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에 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그 시간에 맞춰 갈 수 있게 산에 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몸이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니 그냥 집에서 쉬다가 모임에 갈까? 아니야, 놀면 뭐해. 조금이라도 산에 가서 걷자.
얼마전에 감기로 고생하고 안산에 가느라 운동을 띄엄띄엄 무리하게 한 때문인지 세월 탓인지 산길을 오르는 것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오늘도 고관절에 부담이 가고 힘이 과하게 들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산을 빼놓고 생각하기는 싫다. 작은 배낭에 꼭 필요한 것만 넣어 가기로 하고 꾸렸는데 역시 무겁다. 비가 예보되었으니 우산도 넣고 아이젠, 스틱, 뜨거운 커피, 맥주 한 캔, 물 한 병.... 정작 점심거리는 작은 찹쌀떡 한 개와 방울토마토 세 개 뿐이다.
산을 넘어가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해 3시간 늦은 10:20분에 집을 나섰다.
역시 경의선 열차엔 승객이 많다. 산으로 가는 704번 버스도 만원이라 부대끼며 가다가 산입구에 내리니 살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산에 오니 사람이 무척 많다. 보통 때면 능선길을 걷고 있을 시간인데 이제 계곡 입구니 걸을 길이 까마득하다. 이번주에 계속 이어진 영상 기온에 계곡의 눈과 얼음이 거의 녹았다. 경칩이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으니 이대로 봄이 오진 않을 것이다. 조금 걸으니 더워져 수구정 앞에서 켑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훨씬 가쁜하다. 계단길로 들어서니 숨이 가빠 온다.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은근히 고관절이 신경 쓰인다. 시간이 충분하니 천천히 가자고 다짐하며 걷는다.
북한동역사관 앞에서 미들레이어를 벗어 넣었다. 아이젠을 신으려다 없이 갈 수 있는 곳 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다시 배낭에 넣었다. 짐을 조금만 가져온다고 작은 배낭을 지고 왔는데 어깨끈이 좁아 어깨를 파고 든다. 무척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잘못했다는 후회가 든다. 허리벨트도 폭이 좁아 배낭무게가 거의 다 어깨에 걸린다. 죽을 맛이다. 내려오는 이들을 보니 대부분 아이젠을 신었다. 이 위는 얼음길이라는 신호다. 노적사 앞 정자에서 아이젠을 신고 스틱도 펴고 이어폰도 꽂았다. 배낭이 무겁고 아프니 선암사나 비석거리 같이 오르막길이 나올 때마다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자 인적도 없어지고 길도 평탄해 져 안심이 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제부터가 자신과의 싸움이 되는 거다.
이제 고민 시작이다. 어디로 내려갈까? 정릉? 평창동? 구기동? 불광동? 한동안 오르지 않은 문수봉은 가야지? 그러면 구기동인데 2시 전에 대남문에 가면 문수봉에 다녀올 시간이 된다. 청수동암문 갈림길을 지나니 힘이 더 든다. 요즘 몸 상태가 영 아니다. 보국문 갈림길을 지났다. 뒤돌아보니 정자에서 옆에서 쉬던 할머니 모습이 보인다. 잡히지 않으려 급하게 걸으려 하는데 마음만 빠르다. 결국 대성암 앞에서 잡혔다. 예전 나의 반도 못하다는 절망감에 그들을 피해 대성문으로 올랐다. 그런데 그 길에서도 젊은 아낙이 금방 앞질러 갔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스틱에 매달려 길을 오르는 형국이고 댓 걸음마다 멈춰 숨을 고른다.
너무 힘이 들어 대성문에서 바로 내려가려고 하다가 문수봉은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대남문으로 향했다. 예전의 나는 성곽을 따라 산을 넘었지만 오늘은 옆길로 빠졌다. 그런데 그 아낙이 또 스쳐 지나간다. 대남문에 겨우 도착하니 두 시가 넘었다. 아침 먹고 빈속이라 허기가 졌다. 이래서 더 힘이 드는 건가? 급하게 배낭을 벗고 바위에 앉아 찹쌀떡을 먹는데 들개가 뚫어져라 본다. 나 먹을 것도 모자라니 줄 수 없고 줘서도 안된다. 배낭을 다시 꾸려 일어서는데 그 아낙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무척 빠른 사람이다.
문수봉 오르는 길을 죽기살기로 올랐다. 숱하게 이 길을 올랐지만 이렇게 힘든 것은 처음이다. 꼭대기에 겨우 오르니 시내에 스모그가 떠 있다. 옆에 있던 내외분이 북한동으로 가는 길에 얼음이 있냐고 묻는다. 중성문 까지는 아이젠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삼각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줬다. 조금 더 문수봉에 있다가 먼저 내려간 내외분을 지나쳐 대남문으로 내려갔는데 발걸음이 뒤틀렸다. 아이젠에 얼음이 붙어 그런가 하고 털어내니 조금 나아진 듯한데 걸음이 뭔가 어색하다. 괜찮겠지 싶어 그냥 구기동으로 내려오며 보니 오르는 이들이 모두 아이젠이 없다. 문수사 갈림길에서 아이젠을 벗어 넣고 스틱에 몸을 싣고 내려오는데 비탈이 장난이 아니다. 그 많은 돌계단들을 조심조심 요리조리 딛으며 내려오는데 이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젠 오른쪽 종아리에 알통이 생겼고 아파온다. 아픔을 피해 중간중간 쉬었다 내려오는데 다시는 이길로 내려오고 싶지 않다.
구기동에 다 내려와 벤치에서 스틱을 접고 배낭에 들은 클라우드를 꺼내 감자스틱과 함께 하니 드디어 산에 제대로 왔다는 감이 왔다. 공원 입구를 벗어나니 4시가 넘었다. 종로 3가로 가면 시간이 맞겠다 싶어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문수봉에 있던 내외분이 반긴다. 한참 기다리며 말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니 20분 전인데 친구들이 벌써 와 있다. 매년 첫 모임은 회장이 바뀌는 날이다. 두 명이 못 오고 아홉이 모여 시끌벅적 왁자지껄 정신이 하나도 없다. 빈 속에 막걸리가 한 잔 들어가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여러 시간 후 모임이 파하고 홍 회장과 막걸리 한 잔을 더 한 후 성경만두를 한 보따리 들고 집에 오니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다. 오른쪽 종아리가....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여전하다. 큰일이다. 내일 손주들 등교시켜야 하는데....
자, 이제 산으로 들어가자.
폭포는 얼어 있지만 얼음이 푸석했다.
역사관 앞.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다.
중성문 아래 계곡. 눈이 많이 사라진 모습니다.
산영루 옆의 계곡과 와폭
경리청상창지 옆길
경리청상창지를 지나 대남문으로 가는 계곡길
대성암
대성문
대남문
대남문
문수봉에서 보는 삼각산
비봉능선
구기동계곡을 배경으로
구기동에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 있는 빙폭
다 내려 왔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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