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7.8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3. 7. 9. 08:30

3.18일에 갔었으니 아주 오랫만에 문수봉에 다시 올랐다. 이렇게 오래 문수봉에 가지 않기는 북한산에 다니고 나서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반가웠는지 문수봉에 오르자마자 구름이 사라지며 환상적인 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오후에 친구들 모임이 서울시청역 근처에 있다. 지금 거길 가는 전철안이다. 눈수술을 하고 나서 북한산을 제대로 보질 못했다. 가지도 못했고 가더라도 눈이 시원치 않아서 였고 오늘도 역시 잘 보질 못했다. 언제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는지....
모임이 있어서 집 근처의 고봉산이나 심학산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다음주부터 장마가 계속되는 된다는 것을 보고 오늘 북한산행을 결정했다. 대신 일찍 마쳐야 한다. 그러려면 일찍 산에 가고 걷는 거리도 짧게 해야 할 터였다. 
 
5시에 일어났다. 북한산에 간다고 하자 그냥 동네 산에나 다녀와서 모임에 가라고 한다. 그렇게 말 할 줄 알아서 대꾸를 안했다. 내 반응이 없으니 수박과 참외를 깎아 담고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난 냉장고에서 찬 물만 한 병 챙기면 된다. 아침을 먹고 탄현역으로 가니 6시 반도 되지 않았다. 열차 안에서 주말버스를 검색하니 8시 부터 운행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면 이말산을 넘거나 송추 가는 차를 타야한다. 구파발에 내리니 8분 후에 버스가 온단다. 줄 서서 기다렸는데 다른 버스들 뒤에 정차하는 바람에 또 만원버스에 낑겨 서서 갔다. 그래도 나중에 탄 덕에 먼저 내려 앞장 서 산으로 들어갔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오래간만에 시원스런 물소리가 들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기온이 23도라 시원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봉우리는 구름이 감싸고 있다. 밖에 나갔다 온 아내가 빗방울 떨어진다고 해서 우산을 넣었으니 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른 시간인데 등산객이 많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것이 숨바꼭질 하는 것 같다. 계곡을 오르는데 가끔씩 허리가 존재감을 나타낸다. 운동을 잘 하고 있고 컨디션도 이제 눈수술하기 전으로 돌아왔는데 왜 그러지? 앞에 보이는 이들을 하나 둘 지나치다 보니 역사관에 닿았다. 여기서 데크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썬그라스 꺼내 쓰고 간다.  
홍대앞역 도착이다. 환승해야 한다. 
 
(22:16) 집으로 가는 홍대입구역
뭔 사람들이 이리 많냐? 지금 허리가 아픈데 집에 가려면 난 죽었다.  
 
자주 만나서 늘 같거나 비슷한  얘기를 하지만 항상 재밌고 새롭고 웃기는 얘기다. 지금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고 말들이었는데 그땐 했다. 그렇게 즐겁게 놀았고 학교 졸업 후 이리 잘 살고, 반갑게 만나는 친구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리 생각하니 이 친구들의 친구가 되어 난 참 복 받았다. 친구들이 모두 집에 잘 들어가길 빌며 등산 얘기를 다시한다. 
 
주차장 앞에서 지나쳤던 비슷한 연배의 아낙이 거리를 유지하며 계곡을 계속 따라왔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간격을 더 벌릴 수 없다. 다행이도 역사관이 가까워지자 보이지 않았다. 늘 하던대로 데크 위의 의자에 배낭을 벗어 놓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쉬는데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살펴보니 백운대 방향이다. 다행이다. 조금 더 쉬다가 선암사 비탈길을 올랐다. 이 비탈을  오르면 편한 길이다. 노적사 입구의 정자를 지나 아무도 없는 옛길로 올랐다. 앞 발을 땅에서 떼고 고개를 들자 나월봉이 구름에 쌓인 모습이 보인다. 요즈음 이 길은 산영루까지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산영루를 지나며 헬스장 친구가 알탕을 했던 곳을 찾았으나 어딘 지 모르겠다. 일찍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대피소로 갈까 하다가 대남문을 향했다. 오랜만에 왔으니 바빠도 남장대지와 그 아래 의상능선을 발 아래로 보고 싶었다. 그늘이 진 길에서 썬그라스를 끼니 세상이  어둡지만 선명하게는 보였다. 서늘한 기운 덕분에 아직 손수건을 다 적시지는 않았지만 이제 적셔야 할 때다. 청수동암문으로 가는 이 길로 들기 전에 물을 만났을 때 적셔야 했었는데 내 게으름이 또.... 
 
요새 자주 걷는 행궁지 윗길을 보기만 하고 뒷 길로 향했다. 이 길에는 물이 있어서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물 앞에 쭈그려 앉아 세수도 하고 손수건도 적셨다. 행궁지 뒷길은 다니지 않은 동안 무척 험해져 있었다. 나무계단이 여러 칸씩 없어졌는데도 사람들은 잘도 다니고 있다. 나만 힘들어 하고 있다. 이 길에서 여러 명을 마주쳤다. 참 부지런한 이들이다.
동장대가 마주 보이는 바윗길을 네 발로 올라서니 삼각산을 휘감고 있던 구름이 흔들리며 내앞으로 달려온다.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능선으로 오르는 조금 남은 길이 뿌옇게 변하며 얼굴에 찬기운이 닿았다. 나무 아래의 바위들이 나뭇잎에서 떨어진 물방울에 젖어 미끄럽다. 
 
산을 청소하거나 일을 하는 국립공원직원들이 부럽다. 내내 산에 있으며 급여도 받으니 내가 보기엔 환상적인 직업이다. 안 되겠지만 자원봉사자 모집에 지원할까 보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사방이 하얗게 막혔다. 그래도 숲길은 포근하고 아련하다. 저 아래 의상능선의 봉우리들과 건너편 주능선이 보이지 않지만 구름속을 걷는 기분이 삼삼하다. 자주 만날 수 없는 몽환적인 풍경이 문수봉까지 이어졌다. 상원봉에서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길을 성곽으로 잡았다. 바위들이 젖어 있어서 미끄러져 넘어지면 내 발로 산을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바윗길로 문수봉에 힘들게 올라 비봉능선 방향을 바라보는데 구름이 북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며 살짝살짝 산봉우리를 보여준다. 살아 있는 산수화를 보는 듯한 멋진 모습이 대남문으로 내려올 때까지 이어졌다.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산에 많이 다녀도 몇 번 볼 수 없는데.... 오랜만에 본 문수봉이 내가 무척 반가워서 선물을 한 것이리라.  
 
대남문에서 바로 내려가려다 너무 밋밋한 것 같고 시간도 일러 성곽을 따라 대성문으로 향했다. 이 돌계단길을 오르는 것도 이젠 무릎을 짚어가며 온 힘을 짜내야 한다. 내 힘으로 산길을 오를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활기 넘치게 지나치는 젊은이들을 부럽게 바라본다. 나도 저 때가 있었음을, 그 때 조금 더 즐겁게 적극적으로 살았었으면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 스친다. 대성문에 내려와 마루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계곡길로 내려섰다. 늘 조심하게 되는 미끄러운 길이다. 다른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에 아직 구름이 남아 숲에 하얀 기운을 담아 놓았다. 
 
이제 부지런히 내려가 집에서 씻고 모임에 가야 한다. 물을 건너는 곳 마다에서 손수건을 적셔 목에 두르고 걸었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돌길이 다 젖어 미끄럽다. 바삐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길이 더 길어진 느낌이다. 등산객들이 많아져 있는 대피소쪽 가파른 산길을 봉고트럭이 내려오는, 산과 맞지 않는 풍경에 적응이 되지 않아 산영루 앞까지  피해주지 않고 걸었다. 전에는 가끔씩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쳤으나 이젠 어렵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지나치는 이들을 썬그라스 너머로 한 번씩 본다. 그렇게 내려오다가 역사관 앞에서 한 번 더 쉬고 계곡길로 내려왔다. 역사관 앞에서 물병을 비웠기에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시원한 드래프트 하나를 사서 의자에 앉아 마시니 부러울 것이 없다. 늘 이 맛이 그리운 것도 산에 오는 큰 이유다. 좋은 친구와 같이 하면 더 큰 즐거움이 된다. 이제 좋은 친구들 보러 가자!

 

 

산에 왔다. 이제 올라 가자.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있다.

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

계곡폭포에 물이 넘친다. 그래도 큰물이 지지 않아 바위가 검다.

중성문으로 가는 길의 데크 아랫길

중성문을 지나 노적교로 가는 길

행궁지 갈림길 아래 계곡

행궁지 뒤의 나무계단. 보수가 필요한 듯 한데....

네발을 써야 오를 수 있는 바위를 넘어서면 삼각산이 다가왔는데 오늘은 구름이 다가왔다.

구름이 금방 몰려 왔다.

물방울에 젖은 이 바위를 넘어서면 곧 남장대지능선이다.

남장대지능선의 푹신한 흙길

청송대 바위틈에 숨어 핀 꽃

구름 속에 의상능선이 숨었다.

상원봉의 표지판에 새 이정표가 추가 되었다. 여기서 내려가는 바윗길이 젖어 오른쪽에 보이는 성곽을 따라 내려갔다.

청수동암문 앞도 구름에 묻혔다.

문수봉에 오르자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남문은 아직 구름 속이다.

대성문에 내려왔다. 이제 계곡으로 내려갈 거다.

대성암 대문이 열려 있어서 독경소리가 더 잘 들렸나 보다.

물을 건너는 징검다리

경리청상창지 앞 길

여기서 바라보는 원효봉이 절 처마와 어울려 멋진 모습이었는데 계단을 없애고 담을 친 바람에 답답해 졌다. 연등은 왜 지저분하게 두고 있는지. 담을 칠 돈으로 본전에 단청을 하거나 힘든 중생을 위한 일이 더.... 절에 드는 길을 없애는 것이 바른 일인지....

다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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