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법치가 그릇 돼서 그런지 하늘이 오늘도 내내 울었다. 3월 말 부터 시작한 주말 비가 한 번을 빼고 오늘도 이어졌다. 이게 가능한 건가? 내 나이 되도록 이런 건 처음이다. 어찌 생각하면 어릴적 겨울 3한 4온의 현대적 적용일 수도 있겠다. 7일 마다 비가 내리니 말이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상상도 않고 있었는데 어제 아침 운동 중에 헬친이 비가 오는데 산에 가냐고 묻는다. 이게 뭔 소리야 하며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새벽 3시까지 비가 오는 것으로 나왔다. 비가 와도 가는데, 그친 후면 말해 무엇하나?
새벽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하다. 산에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다시 벼개를 끌어 안았다. 그 바람에 또 늦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아내가 부엌으로 납실 생각을 않는다. 내가 차려 먹고 가겠다고 하니 그제야 일어선다. 엊그제 일산시장에서 산 대구와 청어로 탕과 구이를 해서 먹고 갈 준비를 하다가 밖을 보니 베란다 난간대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에 본 일기예보에선 8시에 그친다고 하였다. 아내가 알면 잔소리가 터지니 조용히 배낭을 방수용으로 바꾸고 짐을 옮겼다. 아내가 보더니 배낭은 또 언제 샀냐고 묻는다. 산 지 꽤 오래됐는데 뭔 소리냐고 하고 먹거리를 담고 3단 우산과 감마lt자켓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 바람에 지난주와 같은 시간의 열차를 탔다.
양주37번 시외버스에서 내려 계곡을 향하는데 다시 바뀐 일기예보에서 비가 종일 띄엄띄엄 온다고 한 탓인지 길이 한적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토요일 마다 내리는 비는 미쳤다. 오늘까지 7번의 토요일 중 6번을 비가 왔다. 비 때문에 일요일에 등산을 하거나 그냥 맞으며 걷거나 했고 한 번은 핑계로 거르기도 했었다. 오늘도 일요일에 오려고 했었는데 그러면 리듬이 깨지는 것 같아 그냥 나온 터였다. 걷다가 힘들면 탈출하자는 생각으로 여벌 옷도 없이 온 것이었는데 비 내리는 산길이 왜 그리 슬프고 처량했는지....
계곡 입구에 갔는데 길에 금줄이 쳐 있다. 가서 자세히 보니 데크공사로 출입을 금한단다. 그러면 아주 오랫만인지 처음인지 만에 찻길로 올라가야지. 펼쳐 든 작은 우산과 자켓에 의지해 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을 피해가며 걸었다. 우산을 든 팔 때문인지 허리가 불편하고 종아리가 저려온다. 늘 그렇듯 조금 걸으면 낫겠지 생각하고 오르는데 한참을 가도 여전하다.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역사관 까지만 갔다오자고 마음 먹으니 편해진다.
고어텍스 옷이 방수가 되어 일상에선 좋은데 땀이 많이 날 때는 습기 배출이 늦어 옷 안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오늘도 그랬다. 역사관 파고라에 도착해 더운 둥굴레차 한모금 마시고 바로 감마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앉아 쉬지도 않고 바로 빗속으로 다시 들어가 산 위로 향했다. 정한 곳은 없다. 그냥 발길이 가는대로 걷는다. 비에 점점 바지가 젖더니 등산화도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이왕 젖었으니 가는데 까지 가자 생각했다. 작은 계곡을 징검다리로 건너는 곳이 대성암 앞까지 여섯 곳이 있다. 그곳들을 모두 위태롭게 조심해서 건넜다. 내려올 때의 젖은 상태라면 그냥 물속으로 텀벙거리며 건너는 것이 더 안전했을 것이었지만 대성문에 오를 때 까지는 덜 젖어서 어떻게든 물과 빗물을 피해야 했다.
비가 내리는 길가에 병꽃이 피었고 금위영이건기비 앞에는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지난주에는 다 졌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맘 때 소백산 등에서 철쭉제를 한다. 비 내리는 산길에 붉게 핀 꽃들이 화려하게 보였다. 오늘 같은 날은 벌도 나비도 없는데....
마지막 징검다리를 건너 대성문으로 오르는 길은 참 힘들다. 우산을 들고 오르니 무릎을 짚을 수도 없다. 힘들게 대성문에 도착해 문루에 오를까 했지만 포기하고 쉬지도 않고 바로 평창동으로 향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43분이다. 지금껏 만난 사람은 대여섯 뿐이다. 대성문에서 가장 빠른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비에 다 젖으며 사람도 없는 산길을 걷는 것이 청승맞게 생각되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빗속에서 평창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급한 경사로가 비에 젖으니 미끄러워졌고 바윗길도 그랬다. 급경사인 데크길도 편하긴 했으나 미끄럽긴 마찬가지였다.
2.3키로로 표시된 길이 참 길게 느껴졌다. 다 젖은 채 내려오는 길을 오르는 이들을 두 번이나 만났다. 다 나 정도되는 이들이었다. 비 오는데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치지 뭔 고생들인지. 일선사 갈림길에서 정릉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평창동으로 내려왔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은 빈대떡이 좋은데.... 광장시장 순이네 빈대떡.
내린 비에 계곡이 된 곳이 세 곳이나 되었다. 그중 두 곳은 커다란 바윗돌을 타고 건넜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고마웠다. 한참을 내려와도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이 동령폭을 지나자 다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엉덩이도 배낭을 타고 내린 빗물에 다 젖었다.
11시 47분. 길을 다 내려와 7211번을 탔다. 정거장에서 바로 버스를 탄 탓에 몸에서 물이 흘렀다. 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연신내에서 내렸다. 차가운 빗속에서 4시간 넘게 둥굴레차 한 모금 마신 것이 전부다. 연신내 시장으로 가려다 불오징어집 골목으로 들어가 얼큰순대국을 주문했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 몸이 따스해졌다. 이제 살았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몰랐다. 비가 계속 내릴 지. 산속에선 그것도 더 많이....

계곡길 입구가 데크 교체 중이라며 막혔다.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곳인데 오늘도 여럿이 모여 있다.

대서문을 지나 큰길 가에 무량사가 있다. 비 오는 날 구름에 잠겨 있는 모습이 쓸쓸, 고요,적막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역사관에 도착했다. 이제 쉰 땀내가 나기 전에 비옷을 벗어야 한다.

역사관 앞 광장

법용사 아래 계곡에 물이 넘쳐 요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법용사 앞 다리 위에서 본 계곡. 장마철에나 볼 수 있는 듯한 광경이다.

중성문 아래 계곡도 물이 차고 넘쳤다.

중성문. 이제 곧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것이다.

노적사 아래 계곡. 사진으로는 맨 눈으로 본 풍광을 담아내지 못했다. 왼쪽 계곡이 참 좋았다.

길가에 병꽃이 활짝 피었다.

계곡 건너 산 중턱의 큰바위얼굴이 이제 많이 가려졌다. 계곡가엔 병꽃이 한창이다.

큰바위 얼굴 앞의 계곡과 길

산영루

경리청상창지 앞길

금위영이건기비 앞에 활짝 핀 철쭉

옅은 구름에 잠겨 있는 대성암. 참 평화롭다. 옷과 등산화가 다 젖어서 들어가 쉬고 싶었다.

대성문. 이제 바로 내려갈 것이다.

우산 덕에 아직은 덜 젖은 셔츠도 바람에 날아든 빗물에 무거워졌다.

대성문에서 한참을 내려 왔는데 아직도 1키로나 남았다.

드디어 찻길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한참을 더 내려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다.

여긴 망주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겠다.

자벌레가 배낭에 달려 왔다. 비에 나뭇가지들이 늘어져서 그랬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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