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새해가 된 지 이십 일이나 되었다. 시간 참 빠르게 간다. 그 이십 일 동안 겪지 못하던 일들을 겪으며 감기, 특히 기침 때문에 고생을 했다. 아직도 목이 아프고 기침을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병치레 기간도 길어지는 것 같다.
앞 주는 안산에 가지 않게 되어 운동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흘 만에 다시 운동을 한 월요일에 너무 빨리 걸었고 화요일엔 전과 같은 무게로 근력운동을 했는데, 이게 아주 잘못한 것이어서 운동 중에 어지러움을 느껴야 했었다. 이번주도 안산에 사흘을 가야하니 몸개그를 하지 않게, 몸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고 운동을 해야겠다.
배낭을 챙기는 중 등산을 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난주에 운동을 무리하게 한 탓일 것이라 생각하고 샌드위치와 귤 한 개, 물 한 병, 뜨거운 커피를 넣고 집을 나섰다. 기온은 하루 종일 영상이라니 편하게 입었다. 오늘은 길게 걸어보자 생각하며 산으로 갔다. 요 며칠 날이 영상이었어서 그런지 계곡입구 흙길이 마치 3월 말인 것 처럼 진창이 되어 있었다.
계곡길은 9시가 되었는데도 어두웠다. 구름 탓이다. 사위가 고요한데 계곡을 흐르는 작은 물소리가 가끔씩 세상이 깨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계곡에 물이 많아 좋다. 계곡을 가득 메웠던 얼음이 많이 녹아 물이 더 많아 보인다. 텅 빈 길을 오르는데 힘이 많이 든다. 빨리 걷지도 않았는데 고관절 부위가 거북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칫 걷지 못하는 수가 생기는데 큰일 났다. 역사관에서 돌아 내려가자는 꼬드김이 들려왔다.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어서 내려가 산 밑 따스한 곳에서 편히 쉬다 가자고 한다.
역사관에서 돌아내려 가기는 싫었다. 파고라 아래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산 위를 향해 다시 걷는다. 참 많이 힘이 든다. 불현듯 이러다 앞으로 산에 못 오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불안함이 엄습한다. 적어도 이십 년은 더 오고 싶은데.... 선암사 앞 비탈이 힘들다. 아, 오늘 왜 이러지? 이번주 운동 전체가 월요일의 무리 탓으로 망친 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발은 자꾸 산 위로 향했다.
법융사 앞 벤치에서 아이젠을 신었다. 이 위로는 길이 얼음이었다. 날이 풀려 눈 녹은 물이 밤새 얼은 것이다. 많이 사용한 아이젠이 가끔씩 미끄러진다. 가볍게 걷기도 힘든데 세게 딛으며 걸어야 했다. 오늘 길게 걷기는 포기하고 대성문을 넘어 가기로 했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보국문으로 가기로 했다. 행궁지 갈림길 전에 여러명이 나를 지나쳤다. 행궁지로 향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계곡을 따라 올랐다. 앞질러 간 이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배낭은 왜 이리 무겁냐? 더 넣은 것도 없는데 너무 무겁다. 어깨와 허리가 겨우 버티는 상황이다. 보국문으로 오르는 비탈길을 열 걸음 마다 무릎을 짚고 쉬며 올랐다. 엉덩이를 붙일 곳이 있으면 주저 앉고 싶었다. 이제까지 이런 적이 없는데 오늘 왜 이러지?
보국문에 겨우 올라 성벽 옆 눈 녹은 돌 위에 한참을 앉아 쉬었다. 기온은 영상인데 바람 때문에 무척 춥다. 능선이라 바람이 거세게 넘나들며 체온을 떨어뜨렸다.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 켑자켓의 모자를 썼다. 대피소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기운을 차린 후 일어나 대동문으로 향했다. 겨울산은 눈길을 걷는 재미가 큰데 눈이 얼음으로 변했으니 힘만 더 든다. 바람만 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땅만 보고 걸었다. 바람 덕분인지 가끔씩 고개를 성벽 너머로 돌리면 깨끗하게 서울이 보였다.
대동문에 닿으니 더 성곽을 따라 앞으로 가고 싶지 않아 왼쪽으로 틀어 계곡으로 내려섰다. 지난주에 내려갔던 눈길이었는데 역시나 얼음길로 변해 있었다. 오를 때와 다르게 내리막길에서는 고관절을 느낄 수 없었다. 다행이다. 평소보다 걷는 속도가 늦어졌음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제발 더이상 아픈 곳이 없기를 바라며. 오늘처럼 힘들게 걷지 않도록 운동을 무리하게 하지 말자 다짐을 했다. 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네 시간 정도 산을 걸으며 먹은 것이 쵸코렛 하나, 사탕 하나, 물 두 모금, 커피 두 모금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곧장 와서 배낭에 넣었던 샌드위치와 귤을 먹고 아내가 양념을 해놓은 닭을 에어프라이에 돌려 놓고 샤워를 한 후, 막걸리 한 잔. 큰 낙이다. 산에 가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자, 산으로 가자!
이제 산으로 들어간다.
원효봉이 보이는 수문자리 위의 계곡에 눈과 얼음이 다 녹았다.
계곡폭포가 시원하다.
역사관 앞. 벌써 내려오는 이도 있다.
아이젠을 신었으면 가도 되는 길인데 막아 놓았다. 그런데도 폐쇄된 길로 오르는 이가 있다.
중성문 아래의 계곡
중성문. 비탈길이 빙판으로 변했다. 이곳을 아이젠 없이 오르려던 절에 가는 예불객은 어떻게던 올랐고 운동화 신은 등산객들은 뒤돌아섰다.
산영루
백운동계곡에서 제일 위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마주치는 길. 눈밭인데 길은 얼음이다.
보국문에 올랐다. 한참을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보국문 성곽 너머로 보이는 서울. 맑아서 남산과 관악산도 깔끔하게 보였다.
보국문을 지나 오른 길에서 문수봉이 보였다.
칼바위 앞으로 보이는 풍경
칼바위 왼쪽으로 보이는 시내
대동문. 오늘은 여기까지다.
경리청상창지 앞길
중성문
조금 적게 걸었지만 힘은 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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