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16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3. 12. 17. 15:54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온몸을 덮쳐 왔다. 기온은 낮지 않아 좋은데 바람이 차갑고 거세면 길을 걷기 힘들다. 오늘 산속은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배낭에 핫팩이 두 개나 있고 나흘 전에 도착한 켑플리스후디를 속에 껴입었고 같이 산 울 비니도 썼으니 콧노래가 나왔다. 지난주에는 오전엔 손주들 돌보고 오후엔 청송회 친구들 만나느라 산에 못 갔으니 산으로 가는 길이 더욱 신났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 영하 3도에 낮엔 영상으로 오르고 7시 경에 눈이 조금 오는 것으로 나왔다. 이러면 산길을 걷기 아주 좋은 조건이다. 배낭에 샌드위치와 작은 귤 한 알, 물 한 병과 작은 보온병에 뜨거운 녹차를 넣고 등산화 끈을 매고 나니 열차시간에 거의 맞춰졌다.  탄현역에서 7:37 출발하는 차를 타니 경로석만 비었다. 한두 번 앉았더니 이젠 자연스레 앉게 됐다. 대곡역에서 갈아탄 3호선에서는 굳이 경로석에 앉았다. 내 나름대로 젊은이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구파발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에 숨이 턱 막힌다. 바람이 많이 불면 걷기 힘들지만 계곡에서는 바람이 거의 머리 위로  지나가니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정거장에 바로 도착한 주말버스를 탔는데 나 혼자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2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혼자 독차지 해서 산 입구까지 갔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왜지? 너무 이른 시간인가? 기상특보가 떴나?
새로 산 자켓이 땀 범벅이 되는 것을 피하려 탐방지원쎈터 사무실 옆 의자에서 벗어 배낭에 넣고 켑자켓 차림으로 계곡으로 들어갔다.  
 
버스에서 부터 내리던 눈이 계곡입구에 가니 함박눈으로 변했다. 사진을 찍어 산친구들 단체카톡방에 올리니 한 친구가 자기 있는 곳에도 눈이 온다고 바로 답장을 한다. 창원에 사는 친구도 산 사진을 찍어 답장을 했다. 오늘 눈이 전국적으로 오나? 조금 걷다 보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수구정앞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이 엄청나다. 뭐지? 한겨울에 웬 홍수? 나라가, 정치판이 개판이니 자연도 참지 못하는 모양이다. 펑펑 퍼붓던 눈이 폭포를 지나며 조금 잦아들었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다닌다. 머리 위엔 흰구름이다. 흑백과 빛의 뒤섞임이 환상적이다. 만나는 사람 거의 없이 역사관에 도착했다. 
 
역사관 앞 데크 위 의자에 눈이 쌓여 치우고 앉으려니 밑엔 얼어붙어 있다. 이 눈은 오늘 온 것이 아니었다. 다리 앞 파고라 아래 의자로 가서 켑자켓을 마저 벗어 넣고 스틱을 펴고 이어폰을  끼었다. 그 사이 지나가던 이들도 들어와 정리들을 했다.
자켓을 벗고 나니 위엔 티셔츠 하나만 입었다. 전에도 겨울에 이렇게 다녔으니 걱정이 없다. 그런데 나만 헐벗은 느낌이다. 
 
배낭을 메고 다시 출발해 다리를 건너는 데 찬바람이 쌩 불어와 숨을 막히게 한다. 계곡 안에는 좀처럼 바람이 불지 않는데 계속  바람이 분다면 다시 자켓을 입어야 한다. 겨울 중간엔 자켓 세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땀에 젖기 전에 벗었다. 켑자켓은 세탁하고 나면 방풍을 위해 왁스칠을 해야 하는데 이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보관할 때나 세탁을 하게되니 땀에 젖는 것을 극구 피하고 있다.
선암사 비탈길을 오르는데 이어폰 때문에 차가 지나가는 것을 몰라 깜짝 놀랐다. 비탈길에 눈이 있는데 승용차를 갖고 가는 이도 참 대단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곳곳의 터진 곳마다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오르는 길이라 세찬 바람도 참고 걸을만 했다. 법융사를 지나니 길에 눈이 쌓였다. 오늘 내린 눈이 아니었다. 내려오는 이들이 아이젠을 신은 것을 보니 위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는 얘기다. 배낭에 들은 13발 아이젠에 든든하다. 지난번에는 행궁지로 갔으니 오늘은 대피소부터 시작하자. 중흥사 앞 계곡에 물이 넘쳐 위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 태고사로 가는 비탈길을 올랐다. 눈과 얼음이 길을 덮고 있어 물이 흐르는 돌을 딛으며 비탈길을 올랐다. 물길이 없는 길 위 비탈진 눈길에 쩔쩔 매며 미끄러지지 않고 겨우 급경사의 길을 벗어났다. 
 
가을까지는 태고사 옆길에서  보이지 않던 노적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다. 노적봉 꼭대기에서 놀던 때가 그리워졌다. 이제 눈이 그쳤다. 봉성암 갈림길 위의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에 눈이 잔뜩 쌓여 스틱으로 확보를 하며 조심조심 건넜다. 징검다리 아래로 물이 바위를 쓸고 내려가는 듯하다. 늘 타고 넘던 비탈진 바위에 눈이 덮여 있어 바위 아래 계곡으로 올랐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벌써 내려오는 이도 있다. 
 
대피소에 도착해 지붕 아래로 가지 않고 바로 동장대로 향했다. 오르느라 땀을 흘리긴 했지만 바람에 몸이 많이 얼었다. 움직여서 얼은 몸을 풀어야 했다. 능선길엔 눈과 얼음이 혼재했다. 스틱이 있지만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능선길에 오르니 찬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왔다. 배를 만지니 차갑고 감각이 무디다. 배 부위가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잔뜩 낀 지방 때문이리라. 팬데믹 이후 새로 낀 기름만 2키로가 넘으니 그것들이 추위로부터 배를 보호하는 것이다.
능선 길가에 상고대가 잔뜩 피었다. 소나무 가지와 솔잎 위에 길가 싸리나무 가지에 핀 상고대가 완벽한 겨울산을 얘기해 주고 있다. 사실 상고대는 서리로 얼음이다. 무척 날카롭다. 지나치다 베일 수도 있다. 능선의 상고대에 걸려 비니도 벗겨지고 옷도 긇혔다. 
 
동장대에서 보니 문수봉이 능선 위에 봉긋하게 솟았다. 눈이 봉우리를 감싸고 있어 예쁘다. 하늘엔 희고 검은 구름들이 휩쓸려 다니고 잠깐씩 터진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환상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사십년을 넘게 산에 다녔지만 지금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대동문 옆 봉우리 제단 뒤로 보이는 삼각산도 묘한 빛의 간섭으로 기막힌 광경을 드러냈다. 오늘 이길로 참 잘 왔다. 내려가는 돌계단 때문에 아이젠을 신으려다 귀찮고 손이 시려서 스틱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간신히 평지로 내려섰다. 배는 여전히 바람에 노출되어 차갑다. 오늘은 배에 낀 지방이 고맙다. 
 
대동문에서 내려서려다 적어도 10키로는 걸으려고 보국문으로 향했다. 바람을 피하려 성곽 아래길로 걸었지만 별 차이가 없다. 이내 서울시내가 보이는 성곽길로 다시 올라섰다. 칼바위 앞을 보니 하늘에 구름이 있는데도 시내가 뚜렷이 보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런데 멋있다. 잠시 멈췄던 발길을 다시 보국문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눈 덮인 바위길을 조심스레 내려가 보국문을 나오니 쏟아지는 햇살에 몸이 따뜻해졌다. 험한 바람은 성벽에 막혀 울부짓기만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따스함에 몸이 노곤해 왔다. 배낭을 벗고 속에 든 아이젠을 꺼내 신고 이어폰을 배낭에 넣었다. 털모자가 자꾸 돌아가고 내려오는 바람에 귀에서 자꾸 빠졌기 때문이다. 내 머리에 비니는 맞지 않는 듯하다. 
 
보국문에서 쉬던 외국인들이 뒤늦게 합류한 일행들과 만나 시끌벅적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위를 바라보니 대성문으로 가고 있다. 바람없는 따스한 양지녘에서 점심을 먹으려다 온통 눈바닥이라 내려가기로 했다. 아이젠을 신으니 듬직했다. 눈 쌓인 너덜길을 스틱과 아이젠에 의존해 내려와 대남문에서 부터 오는 큰길을 만나니 산길을 다 내려온 기분이다. 하지만 아직 4.1키로가 더 남았다. 물을 건너는 길들이 다 물속에 잠겼다. 반쯤 물에 잠기며, 뾰족한 돌대가리를 딛으며 물들을 건너야 했다. 길에서 만난 이들 전부 두꺼운 우모복을  최소 방풍복에 두꺼운 티들을 입었는데 나만 티셔츠 차림이었다. 모두들 지나치며 힐끔 보고 지나간다.
 
역사관 앞으로 돌아와 올라갈 때 쉬었던 자리에서 배낭을 벗고 옷들을 다 꺼내 입었다. 그리고 몸을 풀기 위해 보온병의 녹차도 한 잔. 바람 때문인지 보온병이 작아서인지 미지근하게 변해 있었지만 몸을 녹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산을 내려와 아랫동네에서 몸을 녹이려고 했지만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34번 버스를 타고 연신내에서 내려 목노집 앞 골목의 족발집에 들어가 순대국을 먹고 집으로....
집에서 샤워하고 막걸리를 꺼내 마시다 피곤했는지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온 아내에게 조는 모습을 보였는데 깨고 나니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서 겨우 일어나 양치하고 바로 이불 속으로.... 이게 점점 늙어간다는 얘긴가 싶어 걱정이다. 
 
하지만 이번 토요일에 또 산에 갈 거다.

 

자, 산에 가자!

 

늘 꽉 차 있는 주차장이 텅 비었고 산은 구름에 쌓였다.

 

서암사 앞 길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폭포의 수량이 엄청나다. 눈이 그친 줄 알았는데 사진엔 큰 눈송이가 찍혔다.

 

붐비던 역사관 앞이 텅~~~~

 

눈 속의 산영루가 예쁘다.

 

대피소로 가는 징검다리가 눈에 덮였다. 계곡의 수량이 엄청나다.

 

데피소 아래 계곡이 눈에 덮였다.

 

대피소. 오늘은 그냥 보고만 간다. 몸이 얼어서....

 

동장대로 가는 길. 이 길은 눈에 덮여도 멋있다.

 

성곽길에 핀 상고대. 부드러워 보여도 자칫하면 베인다.

 

동장대

 

저 멀리 문수봉이 하얗게 솟아 올랐다.

 

성곽 너머로 보이는 삼각산. 먹구름과 흰구름, 햇볓이 멋졌는데 그 순간을 놓쳤다.

 

눈에 묻힌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산 아래도 시내도 보였는데 사진엔 잘 나오지 않았다.

 

능선길이 내내 이런 모습이었다.

 

이제 보국문으로 내려가면 된다. 문수봉이 가까워졌다.

 

얼굴이 얼었다.

 

성문 옆 자리가 무척 따스했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 계곡길

 

역사관 앞. 이시간엔 늘 사람이 많았는데....

 

대서문으로 내려가다 고개를 돌리니 백운대가 보였다.

 

다 내려왔다.

 

연신내역 안의 무인판매대. 일간신문이 천 원이란 걸 알았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31 보국문 - 대피소  (1) 2024.01.01
12.23 대성문 - 행궁지  (1) 2023.12.24
12.2 행궁지 - 대동문  (1) 2023.12.03
11.4 대피소 - 대성문  (0) 2023.11.05
10.28 대성문 - 대피소  (1) 202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