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친구들 여럿이서 갑작스레 작당을 하여 1박 2일로 만리포해수욕장엘 가기로 했다. 친구들이라 하여 반말을 하는 사이는 아니고 20여년을 같은 직장을 다니다가 1 - 2년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지금은 다 퇴직을 했고 나이도 한명을 빼고는 한살 차이라 편하긴 하나 직장 다닐 때 지금만큼 친하지를 못하여 만나기 시작한지 7년이 되었어도 나와 한명을 빼놓고는 아직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다. 이 모임은 나의 퇴직을 계기로 안산에 현장이 있던 친구들이 적적해 하던 나를 찾아주기 시작하여 마음이 서로 통하던 이들을 하나 둘 추천했고 이들이 모이면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회원이 모두 참석을 하게 되었으나 지난 번 화천 모임에 가다가 내가 또 과속을 했고 딱지가 마누라 눈에 띄어 내차를 못가지고 가게 되는 바람에 압구정동에 사는 회장이 차를 갖고 가게 되었다. 사당역에서 만나 붐비는 고속도로를 피해 서산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태안에서 이틀간 먹을 것을 구한 후에 만리포 북쪽 해안가 숲속의 친구 매형 별장에 짐을 풀었다. 우리 모임은 항상 비를 몰고 다녔는데 그즈음에 계속오던 비가 11일에는 이상하게도 오지 않아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짐만 대충 풀고 해변으로 나갔다.
멀리서 볼 때 -다들 쉰이 넘어 형상만 어렴풋이 보였을 것이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물속과 해변에 사람들이 무척 많아 보여 다들 신이 나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내 경우 수영복 입고 해수욕장 물속에 들어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인데 다른 친구들도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무튼 소싯적 개헤엄을 치면서 제일 깊은 곳에서 텀벙거리며 해수욕장 중심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 놀고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거의 다 갔을 무렵 파도도 높고 힘도 들고 하여 얕은 쪽으로 나와 사람들과 섞이는 순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 아니 우리와 다르다.
사람들이 모두 수영복을 입긴 입었는데 위에 옷을 하나씩 더 입었다. 윗도리를 그냥 내놓고 철벅거리는 사람은 우리들 밖에 없다. 이런 창피하게....... 탱탱하게 젊은 친구들은 모두 햇볕에 살을 감추고 놀고 있는데 볼품없게 배는 잔뜩 나온 늙다리들이 벌거벗고 설치고 있었으니....... 하기야 벌거벗은 인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에스라인 인가를 자신 있게 보일 수 있는 몇몇 -아마 1%도 안 되었으리라- 은 내 눈을 즐겁게 해주긴 했다.
서너 친구는 아직 뭐가 잘못된 지도 모르고 물과 희롱하고 있다.
출출하여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마련해간 붕장어, 조개, 말린 생선 등 안주거리로 소주잔을 비우면서 흥이 났고 옆집 사람들이 듣건 말건 자정 너머까지 소리를 지르다가 여기저기 쓰러져 잠이 들었고, 새벽에 하나 둘 잠이 깨어 배고픈 부지런한 친구들이 아침을 준비하여 먹고, 일요일 상경에 길이 너무 많이 밀릴까 걱정이 되어 점심 전에 만리포를 출발했다. 간밤에 늦게까지 소리를 질렀던 나는 서산에서 냉면으로 점심을 때운 후 차안에서 잠을 자면서 편하게 올라왔는데, 청주로 가는 친구는 제차로 갔고 집이 안산인 범띠를 동네에 내려놓고 차는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옆에 멎었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했던 우리는 해산주를 하기로 하고 술집을 향해 가는데 그때까지 비몽사몽 하던 눈에 거리의 풍경이 확 들어 왔다.
아니 이런.......
이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만리포해수욕장에 놀러왔던 사람들 보다 노출 수위가 훨씬 더 높았다. 사람구경 하려면 그냥 이 동네에 의자 하나 놓고 있는 건데.......
8월 12일 오후 3시
우리는 압구정동 뒷골목에서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다음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어제보다 더 많은 술병을 치우고 있었다.
2007.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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