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4.13 대피소 - 보국문, 계 사장과

PAROM 2024. 4. 13. 20:13

역시 세월은 거스를 수가 없다. 지난 겨울에 같이 산길을 걸으며 힘들어 했던 헬스장 친구가 오늘은 나 보다 더 빨리 걸었다. 나는 그 걸음을 쫓느라 초죽음이 되었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헬스장 친구들 셋이 산에 가기로 했다. 산에 꽃이 피었으니 꽃 구경하러 가자고 내가 꼬드겨서 였다. 탄현역에서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한 친구는 일이 있다고 못 나왔고 둘이 같이 산으로 갔다. 내 배낭엔 새벽에 만들어 준 샌드위치 세 쪽과 최근에 알게 된 맛있는 박** 명인의 안동소주(35도로 향기 좋고, 부드럽고, 가성비 좋은) 작은 것 한 병이 들었다. 
 
나에게 길을 잡으라고 하니 늘 다니던 익숙한 길로 앞장서 걸었다. 그런데 나를 앞질러 간다. 발걸음도 무척 빨라 따라 잡으려니 입에서 쇳소리가 났다. 이내 포기하고 뒤를 따랐다. 네가 어디까지 그러고 가는지 보겠다 라는 마음으로. 역사관이 다가오니 걸음이 늦어져 같이 역사관 앞의 데크에 올랐다. 큰일 날 뻔 했다. 
 
아침에 약간 쌀쌀했던 날씨가 해가 뜨며 더워져 겉옷을 벗게 만들었다. 어제 저녁에 배달 온 모자가 머리에 맞아 다행이다. 같이 온 티셔츠는 올 겨울에나 입어야 한다. 역사관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젊은이들이 몰려가는 백운대 쪽을 피해 선암사 앞 가파른 길을 올랐다. 이제 계곡엔 진달래가 만발했고 개나리는 푸른 잎을 비치고 있다. 길가에서 보이는 흰색 꽃들은 지는 중인 것과 이제 피어나는 것으로 분주히 손 바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 계절에 대표적인 꽃은 진달래다. 그런데 벌써 철쭉이 잎사귀를 내밀고 있다. 좀 더 있다가 나와도 되는데. 
 
같이 온 계 사장이 등산에 재미가 들어 많이 걸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걷고 목을 축이면 된다. 그래서 오늘은 대동문에서 진달래능선으로 가서 인수재에서 점심을 먹고 수유리나 우이동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 사업을 하는 분이다 보니 전화가 많이 오고 수시로 약속이 잡힌다. 이러면 그냥 서들러 북한동으로 가야 된다. 최소 10키로는 걷고. 대피소 삼거리에서 오르는 길은 이제 좀 가파르고 힘들게 느껴진다. 죽을 힘들 다해 오르다 보니 바위를 타고 오르는 길 앞에 아주머니 한 분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행색을 보니 면티를 입었다. 제대로 된 등산객은 아니다. 손바닥 만한 가방이 전부다. 물도 간식도 없는 듯하다. 말을 걸으니 아들을 따라 왔고 힘들어 하니  그냥 내려가라고 했다는데  더 올라왔단다. 산골짝이라 통화도 제대로 되지 않아 대피소까지 올라가 살피다 통화가 됐고 아들이 온다고 하기에 물과 초코렛을 주고 쉬며 기다리라고 하고 우리는 동장대로 향했다. 아들도 그렇고 왜 이런 무모한 등산들을 하는지.... 
 
쇳소리가 나게 힘든 오름길을 마치고 나니 살만하다. 대피소에서 동장대로 가는 길에는 아직 진달래가 덜 피었다. 이 길은 응달에 속하다 보니 그런 듯하다. 여유롭고 기분  좋게 주능선을 걸어 동장대와 대동문을 지났다. 제단 뒤의 성벽 너머로 백운대의 태극기가 하얗게 날리는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생각 같아서는 문수봉을 지나 남장대지능선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체력이 달린다. 다음 기회를 잡는 수 밖에. 아마도 처음에 무리를 해서 빨리 걸었던 것 때문일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55분 만에 대피소에 올랐는데 이젠 90분이 걸리니.... 늘 걸었던 길인데 세월이 흐르니 더 늘어났나 보다. 
 
보국문에서 내려오는데 동행이 배가 너무 고프단다. 운악산에서 30년도 더 전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길이 나쁜 곳에서는 절대 알콜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보국문에서 행궁지갈림길을 지나 한참 더 내려오기 까지의 길은 돌이 많고 울퉁불퉁해서 그곳에선 쉬지도 않는다. 그러니 더욱 배는 고파하고.... 그래서 요즘 점심자리 까지 가지 못하고 알탕을 하는 장소가 보이는 물가에 앉아 배낭을 벗고 점심을 먹었다. 둘이 한 병을 다 비운 바람에 얼큰해졌고 내려오는 길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두리번거렸는데 없다. 예전엔 자주 만났는데 이젠 아는 이들이 산에 오는 빈도가 많이 떨어졌나 보다. 
 
산을 나 내려와 만원버스에 부대끼며 구파발에 내려 헤어지려다 아쉬워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씩 하고 나는 집으로.... 내일 오전에 의정부로 친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집 청소해야 하는데. ㅠㅠ

 

 

새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L사이즈가 맞으니 머리가 큰 것이겠지?

 

봄이 깊어졌다. 산색이 제대로 갖춰지고 있다.

 

한동안 비 소식이 없더니 폭포에 물이 확연히 줄었다.

 

역사관 앞. 늘 다니던 시간 보다 반 시간 정도 늦었는데 사람들이 많다.

 

역사관 앞 데크 주위에 벚꽃이 만발했다.

 

중성문 아래 계곡. 이제 곧 나뭇가지들이  물을 가릴 것이다.

 

중성문

 

옛길로 올라 바라보는 나월봉. 지난주 보다 진달래가 만개했다.

 

이 계절의 진달래 밭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산영루 앞을 한무리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 대피소에서 잠시 쉬다가 이들이 올라오는 것을 다시 봤다.

 

대피소 아래가 아직은 한적하다.

 

동장대 앞에서

 

제단 뒤 성벽 너머로 보이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계 사장이 피부관리를 엄청했다.

 

제단에서 대동문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돌계단

 

대동문. 저 문을 나가 조금 내려가면 진달래능선이 수유리로 가는 길과 갈라지며 나온다.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국문. 오늘은 여기서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갔다.

 

역사관 앞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