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 2 보국문 - 대피소, 눈비돌 만남

PAROM 2024. 3. 3. 07:42

며칠 전 부터 집에 와 난장판을 벌인 손주 녀석들이 떠나고 다시 평온을 찾아 하루를 분주히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새 하루. 꿈이 잠을 자꾸 깨워 뒤척이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 더 자면 안된다 싶어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벌써 올해의 1/6이 지났다(올해는 윤년이고 오늘이 3월 2일이니 366일 중 62일째다. 이 계산이 맞는지 한참 계산했다.) 
 
이제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제대로 걸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일기예보를 보니 현재 기온이 영하 10도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산에 가야 한다. 그러나 배낭엔 벙어리장갑 하나만 더 넣었고 나머진 지난주와 같다. 겨울이 완전히 가기 전에 한두 번의 추위가 더 남았을테니 봄차림을 하기엔 이르다. 추운데서 먹기 편하게 늘 가져가던 샌드위치 대신 약식을 점심거리로 넣었다. 배낭무게를 줄이려고 뺄 것이 없나 보지만 다 필요한 것들이다. 클라우드를 빼려고 몇 번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둔다. 그러니 배낭은 여전히 무겁다. 오늘은 왠일로 열차에 빈자리가 있다. 
 
산성입구에서 내려 모퉁이를 도는 데 눈앞이 환하다. 벌써 해가 높이 떠 있다. 계곡으로 들기 위해 바삐 걸음을 뗐다. 산은 물소리를 빼곤 조용하다. 산아래의 길엔 눈이나 얼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침의 추위 때문에 물가엔 투명한 얼음이 반짝이고 있다. 이번 겨울 자주 내린 눈과 비에 계곡엔 물이 넘치고 있다. 주머니에 넣은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등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어제부터 쉬는 날인데 산에 등산객들이 많지 않다. 어제 다들 다녀갔나보다. 만나면 반가울 사람들도. 
 
역사관 앞에서 겉옷을 벗어 넣고 이어폰을 끼려다 보니 없다. 만지다 그냥 두고 나왔다. 요사이 점점 더 잊고, 잊혀지고 있다. 이름을 아는 친구들과 동창들도 하나씩 멀어져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법용사 앞에 이르니 길에 처음으로 얼음이 비친다. 내려오는 이들 발에 아이젠이 신겨 있다. 아이젠 없이 가는 데 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중성문을 어렵게 지났다. 더 이상 그냥 걷기는 무리다싶어 길가에 배낭을 내리고 아이젠을 신으니 긴장이 많이 풀린다.  
 
옛길로 올라 대피소갈림길을 지나니 지난주와 같이 눈에 덮인 풍경이 나타난다. 곧 사라질 눈들이 아쉽지만 영원할 수는 없으니 어쩌랴. 그 아쉬움을 사진 몇 장에 간직해 둔다. 걸음을 조금 빨리 했더니 종아리와 고관절이 존재감을 나타내 주의를 준다. 이번주 유산소운동 두 번을 다 비탈걷기를 한 것이 무리였나 싶다. 헬스장이 휴일에는 열 시에 늦게 여는 것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바람에 어제 근력운동을 못했다. 기간이 끝나기 전에 집 근처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 
 
보국문으로 방향을 잡고 눈비탈을 오르니 눈비돌이 문 위에서 쉬고 있다 반긴다. 올들어 처음 만났다. 나는 오늘 남장대지능선을 넘어 평창동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산 아래에서 통화를 하게되어 보국문으로 올랐다. 볕이 잘 드는 따스한 남쪽 정릉에서 오르느라 눈은 생각하지 않았던 듯 아이젠과 스틱이 없단다. 배낭에 꽂아 둔 내 스틱을 내어주고 같이 대피소로 향했다. 보국문 위 능선으로 오르니 칼바람이 불었다. 춘삼월에 얼어 죽을 지경이다. 주머니에 든 핫팩을 꼭 쥐고 걸었다. 같이 걷는 눈비돌은 아이젠도 없는 상태에 스틱에만 의지해 걸으니 내리막을 만날 때마다 죽는 소리를 한다. 게다가 찬바람에 더욱 힘든 모양이다. 가능한 4월 중순까지는 아이젠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능선을 걷는데 발바닥에서 쇠가 닿는 소리가 나 살펴보니 아이젠 쇠줄이 끊겨 있다. 펴진 쇠를 구부려 연결하려니 돌맹이로는 어림도 없다. 이삼 년 내 발밑에서 고생 많이 한 아이젠을 이제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한 두 달 전에 새로 구입해 둔 것이 있으니 아쉬움은 없다. 내 게으름 탓에 흙과 돌길에서도 신고 돌아다녀 더 빨리 줄이 끊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며 매콤한 것이 먹고 싶었다. 서둘러 북한동으로 내려와 주말버스와 지하철로 연신내 먹자골목에 가서 낚지볶음을 하는 오봉집에 갔다. 막걸리가 떨어졌다며 잔은 주겠으니 우리가 슈퍼에서 직접 사다 마시란다. 근처 세븐일레븐 두 곳 모두 장수막걸리가 떨어져 지평을 사야 했다. 이 오봉집 반찬들과 낚지볶음 모두 깔끔하고 맛 있었다. 다음에 가면 낚지전골을 맛 봐야겠다. 
 
P.S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종아리가 다시 매우  불편하다. 보국문을 오를 때 서둘러서 더 그런 것 같다. 클났다. ㅠㅠ

 

물가에 투명한 얇은 얼음이 끼었다.

 

폭포에 물이 많다.

 

역사관 앞. 벌써 내려가는 이들도 있다.

 

중성문 아래 계곡. 아직 봄기운은 멀었다.

 

산영루

 

산영루 위의 와폭

 

사진 중간 오른쪽 큰바위 뒤에 알탕을 하는 곳이 있다.

 

행궁지갈림길 아래 계곡

 

청수동암문 갈림길 아래

 

경리청상창지 앞길

 

경리청상창지 앞길. 앞 사진을 찍은 후 돌아서서 찍었다. 

 

보국문 갈림길 표지판

 

보국문에서 눈비돌을 만났다.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멀리 보인다.

 

앞 사진을 찍은 후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삼각산이 보인다.

 

칼바위와 형제봉. 그 뒤로 백악과 오른쪽 끝에 인왕산

 

대동문. 보수가 완료된 모습이다.

 

동장대

 

동장대 앞 전망대. 앞 나무의 나뭇가지들이 크게 자라 이제 잎이 나면 제 역할을 못한다.

 

대피소에 왔다.

 

역사관 앞

 

다 내려왔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6 대피소 - 보국문  (4) 2024.03.17
3. 9 행궁지 - 대성문  (0) 2024.03.10
2.24 대성문 - 문수봉  (1) 2024.02.25
2.17 대피소 - 보국문  (0) 2024.02.18
2. 3 대성문 - 문수봉 - 대남문 - 구기동  (0) 202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