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종교사태…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에게 듣는다
현대사회는 복합·다층적 자기 믿음·주장만으로는 현실 똑바로 볼 수 없어
'옳다·그르다'라는 단문보다 '왜 그러느냐 하면' 같은 긴말을 써야 인식 확장돼
'사찰출입 금지'는 非불교적 정부도 각료 선정 등서 오해 부를 행동 자제해야
최근 천주교계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발언에 대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궤변' '골수 반공주의자'라는 비난 성명을 내는 등 한국 천주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내홍을 겪고 있다.불교계는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문제로 정부·여당 인사를 사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등 집권층과 갈등을 빚고 있다. 자칫 종교를 둘러싼 사회적 마찰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분열을 가져오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원로 종교학자로 서울대 교수를 지낸 정진홍(73)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참 어려운 문제다" "답답하다" "걱정이다" "고민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정 교수는 "종교 연구자로서 원론적인 이야기"라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다.
- ▲ 정진홍 교수는“종교인들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다”며“정직하고 순수한 의도도 전체 상황의 맥락 속에서 충분히 성찰되지 않으면 맹목적인 자기확장의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정진홍 교수는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4대강 반대를 주장하는 데 대해 "종교인들이 특정한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현대사회는 종교적인 경험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다층적·다면적·복합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이 특정한 사안을 이야기할 때 자기 자신의 사고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복합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때 '성찰'은 신앙의 순수성만으로 포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상당히 지성적인 판단도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신념만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태도를 종교인 스스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종교의 자기성찰은 종교가 요청하는 교리에 입각해 스스로 완전해졌느냐를 성찰하기보다는, 내 발언이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얼마나 유의미하게 전달될 것인가를 성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 지난 13일 함세웅 신부(왼쪽) 등 진보성향 사제들이 정진석 추기경의‘용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은 기본적으로 신앙의 맥락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 정 교수는 "사목적인 고뇌의 과정이 잘 드러난다"며 "책임 있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의 긴급 사제회의 소집을 중단시킨 것에 대해서도 "참 잘한 일이다. 그걸 자제력이라고 생각하지, 겁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템플스테이 예산 지원 문제가 개신교와 불교계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정부와 마찰을 빚는 빌미가 된 것과 관련해서 정 교수는 "개신교계에 대해서는 '불교는 1500년 넘은 전통 문화인데 예산 줘야지, 배가 아파서 그래?' 라고 이야기하고 싶고, 불교계에 대해서는 '어른스럽게 개신교계에도 문화적인 배려를 해주라고 정부에 말하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는 물론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지만, 개신교도 근대 초기에 상당히 개화에 기여했고 이제는 한국의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템플스테이 지원이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 지난 9일 서울 조계사에 내걸린‘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입 거부’현수막. /오종찬 기자 1979@chosun.com
정진홍 교수는 정부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정 교수는 "정부가 일부러 종교 편향정책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종무(宗務) 행정이 있지 종무 정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며 "그러나 정부가 오해를 부르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출범 때 행정부와 청와대 인사부터 개신교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공연한 논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계가 정부·여당 인사들의 사찰 출입을 금지한 것에 대해서는 "뼈가 있고, 앙금이 있는 이야기로 불교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종교도 조직 정서가 있으니까 불만은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 인사 다 들어와라"고 해야 위대한 종교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정부 예산 지원 없이 스스로 자립하자'는 말은 높이 평가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도움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것이다.
■종교인은 "옳다, 그르다"라는 '짧은 말'보다 "달리 보면" 같은 '긴 말'을 해야
정진홍 교수는 종교인들에게 복합적인 상황에 적합성을 갖는 언어를 주문했다. "종교인들의 말이 너무 짧다. '옳다' '그르다' 만 있다. 짧은 말은 특성이 있다. 감탄사·명령문·욕설이 짧다. 이런 말들은 길게 해도 동어반복이 된다. 문장이 길어도 동어반복은 신념의 강화는 될지언정 인식의 확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정 교수는 "종교인들은 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말에 '왜 그러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 보면' 같은 계사(繫辭)들이 많이 있어야 안 보이던 것도 보이고 타자와의 공존도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정치는 종교의 발언 존중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야
정 교수는 정부와 종교의 공존과 타협을 강조했다. "정치도 힘이고, 종교도 힘이다. 그 둘이 분리되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충돌하고, 유착하고, 서로 이용하기도 한다. 종교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한계를 둘 것은 아니다. 통치영역 안에 종교가 힘의 실체로서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정치 쪽에서 종교 현상에 대해서 현실적인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종교계의 의견을 존중하고 각 종교의 발언들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국민들,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 안목 가져야
정 교수는 국민들에게는 종교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경제·산업·예술 등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비판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참 귀한 것이다. 귀한 것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앙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종교 공동체 내에서 행위 규범이 얼마나 건전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번 사태가 자기 주장을 절대화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고 극복하느냐가 우리 종교계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진홍 교수는
정진홍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덕성여대·명지대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1960년대 말 세계적인 종교학자 엘리아데에 대해 연구하면서 문화적 현상으로서 종교 연구를 이끌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