 처음이다. 밀려서 떠다니는 느낌이 이럴까? 순이네빈대떡 두 곳 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누이네로 갔는데 여기도 줄이 길었다. 다른 곳으로 갈까 했지만 줄 끝에 가서 붙었고 한참을 기다린 후 입장! 모듬과 꼬마김밥 그리고 장수막걸리 하나씩. 처음 생각 같아서는 이것저것 마구 먹을 수 있었는데 모듬을 조금 남기고 말았다. 느끼함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즐거운 산행에 오래 갈망했던 빈대떡을 먹고 나니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정 박사가 더욱 고맙다. 
 
평촌으로 가야하는 친구와 같이 지하철을 탄 후 종로3가역에서 내가 먼저 내려서 집으로 오니 새 현장으로 첫 출근을 한 아내보다 내가 먼저 집에 왔다. 퇴근하며 막걸리 두 병을 사온 아내가 더욱 고맙다.

 

 

 

오늘은 집에서 8시10분이 넘어서 나왔다. 평소보다 50분 정도 늦게.

산 입구에 사람들이 참 많다. 시간이 이르지 않아서 일 것이다.

계곡폭포의 얼음이 많이 얇아졌다.

역사관 앞 데크 의자가  만원이라 이 바위에 배낭을 내려 놓았다.

중성문 아래 계곡. 얼음이 거의 다 녹았다.

중성문

옛길로 오르다 더워서 옷을 벗어 넣은 후 나월봉을 배경으로 한 컷.

산영루 앞에선 정 박사

산영루 옆 와폭에서

봉성암과 대피소 갈림길 계곡.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대피소에 올랐다.

동장대 앞 전망대의 전망

동장대

대동문 위 봉우리의 제단 뒤에 선 정 박사. 제물이 없어서 시산제를 못했다.

제단 뒤 성벽에서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보인다.

아직은 보국문과같이 공사 중인 대동문

칼바위 앞에서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국문

점심을 한 후 같이 한 컷. 이날 유일하게 같이 찍은 사진이다.

정릉으로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