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5.17 대성문 - 행궁지

PAROM 2025. 5. 18. 12:17

이번 토요일은 비 소식이 없다. 참 오랜만이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비가 종일 많이 내렸다. 전날 그렇게 쏟아냈으니 오늘은 더 내릴 여력이 없을 터이다.
손주들 보러 목요일에 안산에 간 아내가 오늘 오후 늦게나 온다고 했으니 점심거리를 직접 챙겨야 한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빵 한 개, 수박 조금, 그리고 물 한 병으로 끝났다. 아침을 먹었는데도 6시가 겨우 넘었다. 뭉기적 거리는 것 보다 산에 가서 소요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가도 6시 31분 열차를 타기 충분하다. 집밖으로 나오니 안개가 옅게 끼었다. 어제 그렇게 쏟아붓더니 오늘은 맑은 하늘을 주려나 보다. 
 
느긋하게  걸어 역에 도착했는데 열차는 세 정거장 밖에 있다. 대곡역에 환승하려 내려서 사인보드를 보니 열차가 접근 중이다. 죽어라 뛰어 승강장으로 가는데 열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에스카레이터를 오랫만에 뛰어 올랐다. 이른 시간이라 빈 자리가 많다.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에 사람들이 제법 많다. 즉 산으로 가는 버스가 한동안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참을 기다려 동시에 도착한 704번과 양주37번 중 뒤에 온 차를 탔다. 버스에 내가 세 번째 승객이 되었다. 
 
산입구에 내리자 맑은 햇살이 반긴다. 기온은 초여름이라 버스 안에서 걷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었다. 해가 낮아 눈이 부셔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계곡입구에는 아직도 공사 중이라며 금줄이 쳐져 있었다. 찻길로 걷기 싫지만 그 길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오르막길을 부지런히 걸어 빨리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다. 등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향긋한 익숙한 냄새가 풍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자마자 하얀 꽃이 보인다. 아카시꽃이다. 어릴적에 참 많이도 따 먹었는데.... 그땐 먹거리 특히 단 것이 귀하기도 했었다. 
 
역사관에 도착해 데크로 올라가 의자에 배낭을 벗어 놓으려 하는데 다 젖어 있다. 앉으면 바지가 젖으니 앉을 수도 없다. 낭패다. 물 한모금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길로 들어갔다. 오늘은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산에 왔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하다. 비가 오지 않아 일찍 나온 이들이 많은 가 보다.  
 
어제 내린 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 낙엽이 쓸려 내리다 뭉쳐 있고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포장된 길을 벗어나면 길이 많이 파였을 것이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에 날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 계절에 얘네들만 없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지난주에 배낭에 달려온 벌레가 오늘도 많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숲을 지나며 부터 모자와 목, 얼굴 , 배낭에서 떼어내기 바빴으니까. 
 
법용사를 지나면서 비로서 흙길이 된다. 말이 흙길이지 사실은 거의 돌길이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길이 아니란 얘기다. 그 길에 들어서면 바로 날파리들의 군무를 본다. 빛의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펼쳐지는 어지러운 날파리 군무를. 그 군무 속으로 얼굴을 디밀면 그들이 콧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실제 그런 일도 생긴다. 참 피하고 싶은 상황인데 이 계절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길가 계곡의 물소리가 무척 크다. 수량도 많아졌다. 위에 있는 물 건너는 곳들은 무사할까? 그 생각에 내려오는 이들을 살폈다. 다들 무사하다.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가지? 그래, 보국문이나 대성문에서 행궁지로 내려오자.
염려했던 대로 물 건너는 곳들이 험해졌고 발디딤이 물에 찰랑거린다. 자칫하면 빠진다. 스틱을 펼껄하고 후회하지만 늦었다. 스틱은 대성문 문루에 올라 쉬면서야 폈다. 길이 거의 물이 고여 있고 질척거렸고 돌들은 젖어 미끄러웠다. 조심하지 않으면 엎어지거나 자빠질 것이었다. 그래도 우산을 쓰지 않고 오르고 있음에 감사했다. 한 손이 자유롭다는 것이 이리 좋을 수 있다. 느낌에 확실히 걸음도 빨라졌고 힘도 덜 들었다.  
 
긴 계곡길을 올라 대성암에 닿았다. 그런데 대성암 뒤에 뿌연게 있는 것 같다. 구름인가? 오늘 비 소식은 밤 늦게나 있었다. 갑자기 느낌이 쎄하다. 오늘도 비가 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길. 대성암 물 건너는 곳 위쪽 나무에 사람이 한 명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거의 매번 산길에서 마주치는 배낭없이 산길을 내달리는 젊은이다. 젊은이 쪽으로 가면 바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이다. 대성문으로 오르며 보국문으로 오르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그 길이 더 힘들고 미끄러울 것이란 사실에 그리고 지금 이 길에 있음에 남은 힘을 모아 올랐다. 
 
대성문 초루 앞 풍경이 멋지다. 구름이 깔린 사이로 어딘지 가늠이 안되는 시내가 동그랗게 보였다.  마루에 걸터 앉아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있는데 등산객 한 명이 올라오더니 마루 반대쪽에 바로 드러눕는다. 나보다 더 힘이 들었던가 보다. 앞에 남은 길에서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스틱을 폈다. 잠깐 쉬는 동안에 여러 사람이 지나갔다. 누운 이는 아직 그대로다. 자나?
스틱을 잡고 돌계단을 올랐다. 없는 것 보다 확실히 다리에 힘이 덜 든다. 덜 드는 부분은 팔이 가져온 것이니 총량은 같지만 느낌은 확실하다. 대남문으로 가는 성곽길이 둘레길 보다 힘이 더 들지만 짧다. 그런데 내려가는 급경사인 돌계단이 젖어 있다. 조심조심 스틱에 의지해 내딛는다. 
 
대남문에서 서울을 한 번 보고 바로 문수봉으로 내달렸다. 산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구름들이 위에 오르자 곳곳에서 보였다. 그러고보니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삼각산 쪽은 아직은 맑다. 문수봉에서 숨을 잠시 고른 후 남장대지능선으로 향했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상원봉을 올랐다. 삼각산이 그새 구름모자를 얼굴까지 덮어 썼다. 바위가 젖어 있어 조심조심해야 했다. 능선 위에 오르자 늦게 핀 꽃들이 반긴다. 근데 병꽃은 아는데 큰 꽃에 짙은 점들이 없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진달래일 수는 없다. 능선에서 청송대 쪽으로 가다가 바위에서 기어코 미끄러졌다. 엉덩이도 아프고 넘어지며 짚은 오른팔도 아프고. 피는 나지 않았지만 피멍이 들었다. 골도 흔들리는 느낌이다. 다행이 옷은 괜찮다. 큰일 날뻔 했다. 
 
행궁지 옆길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시장기를 느껴 자주 들리는 바위에 배낭을 풀고 돌맹이 위에 앉아 수박과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배낭에 든 술병은 꺼낼 생각도 못했다. 아직 팔도 아픈데, 남은 길이 십 리는 되는데 또 넘어지면?
행궁지삼거리에서 올라갈 때 걸었던 길을 만났다. 돌들은 아직 다 마르지 않았지만 물웅덩이는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질척이는 길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덕분에 바짓가랑이는 검불과 흙, 벌레 사체들로 검어졌다. 목에 달라 붙고 얼굴에 붙는 벌레들이 여기서 부터는 없겠다 싶으니 안심이 된다.  
 
해가 높아지며 산길에 보이는 이들이 많아졌다. 산악회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르면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보게 된다. 오늘 역사관 앞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 내 또래는 드물다. 산길은 젊은이들로 채워지고 있다. 밝게 웃으며 활기차게 걷는 그들이 보기 참 좋다. 나도 그랬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겠다.
계곡길이 막혔으니 긴 찻길만 남았다. 그길을 부지런히 내려와 계곡  입구에서 시간을 보니 정오가 막 지났다. 오늘은 산에서 네 시간 반 조금 넘게 있었다.  
 
숙이네에서 빈대떡 한 장을 먹고 구파발로 왔는데 롯데몰 앞에서 청소년들이 무대에 올라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한참을 보다가 집에 왔다.
젊음은 늘 좋다. 이젠 부럽다.

 

 

집을 나썼는데 안개가 꼈다.

 

계곡입구가 아직 데크공사 중이라 막혔다.

 

대서문 아래 길가에 아카시꽃이 피었다.

 

역사관에 도착했다.

 

법용사 아래 계곡에 물이 넘쳐 흐른다.

 

중성문 아래 계곡의 너른바위가 물에 거의 잠겼다.

 

노적사 입구 아래의 계곡길

 

산영루 옆의 와폭

 

용학사샘 아래의 계곡길

 

현호색인 것으로 알았는데 찾아봐야겠다. 잎이 영 아니니....

 

경리청상창지 옆길

 

금위영이건기비 앞

 

대성암. 눈에는 뒤에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있었는데 사진엔 안 나왔다.

 

힘들게 대성문에 왔다.

 

여기서 사진 찍고 안경을 흘려서 계단을 오르다 돌아와야 했다.

 

이 개구녕 밖은 낭떠러지다.

 

대남문으로 가는 성곽길에서 보는 문수봉

 

대남문에서 보는 서울

 

구기동

 

아직은 삼각산이 다 보인다.

 

순식간에 하늘이 검어졌다.

 

상원봉에 왔다.

 

문수봉에서 이곳으로 오는 사이에 삼각산이 가려졌다.

 

아직 의상능선과 그너머 고양은 보였다.

 

이꽃이 진달래라기엔 너무 크고 늦은 시기에 피어 있고 철쭉이라기엔 꽃속에 짙은 점이 없다. 꽃수술이 적어서 철쭉인가?

 

내려가다가 삼각산이 온전히 보여서 한 장

 

건너편 주능선 너머에 칼바위가 보였다.

 

중성문. 옆의 계곡엔 물이 넘쳤다.

 

다 내려왔다.

 

구파발역 롯데몰 옆에서 청소년들의 잔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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