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들고 온 몸이 그 생각을 거든다. 새해 들어 손주들 보러 안산에 다니느라 일상의 틀에서 자주 벗어났었는데 그게 독이 된 듯하다. 이제는 꾸준히 하던 일이나 운동들을 해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몸이 바로 틀어져 버린다. 내 몸만 좋자고 행동할 수도 없고.... 이래서 알면서도 늙고 낡아 가는 가 보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런지 지난 연말부터 계속된 감기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목이 지독하게 고생을 하는 중이다.
열이틀 전인 월욜에 과욕을 해서 내 운동 이력에서 가장 빨리 멀리 걸었었는데 그 과정에 고관절에 이상함을 느꼈었다. 그 결과로 지난주 등산에서 너무 힘들어 짧게 걸었었는데 끝난 줄 알았던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걸 핑계 삼아 쉬려고 했었지만 꼭두새벽에 김치를 담그는 소리에 덩달아 일찍 일어나 배낭을 꾸리게 되었다. 날이 풀릴 것이란 예보와 다르게 새벽기온은 영하 9도를 가르켰다. 뜨거운 커피와 핫팩이 오늘의 소지품 목록에 추가되었다.
늘 같은 겨울복장에 식상해 새 것으로 하나씩 장만하려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입고 있는 것 해지면 사자고.
자주 타던 열차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니 아직 어둡다. 그래도 동짓날보다는 많이 밝아졌다. 날은 추운데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다. 집에서 뜯은 핫팩이 주머니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탄현역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버스정거장에 대화역으로 가는 버스가 4분 뒤에 온다고 표시가 떠있다. 열차시간에 여유가 있어 대화역으로 갈까하고 기다려 봤지만 오질 않는다. 기다리다 열차시간에 맞게 탄현역으로 갔다. 대곡역과 구파발역에서 바로 환승을 해 북한산성입구에 내리니 산으로 가는 이들이 제법 많다. 이러면 오늘은 지루하지 않겠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온 사위가 고요하다. 물소리도 새소리도 없다. 내 발자국 소리만 시끄럽다. 계곡길 입구쪽에는 얼음이 다 녹아 있었지만 계곡물은 꽁꽁 얼어붙어 군데군데 숨구멍만 내놓고 있었다. 그 속으로 부터 들리는 물소리는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서암사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데 엉덩이가 이상하다. 힘도 많이 들고 고관절도 아프다. 잘못하면 앉은뱅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난다. 조금만 걷다가 내려가자고 다짐을 했다. 오늘만 포기하면 앞으로 20년은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뒤에 오던 사람들의 뒷꼭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차기 시작했다.
역사관 앞에서 쉬면서 겉옷을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시 출발하여 선봉사 앞 비탈을 오르는데 고관절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게 평지나 내리막길에선 괜찮은데 오름길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문수봉을 오르려 했는데 이 상태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대피소갈림길 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법용사 앞 의자에서 아이젠을 신었다. 아직은 길이 괜찮은데 내려오는 이들이 다 착용을 하고 있어서다. 중성문 아래에서부터는 길에 얼음이 그대로였다.
온힘을 모아 대피소갈림길까지 갔는데 평지를 걸은 탓에 몸이 괞찮은 것 같아 걷는 거리를 늘려 갔다. 그렇게 행궁지 갈림길을 지나고 대동문과 보국문 갈림길도 그냥 지났다. 이제는 산을 넘어가는 수가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발걸음은 굼뱅이와 다름이 없다. 대성암을 지나 대남문으로 가려고 했으나 고관절 때문에 문수봉에 오를 자신이 없다. 남장대지로 가는 길도 왠지 겁이 난다. 대성문에서 북악터널 앞으로 내려가자 마음 먹고 기를 쓰고 올랐다. 너무 힘이 들어서 다시 산에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배낭은 왜 더 무거운지. 쓰지도 않으면서 갖고 다니는 짐들을 치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성문에 오르니 겨우 살 것 같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보국문으로 가기로 했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티셔츠차림으로 능선에 올랐다. 오랜만에 이 능선을 걷는데 돌계단들이 다 얼음이 되어 있다. 얼음길은 오르막 보다 내리막이 조심스럽다.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 보국문에 닿았고 거기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대동문으로 가서 계곡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북한동으로 내려와 34번 시외버스를 타고 연신내에서 내려 시장구경을 한 후 바로 집으로. 많이 피곤하다. 어서 자야겠다.
산에 가려고 단단하게 차려 입고 나섰다.
수문자리 위의 계곡이 얼었다.
폭포 아래의 계곡도 얼어 붙었다.
폭포도 얼었고....
북한동역사관 앞.
중성문으로 오르는 길이 얼었다.
산영루 앞을 부러운 한 쌍이 지나가고 있다.
행궁지 갈림길의 이정표
금위영이건기비 앞의 안내판
대성암이 밝은 아침 햇살에 졸고 있다.
대성문. 여기에 오르기가 왜 그리 힘들었는지....
대성문에 올라와 따스한 햇살을 느끼니 편안했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이길을 걸었고 이 구간에서는 쇠줄 안쪽 길로 올라왔다. 바깥쪽으로 오르기가 좀.... ㅎㅎㅎ
전망대 봉우리에서 보이는 산들. 문수봉과 남장대지를 걸은 기억이 오래 되었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 장
북쪽전망대와 삼각산
보국문. 공사가 끝난지 오래되었는데 언제나 치우려는지....
부국문 위에서 문수봉을 배경으로
칼바위와 형제봉. 계곡에선 하늘이 맑아 보였는데 여기서 보니 스모그인지....
대동문.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본 역사관 앞 광장
대서문.
다 왔다. 이제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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