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4.20 행궁지 - 대피소

PAROM 2024. 4. 21. 11:59
며칠 전에는 종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새벽에 보니 7시와 오후 5시에 잠깐 적은 양의 비가 온다고 나왔다. 오락가락하는 일기예보를 믿을 수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어 비옷과 우산을 챙겼다. 먹거리는 오이 한 토막과 물 한 병 그리고 편의점 햄버거가 전부다. 배낭 주머니에 늘 있는 사탕과 초코렛도 몇 알 있다. 아내가 같이 산에 간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잡혀 혼자 가게 되었다. 
 
집을 나서는데 얼굴에 안개의 물방울이 닿는 느낌이 온다. 날이 맑았으면 좋은데 하늘은 어둡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탄현역에서 승객이 적은 7시 48분 차를 타고 산으로 갔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진달래와 벚꽃은 다 지고 푸른 빛이 가득하다. 계곡을 오르니 일찍 피었던 꽃들은 사라지고 이제사 피는 꽃들이 하얗고 붉고 노랗고 푸른 점들을 땅 위며 나무 속에 알알이 박아 놓았다. 이 계절의 산길은 꽃들을 보느라 힘든 것을 잊게 한다. 그래도 힘은 들어 역사관 앞에서 겉옷을 벗으니 등판이 땀으로 다 젖어 있다. 진작에 벗을 껄.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꽂고 다시 길로 나섰다. 평소 보다 조금 늦게 왔지만 산객들은 오히려 적은 느낌이다. 한적한 산길이 소란스런 것 보다 좋다. 새로 내려 받은 노래 두 곡(상록수, 전화 받아)만 듣고 걸으니 심심하다. 길을 오르며 한계령을 원곡 외에 두 명의 곡을 더 받아 들으며 걸었다. 다섯 곡을 두어 번 들으니 싫증이 난다. 산에서 좀처럼 하지 않는 다른 파일에 있는 노래들로 바꿨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정향나무꽃이 궁금해 행궁지로 발길을 옮겼다. 진달래가 졌으니 아마도 피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을 오른 지 한 달도 더 넘었다.  
 
행궁지 옆 가파른 길을 지나 능선길로 들어서자 거미줄이 얼굴에 감긴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조금 전에 편 스틱을 휘둘러 거미줄을 치우며 오르다보니 진달래가 시들었지만 남은 나무들이 보인다. 밧줄이 있는 곳에 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젊은이가 바짝 다가와 있다. 나를 순식간에 지나치는데 등이 다 젖은 것이 보였다. 내 앞에 갔으니 이제 스틱을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얼굴에 차가운 뭔가가 닿는다. 빗방울이다. 비탈길에서 우산을 들기 어려워 그냥 걷는데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그런데 길은 다 젖었고 돌들도 미끄러워졌다. 길이 높아질수록 진달래가 싱싱하다.  
 
길 아래에서 까마득하게 보였던 나월봉이 나뭇가지들 사이로 가까이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남장대지능선이다. 비에 젖어 미끄러워진 바윗길을 넘어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니 길 양쪽으로 진달래꽃밭이 펼쳐졌다. 오늘 보고 싶었던 정향나무꽃은 아직은 어림도 없다. 상원봉에서 내려가는 미끄러워진 바윗길을 피해 우회로로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으로 갔다. 저쪽 능선에서 볼 때 여러 명이 보였는데 내가 오르니 아무도 없다. 산을 전부 독차지한 느낌이다. 그런 기분도 잠시 곧 여럿이 올라왔다. 그러면 나는 내려가야지. 
 
비가 내려서 인지 산길이 호젓하다. 대남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대성문으로 갔다. 비 때문인지 공기가 깨끗하게 보인다. 신발에 작은 돌이 하나 들어갔는지 발바닥에 걸리적거린다. 대성문 지붕아래 마루에 걸터 앉아 털어내고 보국문으로 향했다. 이 구간은 조금은 험한 바윗길이라 비 오는 날엔 잘 가지 않는데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니 걸을 만 해 보였다. 역시나 젖은 바위라 미끄러웠다. 능선의 고도가 낮아지니 진달래꽃이 사라졌다. 비 오는 산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시내가 으스스해 보인다. 
 
보국문에 가까이 가자 소란스러워진다. 명찰을 단 사람들이 보였다. 4회, 6회, 신일, 동문 등의 글이 보인다. 그들을 지나쳐 대동문으로 갔다. 거기서 북한동이나 진달래능선으로 해서 수유리로 내려가려고 했다. 대동문에 닿으니 정오가 가깝다. 늘 그렇지만 문 주위에 사람들이 많다. 이곳도 명찰을 단 이들이 많다. 그런데 휠씬 젊다. 그곳 출신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문자로 사정을 알렸다. 혹시 산에 왔으면 보려는 요량으로. 그 친구에게는 한 시간도 더 지나 산을 많이 내려와서야 전화가 왔다. 자고 있었고 6회인데 동문회엔 잘 참석하지 않는 단다.  
 
대동문에서 내려오려던 계획은 오랜만에 대피소까지 완주하려는 생각에 무너졌다. 비가 와서 땀이 덜 났고 어두운 하늘 때문이었나? 동장대를 지나자 허기가 느껴졌다. 어서 대피소에 가서 배낭을 풀어야겠다. 배가 고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대피소에 가니 지붕 아래에 세 팀이나 있다. 기둥 옆에 쿠션 하나만 펴고 앉았다. 게눈 감추듯 식사를 끝내고 겉옷을 입은 채로 산길을 내려왔다. 대피소에서 내려오는 길도 바위가 많아 만만치 않아서 스틱에 의지해 조심조심 내려왔다.  
 
오랜만에 긴 길을 걸어서 그런지 발바닥도 아프고 다리도 풀려서 역사관 앞의 데크에 앉았는데 아는 얼굴이 지나간다. 조은네 님이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노적봉에 간다는 등산팀이 다시 움직이자 그들과 같이 오르는 것을 보고 조금 더 쉬다가 큰길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버스정거장으로 가서 미어터지는 704번을 타고 연신내에서 내려 시장구경을 하고 집으로.... 시장의 부세, 고등어, 게 등 생선들을 사고 싶었는데 포장해 가지고 오기가 어려워서 포기. 집에 와서 뜨끈한 물로 샤워하고 두릅과 동태찌개로 막걸리 한 잔하고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졌다.
다음주엔 청송회 친구들과 운길산에 간다. 기대된다.

 

 오늘도 즐겁게 산에 가자!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이제 신록이 제대로 물들었다.

 

계곡폭포.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많이 줄었고 물이끼가 끼었다.

 

역사관 앞이 한산하다.

 

중성문 아래 계곡에 핀 꽃

 

중성문

 

산영루

 

행궁지 발굴 및 복원 현장

 

행궁지 옆 능선을 오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 나월봉

 

남장대지능선 아래의 바위에 서 있던 소나무가 쓰러져 앞이 허전하다.

 

남장대지능선의 진달래꽃밭

 

청송대에서 보는 주능선

 

남장대지에서 보이는 나월봉과 의상능선의 봉우리들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가 얼굴을 내밀었다.

 

의상능선

 

삼각산이 보여서 한 장

 

청수동암문 앞으로 구파발이 뿌옇게 보였다.

 

구기동계곡

 

비봉능선

 

삼각산

 

대성문으로 가던 길에 뒤돌아 봤다.

 

보현봉과 걸어온 성곽길

 

앞의 봉우리에 남쪽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봉우리에서 보이는 삼각산

 

걸어 온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남쪽전망대에서 보이는 형제봉과 백악, 인왕, 안산, 남산, 관악산

 

보국문 공사는 언제나 끝이 나려는 지....

 

칼바위와 형제봉

 

대동문 

 

제단 성곽 너머로 삼각산이 보인다.

 

동장대. 주변에 줄을 쳐서 접근하지 못하게 해 놓았다.

 

대피소에 닿았다.

 

역사관 앞.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떠나고 나니 한적해 졌다.

 

다 내려왔다. 오늘은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녔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4 행궁지 - 보국문  (0) 2024.05.05
4.27 운길산, 청송회 친구들과  (1) 2024.04.28
4.13 대피소 - 보국문, 계 사장과  (1) 2024.04.13
4. 6 보국문 - 대남문 - 대성문  (1) 2024.04.07
3.30 대남문 - 행궁지, 아내와  (1)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