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25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3. 3. 26. 07:42

거실 창밖 왼쪽엔 산수유가 노랗고 오른쪽엔 살구꽃이 옅은 분홍빛을 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바로 앞엔 단풍나무 잎이 막 돋아 나며 여린 연두빛을 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벚꽃이 필 때까지 이어지는데 이걸 보는 것이  이층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주는 연천에 다녀왔고 상가 입점주가 나간다는 연락도 받았다. 동네회의도 있었고 초딩 친구들 모임도 있었으니 간만에 한 주를 바쁘게 보냈다. 손주 보러 안산에 가지 않으니 다른 일들이 생긴 것이다. 나이 들어 바쁘게 사는 것이 좋다고들 하니 좋았다고 해야 하나? 어제 친구가 카스에 웃는 사진을 올리라고 했다. 이제 잘 찍고 잘 살펴보고 좋은 사진을 올려야겠다. 어쩌다 돌아보면 촛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도 많았는데 살펴 보는 친구들이 있으니 신경을 써야겠다.  
 
토요일의 아침 패턴은 늘 같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무거웠다. 어제 모임에서 과음, 과식도 않고 일찍 집에 왔는데 왜 그랬나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어제 아침에 운동을 하고 난 뒤에도 다른 때 보다 힘이 들었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세월의 흐름을 타게 되는 것인가 보다.  
 
구파발역에서 주말버스가 704번 보다 앞에 왔는데 다들 뒤로 몰려갔다. 북한산성입구를 지나 밤골, 송추 등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인가? 정거장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말버스엔 몇 명만 타니, 뭐 나는 편하고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와서 고맙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이 많다. 제쳐 나갈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다 젊은이들이니 청량하다. 계곡입구 길가에 개나리가 잔뜩 피었다. 올해 처음 본 개나리꽃이 반갑다. 개울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온몸이 추워진다. 아직 겨울이 남았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분홍빛이 눈을 막는다. 무거웠던 눈꺼풀이 번쩍 들렸다. 지난주에 창원 거부기 님이 올린 진달래꽃을 나도 일주일 만에 실물로 보았다. 이제 온 산이 온갖 꽃으로 덮이겠구나. 다음주에는 배낭에 막걸리 한 병을 넣어 와서 잔에 꽃을 띄워야겠다. 계곡폭포 위에 진달래와 생강나무꽃이 예쁜 자태를 드리우고 있고 그 주변을 연두색 싹들이 두르고 있다. 이른 봄날에만 즐기는 눈 호사이다.  
 
역사관앞에서 쉬는 사이 앞질러왔던 이들이 다 지나간다. 죽어라 빨리 걸어도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자꾸 경쟁하려는지.... 
오늘은 바위꾼들이 무척 많다. 대피소에서 잠시 쉬며 들은 얘기는 인수봉 등이 낙석위험으로 폐쇄되어 노적봉과 만경대 등으로들 와서 그렇단다.  
 
다음주에 헬스장 친구들과 산에 오기로 했고 내가 앞장을 서야할것 같다. 남장대지능선을 올랐다가 내려갈 생각이니 오늘은 지난주에 안 걸었던 대피소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 산길을 걷는데 자꾸 뒤가 땡긴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 두 명이 엄청난 배낭을 지고 빠른 속도로 나와의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잡히기 싫어서 중흥사에서 봉성암 가는 길로 오르는데 태고사 앞으로 돌아온 둘이 저만큼 앞에 가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빠른 거야? 은근히 객기가 발동되었다. 바지 엉덩이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걸어서 대피소 아래에서 바로 뒤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배낭을 벗고 잠시 쉬며 나눈 잠깐의 대화로 그들이 바위꾼들이고 환갑은 전인 것 같은데 그들도 뒤를 잡은 내가 대단했었나 보다. 괜히 흐뭇~~  
 
3월의 끝인데 이제 시산제를 하는 1906년에 개교한 고교동문산악회에서 대피소 슬레이트지붕 아래에 플래카드를 거는 것을 보고 배낭을 다시 멨다. 대피소 마당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을 향해서 발을 옮긴다. 대피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평온한 흙길을 지나 얕은 고개들을 몇 개 넘으면 시단봉이 있고 그곳에 동장대가 있다. 저 건너 남장대지능선을 오를 때 늘 마주보게 되는 동장대인데 여기서는 여길 바라보던 곳이 어딘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저기 어디쯤이겠구나 하며 지나친다.  
 
성곽을 따라가다가 제단에서 삼각산을 바라보고 잠시 손을 모은 후 긴 돌계단을 내려가면 대동문이다. 이곳도 사람들이 많다. 가을단풍철 같은 옷차림새에 눈이 어지럽다. 겨울엔 거의 무채색이었는데 봄이 사람들 가슴에도 왔나보다.
힘이 드는지 눈이 더 침침해 진다. 4월엔 수술이 되는지 검사를 하기로 했으니 어서 오기만 기다리지만 한편으론 겁이 무척 난다. 눈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니.... 수술을 한 친구들의 감탄사에 의지한다.  
 
내 앞에서 칼바위를 지나온 분들이 서로 길을 달리한다. 오르다 만난 사이인가 보다. 보국문 방향으로 예쁜 사람이 온다. 괜히 기분이 좋다. 주책이다.
보국문에서 바로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오기 싫어 대성문으로 가려고 했다. 지난 계절들의 비에 흘러내린 흙과 돌이 안정되지 않아 너무 위험해서 였다. 그러나 그냥 낙엽이 잔뜩 덮인 그 길을 터덜거리며 내려왔다. 아직 시간이 무척 이른데....  
 
내려오면서 보니 아침 보다 꽃들이 더 활짝 핀 것 같다. 오늘은 역사관 앞 공원이 꽃 한계선이었지만 점점 더 올라가겠지. 그래서 능선 위에도 만발할 것이고. 그때면 산친구들과 한바탕 화전놀이를 해야겠다. 친구들이 무릎 때문에 산에 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역사관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혹시나 산악회 사람들을 만날까 두리번 거렸지만 이제는 인걸이 다 바뀌었나 보다. 앞 사람 발뒤꿈치와 엉덩이를 보다가 따라서 계곡길로 내려섰다. 이제 내려갈 때는 대서문을 지나는데....
다 내려와 배낭을 고쳐 매려는데 새 가게가 생겼다. 냉면집이다. 갈비탕, 홍어와 만두, 떡갈비 메뉴도 보인다. 어디 보자. 음~~~

 

자, 이제 슬슬 걸어 보자.

개나리가 마중 나왔다.

진달래와 생강나무도 반갑게 맞고 있다.

오늘 역사관 앞과 내가 지나쳐 온 이들 다 바위꾼들이었다.

역사관 건너 공원에 핀 꽃들

드디어 푸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성문 아래 작은 나무에도 잎이 돋아났다.

이제 곧 가려질 얼굴바위

산영루 건너 계곡에 아직 얼음이 남았다.

와폭에도 아쉬운 얼음이 남아 계절의 끝을 부여잡고 있다.

용학사샘 앞길. 이길은 꽃비가 함박눈처럼 내리는 길이다.

아기현호색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피소로 가는 길. 저 앞에 바위꾼 둘이 오르고 있다.

대피소에 왔다.

동장대 앞 전망대

제단 뒤 성곽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웃었다.

보수공사 중인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이제 내려가면 된다. 시간이 일러 저 뒤에 보이는 문수봉에도 갈 수 있었는데....

공사 중인 보국문

경리청상창지 앞 길

행궁지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오면 있는 계곡

북한동역사관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