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하고 볕이 쨍쨍한 날에 산 꼭대기에 오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간 적이 오래되어 땀과 피로를 무릅쓰고 남장대지능선을 지나 문수봉을 올랐다가 보국문에서 내려왔다. 일정표를 보니 6월부터 지난주까지 산에 제대로 간 날이 한두 번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늘은 높은 능선을 제대로 걸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러려면 더워지기 전에 최대한 높이 가야겠다고 생각해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눈을 뜨니 5시다. 아내도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보온병에 얼음을 담고 참외도 깎아 담아 놓아 나는 배낭에 꾸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냥 빵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출근하는 이에게 고맙다. 집을 나서려다 열차시간표를 보니 조금 늦게 나서도 여유가 있게 6:59 차를 탈 수 있다. 이 시간대에는 승객이 적어 자리도 많이 비어있다.
꼭대기까지 간다는 마음으로 계곡으로 들어가니 갈 길이 멀게 느껴지며 비장해진다. 8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직은 선선하다. 보름만에 다시보는 계곡과 숲들이 반갑다. 태풍이 몰고온 비에 계곡바닥의 검은 이끼들이 많이 벗겨져나가 깨끗해졌다. 비가 내린지 오래되지 않아 수량도 적지 않고 물소리도 상쾌하다. 이른 시간인데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실려온 물방울에 얼굴이 시원해진다. 그래도 옷은 젖어 들어갔다.
역사관 앞에서 배낭을 벗고 물을 한모금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썬그라스를 꺼내 모자에 올린 후 다시 걷는다. 선봉사 앞 비탈길을 오르는 일이 버겁다. 9시 전인데 물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있다. 나도 그냥 저렇게 시원한 계곡물에 온 몸을 적시고 싶다. 이미 옷은 다 젖었다. 몸이 좋은 젊은이가 나를 휙 스쳐 지나간다. 이젠 경쟁하지 않는다. 이길 수도 없다. 내가 젊은이들을 이겨서도 안된다.
벌써 내려오는 이들을 여러 팀 만났다. 참 부지런한 이들이다. 저 앞에 가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지나치며 얼굴을 곁눈으로 본다. 내가 나이가 든 축에 속하는지 확인한다.
대피소로 갈까 하는 생각에 머리를 흔든다. 오늘은 반드시 행궁지를 지나 문수봉으로 간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내내 더위를 느끼지 못했는데 갈림길을 지나 행궁지길로 올라서니 덥다. 게다가 바람도 없다. 길 가장자리를 멧돼지들이 다 파헤쳐 놓았다.
행궁지를 돌아오르는 길 중간 쉼자리에서 숨을 돌리며 스틱을 폈다. 두 발로만 오르기엔 너무 힘이 든다. 중간쯤 올라가자 얼굴에 닿는 공기가 덥다. 나무들 사이로 지나는 좁은 길에 거미가 밤새 친 거미줄이 자꾸 얼굴에 감긴다. 드디어 건너편 의상능선이 보이고 나월봉이 하얀 얼굴을 보이며 웃는다. 기운을 내란다. 조금만 더 가면 능선에 오른다고. 스틱에 몸을 의지하고 오르니 확실히 다리가 편하다. 이길은 스틱이 없으면 무릎을 짚으며 오르던 곳이었다. 이제 주변에 핀 이름 모를 여름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 예쁘다. 산 위에 있어서 더 고운 것 같다.
힘들게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어지럽다. 기운을 너무 많이 썼다. 이 무덥고 쨍쨍하고 바람 없는 날 비 오듯 흐르는 땀과 함께 해낸 것이 뿌듯하다. 왼쪽에 길게 펼져진 주능선과 오른쪽의 하얀 의상능선을 번갈아 보며 편안한 길을 걷는다. 우리동네는 희미한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상원봉에서 성벽을 따라 청수동암문을 내려오는 길이 무성하게 자란 나뭇가지와 잎들에 전부 가려져 가지를 헤치며 걸어야했다.
오랜만에 오른 문수봉. 벌써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날씨가 맑아 멀리까지 보인다. 쉬며 젖은 옷을 말리려 했는데 볕이 너무 따갑다. 그늘로 들어가 쉴까 하다가 대남문으로 내려섰다. 성벽을 따라 대성문으로 향한다. 이제 스틱은 나와 한 몸이 되었다. 한결 수월하게 바위길을 올랐다. 볕에 눈이 부셔 썬그라스를 끼고 길을 걷는다. 한결 길이 잘 보인다. 이틀 전에 갔던 안과에서 눈이 이제 안정되는 것 같다며 한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수술한 눈의 시력이 돌아오지 않아 보이는 풍경이 어지럽다. 대성문 지붕아래 마루 빈 자리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행궁지 갈림길에서 문수봉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이제 등산객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땀을 식히고 보국문을 향해 다시 걷는다. 다행스럽게도 보국문까지 며칠 전 지나간 태풍의 흔적이 없다. 보국문에서 다시 쉬다가 정릉 청수장에서 올라온 눈비돌을 만났다. 같이 북한동으로 내려오다가 알탕을 했다. 참 시원하다. 그런데 바닥에 가라 앉았던 부서진 나무잎들이 떠올라 물이 지저분해졌다. 한참을 물속에 들어앉았다 나왔다. 귀찮아서 모기약을 뿌리지 않았더니 일어나기 전까지 두세 곳을 물렸다. 아내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와 참외, 얼음물을 마시고 옷이 젖은 상태로 다시 산길로 나왔다. 멀고 긴 길을 내려와 다시 계곡입구에 서니 2시가 넘었다. 산속에서 6시간을 넘게 있었다. 쉬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산속에 오래도 있었다. 산입구의 식당들을 그냥 지나쳐 구파발역 근처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 하고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 덥고 힘이 든다. 지쳐 쓰러지겠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막걸리 한 병에 그냥 쓰러져 눈을 뜨니 아침이다. 더운날 제대로 힘을 썼다.
08:03 오랜만에 제대로 한번 걸어보자.
수문터 앞의 벌개미취 밭
폭포에 물이 제법 있다.
폭포 계단에서 내려다 본 계곡의 모습
역사관 앞.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다.
중성문.
산영루
능선 바로 아래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너편 주능선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나월봉
청송대에서 보는 삼각산과 주능선
의상능선과 그 너머의 고양시
상원봉에서 보이는 삼각산
상원봉의 이정표와 정랑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벽길에서 보이는 문수봉
문수봉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성벽길에서는 비봉능선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
청수동암문 앞으로 보이는 구파발
문수봉에서 보는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삼각산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대남문
대성문. 저 사람들 틈에서 쉬었다.
보현봉과 지나온 능선
건너편에 남쪽전망대가 보인다.
남쪽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지나온 능선길이 이자리에서 한 눈에 보인다.
원효봉, 염초봉, 삼각산
북쪽전망대. 나무가 가지와 잎이 무성해져 전망이 많이 가렸다.
보국문. 공사기간이 참 길다.
올 여름에 알탕을 즐겼던 작은 소
14:08 다 내려왔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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