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31 보국문 - 대피소

PAROM 2024. 1. 1. 12:44

2023.12.31(일) 오늘은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려서 망설이다가 8시 넘어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것을 보고 방수배낭을 꺼내 짐을 옮겨 담고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 27일 낮에 온 손주들이 엿새를 집에 있는데 아들이 토요일 낮에 오는 바람에 30일 등산이 미뤄졌다.  29일에 친구들을 만나 놀다 온 것도 일요일에 산행을 하게 된 작은 이유였다. 배낭을 바꾸는 바람에 빼놓은 것들이 있어 적잖이 불편했고, 안경을 두고 나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도 하며 송년산행을 시작했다. 
 
연말에 일요일이 겹쳐서 그런지 평소 보다 열차와 버스에 승객이 많지 않아 편하게 산 입구에 닿았다.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지만 길에는 전날 많이 내린 눈이  비에 일부만 녹아 질척이며 미끄럽기까지 하다. 오늘 같은 날은 등산화가 방수가 되지 않으면 고생을 할 것이다. 비가 내리며 먼지를 씻어가 공기는 맑은데 구름이 잔뜩 끼어 시야가 짧고 좁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다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무 아래에서만 비가 온다. 비가 나뭇가지에 맺혔다 떨어지는 것인데 옷이 다 젖을 지경이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나름 천천히 걸어 등산객들을 지나치며 올랐다. 
 
북한동역사관 앞의 데크 벤치는 얼음과 눈으로 덮여 파고라 아래로 가서 핸더슨자켓을 벗어 넣고 스틱을 펴고 아이젠을 신고 이어폰을  찾는데 없다. 빼놓고 왔다. 휴지도 물티슈도 쵸코렛도 다 빠졌다. 춥지도 않은데 핫팩은 두 개나 넣었다. 손수건도 면이라 너무 크다. 아침에 급하게 배낭을 꾸리면 늘 이 모양이다. 뜨거운 녹차를 한 병 가져온 것이 다행이다. 
 
법융사를 지나며 길이 눈과 얼음으로 덮였다. 이 위로는 새벽에 비가 아닌 눈이 왔나보다. 아이젠 덕분에 오히려 걷기 편하다. 오늘은 짧게 걷기로 했다. 집에 손주들도 있고 딸도 온다고 했으니 일찍 집에 가서 모두 볼 생각이다. 게다가 평소 보다 80분 정도 늦게 나왔다.
길이, 주변이 온통 흰색이다. 설맹에 걸릴 것 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군데군데 눈이 쌓이지 않은 나무와 바위, 계곡물만 검은 빛을 발하고 있다. 맞다. 옛날 흑백사진의 풍경이 이랬다. 기온이 오르며 길에 눈이 녹아 물길이 생겼다. 그것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올랐다. 오늘은 보국문에서 대피소로 간다. 그러면 10키로 조금 더 걷는다. 
 
스틱에 아이젠을 신었으나 가끔 만나는 깊은 눈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하며 산을 올랐다.  가끔 만나는 이들을 지나치며 백운동계곡을 벗어나 보국문으로 가는 길로 들어가니 앞선 발자국이 한 줄로 이어졌다. 많아야 두 명이 걸은 자국이다. 눈이 정강이까지 찬다. 혼자 러셀하며 오르려면 무척 힘들겠다. 온통 흰색이라 사방이 구별이 되지 않는 풍경에  희미한 발자국만 한 줄로 이어진다. 영화 속 같은 광경이다. 하지만 오르기에 너무 힘들다. 가쁜 숨에 쓰러져 눕고 싶다. 눈도 깊고 푹신하니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옷이 젖을 것 같아 못하고 만다. 보국문이 저 위로 뿌옇게 보이자 남은 기운을 더해 기를 쓰고 올랐다. 비탈진 깊은 눈속을 오르는 것은 힘이 배는 더 든다. 
 
보국문에서 오른쪽으로 갈까 하다가 왼쪽으로 틀었다. 능선의 성곽길에 오르니 바람이 가끔씩 불어온다. 하지만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시린 바람은 아니다. 눈길이 한 명이 지나갈 폭으로 났다. 마주치면 길에서 벗어나 눈에 빠져 비켜줘야 한다. 양보를 더 많이 받으며 대동문으로 갔다. 능선의 나뭇가지와 풀에 달린 하얀 것들은 눈이 아니라 상고대다. 얼음이라 자칫하면 베일 수 있고 큰 것에 부딪치면 아프기도 하다. 예쁘지만 피해야 한다.
대동문에서 제단으로 가는 계단이 눈에 파묻혔다. 한 명이 오른 자국이 있다. 그 발자국을 밟고 오르다 헛 짚기를 몇 번이나 했다. 앞사람이 엎어진 자국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여전히 사방은 삼사십 미터가 보이는 한계다. 하늘이며 땅이며 계속되는 하얀색의 세상. 그 속에 가끔 만나는 원색의 등산객이 반갑다. 흑백인 활동사진에 파묻힌 기분이 든다. 동장대가 가까워지며 하늘에 빛이 나나 싶다가 다시  어두워지기를 여러번한다. 시간은 정오가 가까워지는데 하늘은 아직 어둡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지붕 아래 두 팀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다. 한 귀퉁이에 배낭을 벗고 산에 와서 처음 먹을 것에 입을 댓다. 그래야 녹차 두 모금이다. 마시기 딱 좋은 뜨거움에 기운이 났다. 배낭에 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탕이나 쵸코렛이 있으면 좋은데 넣지를 않았으니.... 
 
대피소 아래 소방서 표지판 앞에서 한 명이 온갖 포즈로 셀카를 찍고 있다가 나를 보고 머쓱해 한다. 동남아에서 온 이 같다. 눈세상이 신기할 법하다.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내려왔다. 등산화 속에 작은 모래알이 들었는지 자꾸 밟히는 것이 신경 쓰이지만 귀찮아 벗어내지 않고 그대로 걸었다. 울양말을 하나 더 신을 껄 싶다.
다시 백운동계곡 길을 만나니 다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다. 길에 눈과 물이 뒤섞여 더 미끄러워졌다. 큰 길이니 빠르게 걸어 내려와 법융사 앞에서 아이젠을 벗고 스틱을 접었다. 역사관 앞에서 배낭에 넣으려고 손에 들고 내려왔는데 파고라 앞 비탈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런, 다 와서 이런 일이. 지나가던 이가 늘 다 내려와서 넘어진다고 한 마디 하고 간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는데 엉덩이가 다 젖었다. 차갑다.   
 
데크 위 의자에서 아이젠과 스틱을 넣고 손수건으로 엉덩이 젖은 것을 닦고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칫길로 내려오는데 길이 눈과 물이 범벅이 되어 무척 미끄럽고 질척하다. 이런 길인 줄 알았으면 오를 때 걸은 계곡길로 내려갈 껄. 2키로 가까운 길을 엉거주춤 조심조심 내려오다 핸드폰을 보니 눈비돌이 들꽃으로 간단다.
산길을 다 내려와 아주 오랫만에  들꽃에서 눈비돌을 만나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 잔씩하고 연신내역에서 헤어져 집으로 오니 출근한 며느리만 빼고 식구가 다 모였다.
샤워를 하고 푸짐한 안주에 시원한 막걸리 한 병. 캬~~~ 좋다.

 

집을 나왔는데 안경이 없다. 한참을 가다가 집에 들어갔다 와야했다.

 

자, 이제 시작하자.

 

길에 눈이 밟힌 곳들이 젖어 들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빗물에도 젖었다.

 

저 위로 원효봉이 보였는데....

 

내린 눈으로 계곡이 하얗다.

 

폭포에 물이 많다.

 

역사관 앞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

 

중성문 위의 노적교 아래 계곡길

 

산영루

 

산영루 옆의 와폭에 숨구멍이 뚫렸다.

 

경리청상창지 옆길

 

보국문

 

저 뒤로 문수봉이 보이면 더 좋은데....

 

칼바위전망대 옆의 성곽길

 

칼바위 갈림길

 

대동문

 

대동문 위의 제단

 

시단봉의 동장대

 

동장대 앞 전망대도 구름에 들었다.

 

동장대를 지나며

 

대피소로 가는길에 다정한 한 쌍이 지나갔다.

 

북한산대피소

 

대피소 갈림길

 

태고사 앞길

 

역사관 앞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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