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넘게 만에 쉼터의 내 자리를 억지로 찾아 앉았다. 먼저 차지했던 이가 일어서는 바람에. 늘 앉던 자리에 앉으니 마음이 편하고 좋다.
손이 아직 곱다. 오늘 아침 영하 13도 낮에도 영하 8도라고 해서 단단히 준비를 했는데도 산속에서는 무척 추웠다. 특히 내려올 때는 옷 속으로 파고 드는 찬바람에 숨이 막혔다. 지금 손이 새빨갛다.
지난주엔 산친구들과 청와대 뒷산을 거닐어서 여기를 못 왔는데 아내는 맨날 뭐 볼게 있냐고 추운데 고봉산이나 쉽게 다녀오란다. 그건 아니지. 어서 북한산을 보고 싶다. 게다가 년말이라 금요일 마다 약속이 있어서 자칫 올해 안에 못 올 수도 있다. 시간이 될 때 무조건 와야 한다. 지난주와 이번주에 비와 눈이 왔으니 산은 하얗게 화장을 했을 거다. 어서 보고 싶다.
서울에 살 때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분의 아들이 결혼을 해서 토요일을 영등포에서 보냈다. 내 문제는 부페에 가면 세 번 이상 들락거리면 안 되는데 어젠 네 번이나 다녀왔다. 결혼식 부페에 내가 끔찍히 좋아하는 막걸리와 홍탁삼합이 있는 집은 처음 봤다. 그래서.... ㅠㅠ 그 바람에 저녁을 굶었다. 아니 못 먹었다.
어제 퇴근하고 온 아내가 저녁부터 음식을 만들며 산에 뭐 갖고 갈 거냐고 묻는다. 샌드위치와 컵라면 중에서 추울 땐 컵라면이 훨~~ 좋다.
어? 그런데 밤에 뭘 잔뜩 만들지? 월요일이 큰 녀석 생일이었구나. 사실 저희들 낳느라고 고생하고 키운 엄마를 위해서 다 큰 놈들이 음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랫만에 출근하지 않는 아내가 늦잠을 즐기지 않고 내 이불로 건너 왔다. 4시 조금 넘었는데 산에 뭐 갖고 가냐고 또 묻는다. 나 아직 더 자야 하는데.... 그리고 종아리가 아프다고 주물러 달란다. 눈길에 넘어졌다고. 오늘 아침 잠은 끝났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월요일이 생일인 큰 녀석 주려고 음식을 여러가지 한 거였다. 녀석이 좋아하는 것으로.
간만에 추운데 산길을 걸으려니 준비가 많다. 아이젠 확인하고 핫팩 챙기고 추위에 대비해 내복바지도 입고 양말은 두 개를 신고 모자는 몽골용과 겨울용으로 챙겨 넣고 아내가 끓여 준 녹차와 샌드위치를 넣고 나가다 다시 들어와 마스크 챙기고.... 참 바쁘다.
그바람에 등산화를 신기 전에 시간을 보니 7시 40분이다. 내가 늘 타던 열차는 이미 갔다. 다음 차는 7시 52분이니 집을 나서자마자 뛰다시피 걸었다.
탄현역 계단 앞에서 보니 다음 열차가 6정거장 앞에 있다. 뭐지? 아직 2분 전인데 궁금해 하며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앞역인 야당역에 열차가 있다. 그래 그래야지 놀랐잖아.
겨울이라 그런지 대학이 방학을 해서 그런지 열차에 빈자리가 많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기분이 좋다. 구파발역에 내렸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다. 갑자기 교통카드 잔액이 얼마인지 궁금해져 확인하니 4백 원 남았다. 하마면 버스 탔다 다시 내려올 뻔 했다. 후불교통카드를 만들던지 해야겠다. 앞에 온 704번을 탔는데 8772번 보다 한참을 늦게 산아래에 내렸다.
버스에 같이 타고 오신 분이 들꽃으로 들어간다. 9시 출근인가 보다.
산으로 들어서는 길에 산객들이 확 줄었다. 추워서 그런가 보다. 계곡입구에 서니 길이 하얗다. 예쁘다. 참 잘 왔다. 옷을 잔뜩 껴 입었지만 더운 줄 모르겠다. 계곡에 물도 많다. 물위에 투명한 얼음이 덮여 얼음 아래로 공기방울들이 흐르는 예쁜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산에 겨울이 왔다. 폭포에서는 얼음 사이로 세차게 물을 뿜어내고 있다. 한겨울인데 참 활기차다. 그래 이런걸 보려고 오는 것이지.
아이젠을 찰까말까 하다가 역사관까지 왔다. 주머니 밖으로 손을 꺼내니 순식간에 시려온다. 켑자켓만 벗어 넣고 다른 건 엄두도 못 냈다. 물만 한 모금 마시고 어디로갈까 고민하다가 문수봉을 바로 가기로 했다. 찻길은 눈이 녹아 있었다. 선봉사 앞 비탈은 아마 소금을 뿌렸을 거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참 없다. 산길 처음으로 계곡길에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큰 길엔 띄엄띄엄 있지만 보통 때의 반에 반도 안 되었다. 그러니 길은 한적하기 그지 없다. 겨울답다.
몇 번의 미끄러짐 후에 중흥사 위 대피소 삼거리 앞에서 아이젠을 꺼내 신고 썬그라스도 끼고 이어폰도 끼었다. 아이젠이 새거라 자꾸 돌에 걸려 비틀거리게 한다. 그래도 걱정 없이 푹푹 딛으니 참 좋다. 이대로면 백두산도 가겠다. 춥고 하얀 산길을 홀로 걸으니 갑자기 친구들이 보고 싶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 친구. 걷다보니 여름에 알탕하던 곳을 지났다. 지금 들어가면 꽤 춥겠지?
행궁지 가는 길을 지나쳤다가 뒤돌아 와 청수동암문으로 가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눈 쌓인 봉우리들과 능선이 궁금해서 였다. 행궁지를 지나며 스틱을 꺼낼까 고민도 했지만 오늘은 아이젠만으로 걷자고 생각했다. 아이젠 덕에 미끄러지지 않고 행궁지 옆길을 오르니 훨씬 쉽다. 행궁지 뒤를 크게 돌아가는 길은 능선에 노출된 곳이 있어 바람이 세게 불어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나는 내 앞에 찍힌 두 명(?)의 발자국에 의지해 편하게 올랐다. 능선 끝자락에 거의 다다라서 처음 두 명을 만났는데 앞에 오던 사람이 이길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는다. 이런 ㅠㅠ 낮이라 발자국이 보여 괜찮지만 여기서 부황사 쪽으로 잘못 가면 절벽을 만나는데.... 왼쪽으로 가지 말고 직진하라고, 그러면 행궁지로 간다고.
능선에 오르니 비교적 하늘이 맑다. 집 옆 제니스빌딩도 환히 보인다. 길이 미끄러워 상원봉으로 가지 않고 볕이 바른 바위에서 바로 청수동암문으로 갔다. 그리고 바로 문수봉. 간만에 왔으니 사진을 찍고 하산 시작. 대남문에서 바로 내려오려다 예의상 대성문에 들려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하산하는데 계곡에 올려치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막이 켑자켓을 입어야 하는데 멈추면 얼어 죽을 거 같다. 덜덜 떨며 눈 덮힌 긴 계곡길을 걸었다.
새벽에 뜯은 핫팩은 이미 차갑다. 손은 꽁꽁이고 바람은 사정없이 옷 속으로 스며든다. 이럴땐 뛰어서 체온을 올려야지. 아내가 새벽에 해 준 샌드위치와 녹차는 꺼낼 생각도 못하겠다. 그저 빨리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겠다는 생각만이다. 그렇게 겨우 내려왔다. 이제 집에 가서 딸이 준 생연어와 아내가 새벽에 끓인 감자탕으로 피로를 풀고 다시 일주일을 시작해야 겠다. ㅎ~~
털모자도 쓰고 추위에 대비해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계곡길. 이런 모습을 보러 겨울산엘 간다.
계곡길. 바위는 눈에 덮였고 물은 얼음에 덮였다.
한여름에 폭포가 이런 모습이면 참 좋겠다. 춥다.
중성문으로 오르는 길. 나무가 꺾여 을씨년스럽다.
산영루 옆의 와폭이 숨구멍만 빼고 다 얼었다.
대피소 갈림길 아래의 억새밭
행궁지로 가는 길. 저 축대는 언제 쌓은 것일까? 아마 3 - 400년 전?
남장대지능선에 오르기 전 암벽을 넘어서서 뒤돌아 보면 주능선 너머로 불암산과 그 아래 동네가 보인다.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본 삼각산
노적봉 아래로 중흥사가 보인다.
능선에 오르면 이런 평안한 산길이 나온다. 아마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평평한 흙길이 아닌가 싶다.
의상능선과 원효봉 저 뒤로 보이는 산들은 양주과 파주에 있는 것들일 것이고 더 멀리는 아마도 북쪽이겠다.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한 장
청수동암문 사이로 구파발이 보인다.
비교적 힘 들이지 않고 문수봉에 왔다. 아직은 추위를 덜 느꼈다.
비봉능선이 한 덩어리 산군으로 보인다.
추워 보인다.
이제 여기서 내려갈 거다.
대성암 문이 열렸기에 한 장
금위영이건기비가 있는 너른 마당
바뀐 이 이정표도 국립공원 것과 거리와 방향이 다르다.
큰바위 얼굴도 춥다.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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