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약속했던 날이다. 오늘은 창원에서 거부기 님이 올라와 북한산을 오르기로 해서 연신내역에서 10시 반에 만나기로 했었다. 산을 워낙 즐기고 잘 걷는 친구라 따라가다가 쓰러질까 겁이 난다.
아내는 식빵이 떨어졌다며 김밥을 만들어 용도별로 두 그릇에 담아 줬다. 창원에서 오는 친구야 이른 새벽에 떠나야 되지만 나는 늦은 시간에 만나기로 했으니 여유가 많다. 일기예보를 보니 기온이 어제 보다 많이 높다. 양말은 바닥이 두꺼운 것으로 신고 옷은 다 얇은 것으로 입었다. 뭉기적거리다 9시가 훨씬 지나서 집을 나섰다. 열차에 승객들이 무척 많다. 전철을 타고 가다 생각해 보니 대머리바위 쪽으로 갈 것이 아니면 구파발이 버스가 많아 산에 가기에 좋아 2번 출구로 장소를 바꿨다. 눈비돌 님과는 보국문 부터 대남문 사이 능선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등산객들 줄이 길게 늘어섰다. 물방개 님이 먼저 와 있었고 곧 거부기 님이 먼길 끝에 왔다. 조금 더 기다려 평택에서 조은네 님이 온 후 만원인 주말버스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산으로 가는 길이 밝은 햇빛에 눈이 부시다. 일기예보에서는 오전엔 구름이 표시됐는데. 조금 걸었을 뿐인데 땀이 흐른다. 계곡 비장애길 끝 나무그늘 아래 의자에서 거부기 님은 등산화로 바꾸고 다른 이들은 스틱을 폈다. 나는 안경을 썬그라스로 바꿨다. 나는 스틱을 내려가는 길에서 쓸 생각이었다. 눈이 부셔 안경을 바꿨더니 돗수가 없는 썬그라스라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일장일단이 있다. 오랜만에 같이 하는 등산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모두 예전 같이 어울려 산에 다닐 때의 추억들을 반추한다. 내가 40대, 50대 때의....
얘기하며 오르다보니 금방 역사관이다. 천천히 걸으니 힘도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11시가 넘었다. 평소에 지금 시간이면 나는 이제 내려올 곳에 있다. 해가 머리 위에 있으니 덥다. 땀이 앞가슴까지 적셨다. 잠깐 쉬고 다시 걷는다. 역시 거부기 님은 잘 걷는다. 걷는 정도가 아니라 제일 뒤에서 오는 일행을 챙기다가 어느새 선두로 와서 말동무를 한다. 중성문을 겨우 지나는데 눈비돌 님이 보국문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지금 속도면 행궁지와 남장대지를 지나 대남문까지 가려면 두 시간도 더 걸린다. 그래서 바로 대남문으로 가기로 했다.
산길이 나뭇잎 덕분에 그늘이 졌다. 썬그라스라 눈부심은 없는데 길이 어둡고 초점이 맞지 않아 자꾸 헛디뎌서 미끄러진다. 안경으로 바꿀 생각을 못하고 그냥 걷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대남문에 닿으니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던 삐돌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대성문을 대남문으로 착각해 그곳에 있었다.
정오가 한참 지나 배가 고파서 서둘러 자리를 폈다. 거부기 님이 배낭에서 미더덕 회를 꺼냈다. 그것도 무려 2키로를. 처음 먹는 미더덕회 맛은 향긋한 바다향에 멍게의 진한 입맛을 당기는 맛, 그리고 달짝지근한 뒷맛에 쑥향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주로 생선찜에서만 건져 먹었던, 먹을 것도 거의 없어 뜨거운 국물만 먹고 버리던 미더덕이 이런 회라니.... 거기다 씹히는 것이 많다. 여기엔 소주가 최곤데 모두의 배낭에 들은 것은 맥주 5개가 전부다. 난 산 위에선 마시지 않지만,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작은 플라스크를 꺼내 미더덕 만큼이나 작은 잔으로 조금씩 나누니 금방 바닥이 났다. 회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쉽다. 모두 꺼낸 먹거리를 싹 비우고 일어나 문수봉으로 향했다.
배를 채우고 산을 오르려니 죽을 맛이다. 조금 더 참고 내려가는 길에서 배낭을 풀 껄 하며 후회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고생으로 때워야 한다. 바로 내려가길 바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먼길을 온 친구가 봉우리는 올라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반 강제로 끌고 갔는데 봉우리에 오르니 모두들 경치를 즐기며 좋아한다. 이제 내려가는 길, 삼천사로 갈까 하다가 상원봉으로 향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연신내로 정해졌다. 나는 집에 일찍 가야할 일이 있어서 빠지기로 하고.
남장대지능선의 정향나무꽃을 보러 갔다. 상원봉에 오르니 바람에 정향나무꽃향이 묻혀 왔다. 잠깐이었지만 확실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꽃은 보이지 않는다. 능선 끝자락에 가면 볼 수 있겠다는 기쁨이 생겼다. 남장대지능선길은 험하다. 조심해야 한다. 거의 바윗길이고 의상능선 쪽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덕분에 경치는 좋다. 조심스럽게 바삐 능선길을 걸어 능선 끝에 갔는데 꽃과 향 모두 없다. 꽃을 보려면 다음에 다시 와야 한다.
조심스레 능선을 내려와 행궁지를 돌아가는 길로 해서 계곡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와 산길 안 큰 바위가 가리고 있는 나의 알탕 장소로 모두 갔다. 그리고 알탕을 하러 먼저 들어간 둘 중 하나가 바로 물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난 뭣도 모르고 물로 들어갔는데 종아리가 칼로 도려내는 듯하다. 물이 너무 차갑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많아지고 맑아졌지만 수온은 오르지 않았고 겨울 그대로였다. 땀에 온몸이 쩔은 상태라 물밖으로 나와 몸을 덥히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 머리까지 담그고 닦는데 견딜 수 없는 아픔에 바로 물밖으로 도망 나왔다. 그런데 옷을 입으려면 다시 물을 건너야 한다. 그냥 수건을 적셔 땀을 닦을 껄하며 후회하지만 어쩌랴 다시 물을 건너야지. 살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으며 배낭 있는 곳에 오니 살았다는 안도감에 시원함이 그제야 느껴진다. 무척 개운하다. 산길로 들어가 걷는데 뒤에서 오는 친구가 팬티자국만 젖었다고 놀린다.
어울려 산을 내려오니 4시 반이 넘었다. 연신내에 가서 어울릴 시간이 있나보니 그러면 6시 전엔 택도 없을 것 같아 34번 버스 안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구파발에서 먼저 내렸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오늘은 9시가 넘어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
여기서는 이렇게 넷이 출발한다.
게곡에 물이 많이 맑게 흘렀다.
폭포도 물이 많으니 멋지다.
잎이 무척 푸르다. 여름이 왔다.
중성문
산영루
산영루 옆 비탈길을 올라 온 조은네 님
금위영이건기비를 보는 친구들
대성암
오랫만에 비봉능선 쪽 하늘이 맑다.
문수봉에서
상원봉에서
남장대지 앞에서
너무들 사이로 보이는 행궁지
역사관 앞.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산객들이 적다.
다 내려 왔다.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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