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 근래 등산사상 가장 기쁜 날 중 하루였다. 등산을 마치고 계곡을 다 내려오는 중에 많은 수의 산악인들 속에 섞여 걷던 은단풍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는데 흰색 옷을 입었고 그들 무리 중 가장 눈에 띄었다. 무척 반가워서 한참을 붙잡고 있었고 창원에서 거부기가 오면 같이 만나기로 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꾸준히 산에 다니다 보면 생각도 못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세상은 이래서 살 만한 거다.
지난달 말 경 부터 이달 중에 보름 정도 배낭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매주 있는 모임과 약속, 손주들 보는 일에 차일피일 미루며 스카이스캐너나 뒤지고 있다. 이달에 못 가면 가을에나 가야 할 수도 있겠다.
새벽 3시 조금 넘어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6시에 일어나 산에 갈 준비를 했다. 일찍 서둘던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우던 집을 나서는 시간은 늘 비슷하다. 오랜만에 발에 꽉 끼는 검정색 아크 등산화를 신었다. 재질이 비닐류라 그런지 신은 지 두어번 만에 옆이 터져 실이 나왔다. 그래도 무척 가볍고 신발 속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아 좋다. 집밖으로 나오니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나무들이 활짝 반긴다. 살구꽃은 다 떨어지고 몇 송이만 겨우 달려 있다.
구파발역에 내려 버스정거장으로 가며 보니 송추 가는 704번 시내버스가 막 출발했는데 꽉 찼다. 오늘 산에 사람이 무척 많겠다. 정거장에 도착해 섰는데 등산객들이 내 뒤로 줄을 만들었다. 곧 주말버스가 왔는데 앞쪽에 몰려 있던 이들이 뛰어오다 줄을 보고 모두들 뒤를 잡는다. 왠지 우쭐한 기분이 든다. 내가 탄 버스가 먼저 떠난 버스를 추월까지 한다. 이럴 땐 더 기분이 좋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진달래와 개나리가 반긴다. 집을 나설 때는 영상 5도라 쌀쌀해서 두꺼운 겉옷을 입었는데 조금 걸으니 더워져서 벗어 배낭에 넣고 티셔츠 차림으로 걷는다. 하늘은 맑았지만 먼 곳을 보면 미세먼지로 뿌옇다. 계곡물도 많이 줄었고 계곡바닥은 갈색 물이끼가 완전히 덮고 있다. 이제 큰 비가 내려 바닥을 쓸어가기 전까지는 이 모습을 봐야 한다. 산 아래는 이제 진달래꽃밭이 되었다. 물가의 벚나무도 이제 하얗게 몸단장을 했고 개나리도 자기들 끼리 엉켜 노랗게 피었다.
계곡을 오르는 이들이 많아 발걸음이 빨라졌다. 걸음이 빠르면 곧 지치는데 앞에 사람들이 자꾸 나타난다. 어찌될 지 알고 오늘은 짧게 걷자고 마음 먹는다. 요사이는 다행이도 레깅스 차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역사관앞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길로 나섰는데 레깅스 차림 셋이 앞에서 백운대 쪽으로 간다. 선암사 앞 급경사를 힘들게 오르니 앞에 등산객들이 많다. 오늘 정말 고생 좀 하겠다 싶다. 요사이 유튜브에 백운대 암벽길을 오르는 것과 수유리 인수재 먹방이 자주 나오는데 오늘은 백운대에 오른 후 대동문을 지나 진달래능선으로 해서 인수재에 가 막걸리 한 잔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선 능선까지 오르는 힘든 길이 우선이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 대동문에서 백운대로 갈까? 아니다. 오늘은 보국문에서 대피소로 가자. 아는 길이 좋다. 오르며 오늘은 진달래가 어디까지 피었나 보니 용학사 옛길 입구, 급경사 아래 까지 피었다. 다음주에 헬스장 친구들과 올 때 즈음엔 어쩌면 낮은 능선에서도 꽃을 볼 수 있겠다.
물병 하나만 들고 내 앞에서 오르던 이가 대동문 갈림길에서 서서 쉬는 사이 드디어 앞질렀다. 보국문으로 향하며 뒤돌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천천히 걸어도 된다. 보국문으로 오르는 길은 돌이 많아 스틱이 필요하지만 배낭 내리기가 귀찮아 그냥 비틀거리며 올랐다. 돌뿌리를 하도 걷어차 검은색 등산화 코가 온통 하얗게 변했다. 만약 맨발이었다면 발가락은? 상상하기도 싫게 뭉그러 졌겠다.
보국문에 올라 배낭을 벗으니 등이 땀에 흥건하다. 물 한 모금으로 땀을 보충하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오랜만에 대성문으로 가보자 마음 먹었다. 여기서는 거의 대피소로 갔었다. 대동문을 지나 인수재에 가겠다는 생각은 어느 틈에 사라졌다.
무척 힘들거라 생각했던 오르막 돌계단길들을 뒷짐 지고 천천히 오르니 오를만 하다. 오랜만에 보는 주능선에서의 경치도 참 좋다. 큰 오르막 셋을 넘어 대성문에 닿으니 앞의 큰 오르막을 넘어 대남문으로 가고 싶다. 시간도 충분하고 힘도 남았고 거리도 짧다. 성벽길을 따라 대남문으로 가는데 몸집이 큰 젊은이가 나를 지나간다. 그런데 스틱 뚜껑을 따지 않았다. 말해주려다 그만두고 추월해 대남문으로 갔다. 그리고 문수봉을 오르려다 지난주에 아내와 같이 올랐었고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도 나쁠거라 생각해 아랫길로 다시 대성문으로 갔다.
대성문 앞 의자에서 잠시 쉬고 북한동으로 내려오며 보니 등산화가 하얗게 변했다. 흙먼지가 만든 것이다. 백운동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보니 상류는 그래도 바닥이 괜찮은데 아래로 올수록 물이끼가 많아지고 심지어 발굴중인 경리청상창지 위쪽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보니 계곡물에 손수건을 적시고 싶지 않아졌다. 계속 내려오다 요즘 쉬는 자리가 된 용학사 아래 계곡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무척 불편하다. 다음엔 다른 곳을 찾거나 자리를 다듬어야 겠다. 가지고 간 샌드위치와 파인애플을 더운 차와 함께 먹고 부지런하게 하산을 해 자주 다니는 찻길을 피해 왠일로 계곡길로 내려오다 단풍을 만났다. 이런게 필연인가?
다 내려와 산아래에서 빈대떡 한 장 먹으려다 그만두고 바로 정거장으로 가서 주말버스로 구파발에 내려 역으로 갔는데 대화행이 금방 떠나는 바람에 연신내역으로 갔다가 시장구경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과일과 생선들을 둘러보다가 골목 안 작은 식당의 백합탕 메뉴(기격이 싸다 했는데 중국산 백상합이라고 하는 것이었다)에 끌려 들어가 점심을 먹고 집으로. 언젠가 꼭 진짜 국내산 백합탕을 먹을 것이다. 오래전 대부도에서 맛봤던 그 백합탕 맛이 아련하다.
탄현역으로 가는 길가에 벚꽃이 피었다.
봄이 오면 계곡입구 냇가 한가운데 나무가 연한 연두색을 띤다. 참 좋은 색이다.
계곡에 많은 꽃이 피었다.
폭포에 물이 많이 줄었다.
역사관 앞에도 꽃들이 한창이다.
백운대 삼거리. 목련이 만개했다.
앞 사진을 찍고 뒤돌아서면 이런 풍경이다.
중성문 아래 물가의 나무에 나뭇잎이 많이 나왔다.
네 발로 옛길로 올라서서 고개를 들면 나월봉이 보인다.
앞쪽으로 가면 행궁지인데 나는 대남문 방향으로 갔다.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가다가 뒤돌아 봤다.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북쪽전망대. 주변 나무들이 너무 자라 잎이 나면 시야가 좁아진다.
능선 왼쪽으로 대동문이 보였는데.... 오른쪽이 칼바위다.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뒤로 펼쳐졌다.
보현봉과 주능선.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남쪽전망대에서 형제봉과 백악, 인왕산이 보였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이곳의 전망도 좋은데 너무 많이 사진을 올려 좀 식상한 면이 있다. 나뭇잎이 가리지 않아 형제봉쪽으로 내려가는 이들이 보였다.
대성문. 오늘은 성벽을 따라 대남문으로 갔다가 아랫길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백운동계곡으로 내려갔다.
대남문으로 내려가는 중에 보이는 문수봉
대남문 처마 밑에서 보이는 구기동방향. 이곳도 주변 나무들이 무척 많이 가려 시야를 가린다.
대성암
용학사 근처에 핀 큰개별꽃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연신내시장 골목안의 작은 식당. 여기서 먹을 것이 많이 보인다.
집으로 가는 길가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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