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꽃샘추위도 없을 듯하다고 온 몸이 느꼈는데도 왜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바로 내려왔는지.... 산 아래 들꽃에 있다는 아롬이의 전화를 받고 그냥 너는 너대로 즐기라 한 후 대피소까지 갔다가 느긋하게 할 짓 다 하면서 내려오는 것이 좋았을 듯하다.
이번주는 월요일에 같이 산에 다니던 친구의 모친이 별세를 하셨다는 소식에 문상을 갔다가 덧술로 소맥을 한 바람에 화요일에 편의점에 일 하러 갔다가 곤죽이 되었고, 수요일엔 혈압약 받으러 가서 위통을 상담했는데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바람에 또 퍼 마시고, 목요일 덜 깬 상태에서 04시에 손주들 등교 시키러 가질 않나, 어제 금요일엔 손주들 등교 시키고 팔곡동 밭에 가서 일하고 집에 와 힘들어 바로 퍼질러 뻗었었다. 그중 낮 시간 짬에 지겨운 주식시장들, 아니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뭐하는 짓인가 싶어 주식시장을 보기가 싫어져서 많은 손해에도 이제 하나씩 처분하니 차라리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다.
겨울에 아니 지난주까지 입던 옷들을 이제는 입기 버겁다. 조금 더 가벼운 옷들로 입었다. 일기예보에는 지난주와 별 차이는 없다. 하지만 느껴지는 공기에 찬기운이 사라졌다. 아내는 오늘도 새벽 7시 조금 지나 출근하면서 샌드위치에 녹차까지 보온병에 넣어 두었다. 이즈음은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뜨거운 것이 필요하진 않아 보온병은 배낭에 들어가지 못했다. 집을 너무 일찍 나섰다가 시간을 보고 다시 들어가 열차시간에 맞춰 나왔다.
북한동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며 계곡입구까지가 길게 느껴진다. 이러면 힘이 많이 드는데 큰일났다. 어제 밭에서 삽질을 많이 했어도 푹 쉬었으니 괜찮을텐데 왜 이러지? 아하! 운동을 하루 걸렀구나.
산에 사람들이 참 많다. 산길과쉼터, 심지어 화장실에 까지도. 오늘 이들을 헤쳐가려면 힘 좀 들게 생겼다. 오늘 걸을 길을 빠르게 검색한다. 그래봐야 늘 걷던 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경리청상창지에서 행궁지 옆 산길을 지나 남장대지로 오르기로 했다.
계곡에 개나리, 진달래가 잔뜩 물을 머금고 터트릴 날만 기다리는 듯하다. 폭포 위쪽의 생강나무가 꽃을 피웠다. 어제 집앞 산수유가 꽃을 피운 것을 보았는데.... 폭포 위 길 옆 나무가지들이 연한 연두색 잎을 내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다. 이 색이 앞으로 한 달 정도 이어지겠지. 그 동안에 실컷 봐야지.
행궁지로 가는 삼거리와 계곡을 넘어 경리청상창지 안으로 올라섰다. 황량하다. 너른 터에 낙엽만 쌓였고 공사를 하려던 것인지 20키로짜리 푸른색 빈 마대자루만 널려있다. 능선으로 가는 바윗길을 지나니 지난 겨울 걸은 사람이 없는 듯 길엔 낙엽만 수북하고 하루 전에 찍힌 듯한 멧돼지 발자욱만 있다. 여러번 다닌 곳인데도 발길 흔적이 없어 찾아 헤매면서 힘들게 길을 만들며 한참을 올랐다. 이쪽 산은 절벽만 피해 위로 오르면 길을 만난다. 그런데 낙엽이 너무 두꺼워 자꾸 미끄러지게 한다. 스틱을 꺼내려고 하다가 귀찮아 그만 두었다.
지금 오르는 길이 내가 유일하게 손을 쓰지 않고 남장대지로 오르는 길이었는데 미끄러운 바람에 두어번 바위를 잡아야 했다. 능선에 오르니 사위가 발아래 깔렸다. 얼마 후면 이 능선에 화장을 짙게 한 40대 여인 같은 정향꽃 향기가 흩날리겠다. 그때도 꼭 와야지.
저 건너편 주능선은 아직 꿈속처럼 멀다. 앞에 펼쳐진 의상능선이 반갑다. 산아래에 위세를 떨치던 나월봉은 저 아래 돌아서 몸을 굽히고 있다. 상원봉에 서니 삼각산 남쪽의 능선들이 문수봉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상원봉에서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다가 경리청상창지 이후 처음 사람을 만났다. 이후 문수봉 부터는 미어터지는 듯 많은 산객들 덕분에 잠시의 조용함도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걷다가 내려가는 주의로 바뀌었어도 최소 10키로는 걷자는 생각을 거의 지켜왔으니 오늘도 그정도로 적당히 걷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이른 것 같아 오랫만에 대피소까지 가려고 했다.
오늘 내가 걷던 시간에 내 앞에서 걷던 수많은 단체등산객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구성원으로 보아 회사에서 온 것 같은 이들도 있었고, 동호회도 있는 것 같았는데 참 부지런한 한국인들이다.
능선을 터덜거리며 걷다가 대동문에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전화가 왔다. 아롬이다. 같은 학교 샘들과 들꽃에 있단다. 한 시간 후면 내려갈 것 같다고 하고 걸음을 빨리했다. 가끔은 뛰면서. 아마 몇 년 내에 제일 빨리 내려왔을 듯 싶다. 그렇게 해서 잠깐 딸 얼굴을 보고 혼자서 바로 집으로....
새로 산 모자를 쓰고 산에 가자
계곡폭포의 얼음이 다 녹았다.
폭포 위에 핀 생강나무꽃
옅은 연두색 잎도 고개를 내밀고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중성문 아래 계곡에도 푸른빛이 돈다.
중성문
네 발로 넘어가면 보이는 옛길 저 너머로 나월봉이 한참 높다.
산영루. 이 위는 아직 얼음이 많이 남았다.
행궁지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남장대지능선이다.
주능선 너머로 불암산이 보인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면 이런 흙길이 당분간 펼쳐진다.
의상능선 너머 저 한참 뒤로 내가 사는 동네가 반갑다. 남장대지 옆 바위에서 본 모습이고
나한봉과 의상봉이 보이는 풍경은 상원봉 조금 앞에서 본 모습이다.
앞의 사진을 찍은 곳에서 옆으로 돌아서면 삼각산이 이렇게 멋지게 보인다.
상원봉이다.
문수봉의 옆 모습. 절벽 끝에 내려갈 때 매달리는 쇠난간이 보인다.(확대해서 보아야....)
청수동암문으로 가는 성곽길에서 본 비봉능선
문수봉과 청수동암문 사이로 구파발이 보인다.
문수봉에서 보이는 삼각산
구기동계곡
대남문 지붕아래에서 본 내려가는 길
보국문으로 가다가 돌아서봤다.
남쪽전망대 위에서 본 주능선과 문수봉, 남장대지능선
주능선의 남쪽전망대
북쪽전망대
공사중인 보국문
칼바위와 형제봉
공사중인 대동문
복원을 하려면 제대로 수문도 하고 성곽도 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 내려왔다.
남장대지능선의 청송대에서 본 주능선
문수봉에서 둘러본 풍경
주능선 남쪽전망대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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