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 9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4. 3. 10. 08:37

요즘 하는 일도 없이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발을 담은 일이 많아서 그런가? 여유를 갖고 싶어 비행기표를 밤 마다 뒤지고 있다. 하나 걸리면 바로 떠날 생각이다. 오랜만에 할 배낭여행에 겁도 나고 갈 곳도 많아졌다. 코로나 때문에 비었던 시간이 무척 아쉽다. 이제 막상 다시 가려니 물가도 많이 올랐고 언어도 잊었고 체력도 떨어졌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 
 
이틀을 내리 손주들 보러 안산에 다녀와서 피곤했는데도 산을 빼먹기는 싫다. 요 며칠 오른쪽 종아리가 땡기는 듯 했지만 내손마사지로 달래고 전과 같은 시간에 배낭을 꾸렸다. 그런데 영하 5도다. 봄날에 왠 추위지? 낮엔 6도까지 오른다니 지난주와 같은 복장에 모자만 바꿨다. 배낭을 챙기고 보니 아이젠 쇠줄 끊어진 것을 고치지 않았다. 새 것을 배낭에 넣었다가 빼고 뻰치 두 개로 펴진 쇠줄을 힘겹게 조였다. 이 아이젠은 어쩌면 오늘이 생을 마감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일찍 일어난 덕에 여유를 부리며 역으로 갔다. 역시 열차엔 경로석만 빈 자리가 있다.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산으로 갔다. 
 
주말버스에서 내리니 찬기운이 훅 느껴진다. 겉옷을 어찌해야 할 지 고민이다. 그냥 걷다가 더우면 그때 벗기로 했다. 그리고 계곡 안으로 들어가니 봄기운이 돈다. 확연히 보이지는 않지만 푸른 기운이 사방에 서려 있다. 물도 따스해 보였다. 하지만 물가엔 살얼음이 보인다. 서암사 위의 계단을 오르며 본 앞 사람들을 앞서가려 하는데 거리가 좁혀지질 않는다. 집에서 나올 때 오늘은 종아리 때문에 천천히 걷겠다고 아내에게 말을 했는데 십리는 고사하고 1리도 못 와서 어긋났다.  
 
초반의 무릿수로 역사관까지 오는 길이 힘들었다. 등이 다 젖어서 티셔츠 차림으로 오르기로 했다. 아직은 길에 눈이 보이지 않으니 스틱도 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혼자 흥얼거리며 올라야 하니 이어폰을 끼었다. 늘 그렇듯 선암사 오르는 비탈길이 힘들다. 지난주까지 눈길이었던 법용사 윗길이 누렇다. 중성문 아래는 길에 눈얼음이 듬성듬성 있다. 그런 길이 대피소갈림길을 지난 다리 앞까지 이어졌다. 나무다리를 지나자 길은 눈얼음에 덮였어도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즉 미끄럽지는 않다는 얘기다. 물론 겨우내 많이 밟혀 꽁꽁 얼은 눈들은 아직 단단해서 발을 딛으면 목을 뒤로 잡아 끌어 중심을 흐트러지게 했다. 
 
남장대지능선을 걸은 지 오래됐다는 생각에 발길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왜 이리 발이 무겁지? 초입에서 무리한 탓이다 싶다.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종아리가 나 여기 있다고.... 이럴땐 무릎을 짚고 올라야 후환이 없다.
행궁지 앞에 닿으니 오름길에 갈 일이 막막하다. 그냥 돌아 내려갈까? 여기까지 3.9키로라니 그래도 8키로는 걷는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젖어 미끄러운 진흙 비탈길을 낙엽을 골라 밟으며 오르는데 힘들어 숨이 턱턱 막힌다. 평소 근력운동 위주로 한 벌이다 싶다. 한번에 능선에 오르지 못하고 중턱 바위에 엉덩이를 비스듬히 붙이고 숨을 골랐다 다시 가야 했다. 
 
행궁지 뒷산 능선에 오르니 눈이 쌓인 채 얼어 있다. 여기가 바람이 많은 곳이라 눈이 많이 날려와서 쌓였는데 앞사람 발자국이 얼어 정강이까지 눈이 파여 있다. 한눈을 팔다 그곳에 빠지면 실려가야 할 듯했다. 많이 미끄럽지는 않은 덕에 밧줄 아래까지는 아이젠 없이 왔는데 이 위로는 아닌듯 싶어 꺼내 신었다. 이길은 북향에 급경사에 눈이 다져졌고 밧줄도 일부는 눈속에 묻혀 빠지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남은  한 개의 줄 만으로 올랐는데 고쳐진 아이젠 덕이 컸다. 그리고 그 위의 길은 계속 눈이 있었지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들이었다. 하지만 남장대지능선 막바지 구간은 역시나 힘이 많이 들었고 길 중간중간에 눈 때문인지 소나무가 뿌리째 쓰러져 있거나 가지가 크게 부러져 내려서 길을 막아 오르는 데에 평상시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들었다. 이번 겨울 막바지를 보내며 힘겨운 등산을 해서 아쉬움을 함께 실려 보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글쎄.... 
 
청수동암문 위에 부러져 내린 소나무 가지를 겨우 피해 문수봉에 올랐다. 일기예보 대로 맑아 멀리까지 보였다. 하지만 뿌연 뭔가가 하늘에 끼어있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내 광화문 시절의 대남문 문구멍이 보이던 공기질은 다시 보기 어려울 듯하다. 잠시 쉬다가 내려오는데 개들이 바삐 움직인다. 얘들은 배낭만 내리면 덤벼든다. 이젠 자기들끼리 구역도 정해졌다. 북한동 음식점들이 철거되며 남은 놈들인데 이젠 몇 세대가 이어지며 야생화되었다. 이놈들 때문인지 이제 산에 꿩들이 안 보인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조치를 해야 된다.  
 
대남문에서 바로 내려오기가 밋밋해 보국문이나 대동문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종아리가 아는 체를 하는 바람에 대성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길은 눈이 돌틈을 메워 걷기가 년중 가장 편하다. 이제 다음 겨울에나 이런 길을 즐길 수 있겠다.
늘 느끼듯이 내려가는 길이 없었으면 싶은데 절대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은 중간에 재미를 하나 넣었다. 용학사 아래 너른 계곡가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한낮이 되니 날도 따스해져  배도 채울 겸 한가롭게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차로 순간을 즐겼지안 길에 얼음들만 없으면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물가에서 보였던 먼저 내려간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서 서둘러 배낭을 꾸려 부지런히 내려왔다. 그러나....   역사관에서 쉬지도 않고 오랜만에 계곡길로 방향을 잡았다. 산을 내려와 버스정거장으로 바로 가서 곧 온 버스로 연신내로....  그리고 집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웬일로 아내가 막걸리상을 차려 놓았다.
이제 마셔야겠다.
 
 
눈 녹은 물로 계곡이 넘쳤다. 계곡폭포 위에서 찍었다.

 
아침에 날이 추워서 겨울복장이다.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이미 기진맥진했는데 초반의 무리 때문이었다.

 
중성문. 지난주에는 길이 온퉁 하얗었는데 오늘은 돌틈에만 눈이 남아 있었다.

 
얼음 때문에 네발로 오르지 못했던 길을 드디어 올라 고개를 드니 나월봉이 웃고 있다.

 
산영루 위의 와폭도 많이 녹아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대피소갈림길을 지나 나타나는 나무다리부터 눈세상이 다시 시작됐다.

 
 행궁지. 언제 발굴과 복원이 끝나려는지....

 
행궁지 뒷길로 오르면 나타나는 급경사 구간. 줄에 의지해 올라야 한다.

 
남장대지능선 바로 아래의 바위에서 보이는 삼각산. 앞에 보이는 소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 조심하며 바위를 올라야 했다.

 
앞에 보이는 주능선 뒤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면 바로 보이는 의자소나무

 
남장대지능선의 평온한 길

 
청송대에서 보이는 주능선의 모습

 
주능선 안부에 대성문이 있다. 오늘은 저곳에서 내려왔다.

 
의상능선과 그 너머 고양시. 산 아래에서 높게 보였던 나월봉과 증취봉이 저 아래 있다.

 
상원봉에서 보는 삼각산. 여기서 보는 삼각산이 제일 멋있다.

 
상원봉의 표지판. 아래 두 개가 새로 달렸다.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벽에서 보이는 비봉능선

 
문수봉의 뒷모습

 
청수동암문. 성벽 위의 소나무가 쓰러져 성벽에 누워 있었다.

 
모처럼 맑게 보이는 구기동계곡과 서울 시내

 
비봉능선

 
문수봉에 왔으니 증명사진 한 장

 
사람이 없는 사진을 얻고 싶었는데 이 사람 많은 곳에서 그건 과욕이었다.

 
대남문

 
대성문

 
대성암

 
볕을 바로 받는 왼쪽과 북사면의 산길. 눈이 돌과 바위틈을 막아 걷기 편하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 너른 마당을 만났다.

 
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