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친구가 토요일에 산에 가냐고 묻는 전화를 했다. 특별한 일이 없어 그럴 생각이라고 했고 산에서 보자고 했다. 시간과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많이 먹었는지 편두통이 있는 것이 체한 듯하다. 누룽지를 끓여 먹고 점심거리를 챙겨 배낭을 꾸리니 시간이 남는다. 서둘러 가면 7:15분 차를 탈 수 있을 듯하다. 역에 도착하니 에스카레이터가 아직도 수리 중이다. 헐레벌떡 달려 플랫폼에 바로 도착한 열차를 탔다. 환승하러 대곡역에 내렸는데 마주오는 이들이 많다. 역시나 구파발로 가는 열차는 방금 떠났고 다음 차는 대화역에 있다. 22분 간격이 5분으로 줄었다.
주말버스는 거의 한 장소에 정차한다. 나는 늘 그 앞에 선다. 제일 편한 자리에 앉아 산으로 갔다. 이젠 아침에 쌀쌀하지 않다. 얇은 겉옷이라 체온을 높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그대로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 입구에 입산금지 플래카드와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만경대 근처에서 낙석이 발생했는지 백운대로 가는 대동사 윗길과 주능선의 용암문에서부터 대동문 까지의 길이 폐쇄되었단다. 오늘 내가 걷기로 한 길은 포함되지 않았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이즈음에 늘 그렇듯 물이 많이 줄었고 바닥엔 이끼가 잔뜩 끼었다. 초봄에 피었던 진달래꽃들은 다 졌고 병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엔 다른 산에 갔었으니 진한 향을 흩뿌리는 정향나무꽃이 피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보통이면 바로 보국문으로, 일찍 출발했으면 대성문을 들렸다가 산친구를 만나러 가곤 했는데 오늘은 남장대지능선을 지나 가기로 작정을 했다.
땀이 나지 않은 듯했는데 역사관 앞에 도착해 겉옷을 벗으니 등이 다 젖어 있다.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끼었다. 설악가를 들으며 다시 길로 나섰다. 대동사 위는 폐쇄라는데 백운대 쪽으로 가는 이들이 있다. 아마 원효봉으로 가는 이들인가 보다.
천천히 걷기로 다짐을 했지만 어느새 기를 쓰고 걷고 있다. 오늘은 서둘러 걸어야 한다. 그래야 제때 보국문에 도착할 것 같았다. 5월1일에 운동을 쉬고 목요일에 유산소운동을 한 탓인지 걷기에 힘이 들었다. 행궁지 옆 오르막길 바위에서 스틱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스틱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산길을 올랐다. 오늘은 오랜만에 행궁지를 빙돌아 오르는 나무계단길-거의 다 무너져서 수선이 필요했다-로 올랐다.
행궁지를 돌아오를 때 전화가 왔다. 칼바위를 지나 오를 것이란다. 나는 남장대지능선을 향하고 있으니까 늦으면 대성문에서 보자고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 능선에 힘겹게 올라 정향나무꽃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아직 피지 않았다. 꽃몽우리도 피지 않았다. 이 능선이 가장 춥고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니 그럴만도 하다. 아직 보름은 더 있어야 피려나? 실망을 하고 상원봉을 지나 바윗길로 문수봉을 향했다. 문수봉에 오르니 바위 끝 작은 웅덩이에 한 소녀가 꼼짝도 않고 앉아 있다. 내가 내려올 때 까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두르느라 배낭도 벗지 않고 사진만 찍고 바로 대남문으로 내려와 옆길로 해서 대성문으로 갔다. 여기서 보국문 가는 길 중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 정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걸 보러 힘차게 걸었다. 이곳은 남장대지능선보다 고도가 백 미터 정도 낮기에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꽃은 몽우리만 만들었고 향도 없었다. 다음주에는 꼭 다시와서 볼 것이다.
보국문에 스무 발자국 남았는데 저쪽에서 눈비돌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보고나니 다리가 풀린 것이 느껴지며 허기도 졌다. 서둘러 내려가 끼니를 때우고 쉬고 싶다. 발바닥을 찌르는 모래알도 빼내고 싶다. 오늘은 길을 걷다 두 번이나 등산화를 벗고 모래알을 빼냈다.
한참을 내려와 작년에 알탕을 하던 곳에서 배낭을 벗었다. 눈비돌은 바로 알탕을 하러 물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고픈 속에 샌드위치와 방울토마토를 욱여 넣었다.
산을 다 내려와 막걸리를 마시려고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하여 편의점에서 얼음컵과 맥주를 한 캔 사서 나눠 마시고 구파발에서 헤어져 집으로.
자, 가자 산으로!
계곡입구에 붙은 등산로 통제 플래카드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폭포에 물이 졸졸 흘렀다.
역사관 앞. 이제 나뭇잎이 짙어졌다.
중성문도 나무에 많이 가려졌다.
나월봉이 높이 보이는데 오늘은 저 보다 높이 오를 것이다.
산길 곳곳에 병꽃이 피었다.
산영루. 연두색 잎이 예쁘다.
능선에 오르다 돌아본 삼각산
주능선이 무성해지고 짙어졌다.
남장대지 옆에서 본 의상능선. 미세먼지로 능선 너머의 동네가 뿌옇다.
상원봉에서 보는 의상능선과 그 너머의 고양시
의상봉에서 보이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문수봉에 올라 본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저 소녀는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었나?
숲에 묻힌 대남문
대성문
이 사진을 찍은 곳 옆에 정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정향나무 꽃몽우리. 다음주에는 활짝 피겠지?
내가 걸은 길들이 능선을 따라 있다.
서울은 숲에 숨었고 미세먼지에 갇혔다.
전망대 주위의 나무들이 전망을 가렸다. 정리를 해야겠다.
보국문. 여기서 산친구를 만나 내려갔다.
때 이른 알탕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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