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17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4. 2. 18. 08:18
집에 돌아와 시원한 막걸리 한 잔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 들어오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지지난주에 문수봉에서 내려오다 오른쪽 종아리가 걷기 힘들 정도로 아파 병원에 가고 운동도 못하며 고생했고 긴 설연휴에도 다리가 아파 산에 가지 못해서 앞으로 산에 가지 못하게 되는 줄 알고 겁이 났었다.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권장한 물리치료와 투약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다행스럽게 며칠 전 부터 종아리 통증이 사라졌고 근력운동에만 주력하는 것도 좋지 않아 힘 닿는데까지 산길을 걷자고 마음 먹었다. 며칠 전 건강검진 상담에서 체력저하 문제에 '천천히 가볍게 하라'는 답을 듣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한 주를 건넜더니 궁금해 갑갑하다. 어제 함박눈이 내렸는데 북한산에 내린 눈이 어디까지 덮었는지도 궁금하다. 그것보다 내가 산을 갈, 아니 가파른 산길을 걸을 수 있을 지가 더  궁금했다. 나는 걷고 싶은데 내몸이 허락을 하지 않으면 산에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 처럼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긴 너무 싫다.
눈을 뜨자마자 여기저기 흩뿌려진 장비들을 그러모아 배낭을 꾸렸다. 날씨는 맑고 기온은 영하 4도인데 낮엔  영상 6도까지 올라간단다. 켑자켓은 배낭에 넣고 얇은 점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이제 날이 많이 길어져 밝다. 
 
대곡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려다 헬스장 친구를 만났다. 원흥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승용차로 사패산에 간단다.
산성입구에서 내려 산을 보니 옅은 안개가 끼어 있다. 천천히 걷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발걸음은 어느새 빨라져 있다. 이러면 다시 다리가 아플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속도는 좀체 줄지 않았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으려고 찻길을 따라 역사관으로 가려고 했던 생각을 바꿔 계곡길로 들어섰다.  
 
계속되었던 영상의 기온 때문에 산 아래의 얼음이 다 녹았다. 계곡은 어제 내린 눈과 녹은 얼음물 덕에 물이 철철 넘치고 있다. 산에 들어올 때까지 쌀쌀하게 느껴졌었는데 조금 걸으니 추운 기운이 가셨다. 계곡을 오르며 계속 다리에 신경이 쓰였다.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하산을 하기로 했는데 다행이 괜찮다. 오늘은 대피소에서 보국문으로 짧게 걷기로 했다. 무리해서 다시 다치긴 싫었다. 역사관에 도착해 데크 위에 앉으려고 보니 다 얼음에 덮여 있다. 파고라 아래 의자로 가서 배낭을 벗고 물을 마시려고 보니 물을 갖고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녹차를 마셔야 했는데 이것도 괜찮다. 
 
선암사 앞의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종아리가 괜찮다. 그런데 고관절이 조금 불편하다. 지난번 처럼 힘이 많이 들지도 않았다. 푹 쉬고 운동을 적게 했더니 몸이 정상 컨디션을 찾았나보다. 법용사 앞에서 보니 내려오는 이들이 아이젠을 신었다. 이 위엔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나보다 해서 나도 아이젠을 신었다. 그런데 생각 보다 눈이 많지 않다. 볕이 드는 곳은 눈이 없다. 아이젠이 없어도 길을 오르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전한 것이 제일이다.  
 
대피소를 오르는 길은 늘 숨이 가쁘다. 갈림길 부터 대피소 까지 계속 가파른 길이다. 그 길 막바지에서 쉬고 있는 젊은 두 쌍을 지나쳤다. 백운대로  간단다. 웃는 모습들이 청량하고 부럽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 대피소에 올라 잠시 배낭을 벗고 뜨거운 녹차를 마시며 숨을 골랐다. 무료 지하철 카드를 받기 전까지는 한 시간 대에 올랐는데 이젠 그런 시간은 어림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여기 오게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붕 아래 터 잡고 이른 식사를 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동장대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 길이 정겹다. 가끔씩 마주하는 이들을 반가워하며 걷는다. 역시나 오름길은 숨이 가쁘다. 지나친 이들에게 다시 뒤쳐진다. 이게 뭐람. 앞서지나 말 걸. 
 
대동문에서 내려오려다 10키로를 채우기 위해 보국문으로 향했다. 다리는 아직 이상이 없다. 걷는 속도만 많이 떨어졌다. 능선길에도 볕이 드는 곳들은 눈이 없지만 응달엔 얼음이 깔려 있다. 아이젠을 신었으니 거침없이 그런 길들을 지나쳤다.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러고보니 남장대지능선을 걸은 지 오래됐다. 다음엔 그길을 걸어야겠다.
전에는 보국문에서 내려서기 전에 더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늘은 다리 때문에 바로 내려갈 생각 뿐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조심해서 내려가 절터에 닿으니 넓은 마당에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있다. 그걸 들어가 밟았다. 초등학교 때의 나처럼. 그러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돌아가고픈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시절을. 그때는 운동장에 밟지 않은 눈이 있으면 발로 주로 동그란 무늬를 그렸었었다. 
 
큰 계곡길로 나오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서부터는 없는 길이면 좋겠다. 법용사 앞 쉼터로 오니 아이젠이나 스틱이 없는 이들이 위의 길이 어떠냐고 묻는다. 보아하니 소풍 나온듯하다. 없어도 되는데 그러면 힘들 것이라 하니 고민들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 잘 생겼고 키도 무척 크고 날씬하다. 나만 매년 일 센치씩 줄어든다. 며칠 전 검진에서 보니 또 키가 줄었다. 커도 시원찮은데 계속 줄기만 한다. 
 
역사관 앞 데크 의자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었다. 그래봐야 먹을 것은 샌드위치와 반도 남지 않은 녹차뿐이다. 그것을 우걱우걱 먹고 내려왔다. 다 내려와 몸을 살피니 이상이 없다. 이제 가끔씩은 산을 쉬어줘야 하나보다. 그래도 좋으니 죽기 전까지 산에 올 수 있으면, 봉우리에 오르고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으면 좋겠다.
산에서 내려와 바로 집으로 와 집 앞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 갖고 들어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소파에 편하게 기대서 차가운 막걸리를 한 잔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것 없다.

 

 

계곡입구에 가니 옅은 안개가 반긴다.

 

계곡이 계속된 따스한 날들에 다 녹았다.

 

계곡 아래에서는 얼음을 볼 수 없었다.

 

폭포의 얼음들도 다 녹았고 그 물들로 인해 크고 시원한 소리를 내고 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역사관 앞에 인적이 드물다.

 

중성문 아래 계곡

 

노적교 아래 길

 

위 사진을 찍은 곳에서 뒤돌아 보면 중성문이 앞에 있다.

 

용학사로 가는 옛길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나월봉이 높이 보인다.

 

엣길을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큰바위얼굴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산영루

 

대피소로 가는 길. 이제 가파르게 1,5리를 올라야 한다.

 

대피소에 올랐다. 이제부터 능선길 시작이다.

 

동장대로 가는 부드러운 길

 

동장대

 

동장대

 

제단 뒤의 성벽에 매달려 삼각산을 배경으로 한 장. 지나온 동장대가 보인다.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가기 전에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보국문. 오늘은 대성문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계곡으로 내려가다 만난 아무도 밟지 않은 공터에 곧 없어질 내 발자국을 남겼다. 운동장에 쌓인 눈에 그리던 무늬들이 떠올랐다.

 

다 내려오니 관광객들이 계곡입구를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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