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21 대피소 - 보국문, 눈길을 걷다.

PAROM 2024. 12. 22. 08:33

오늘이 동짓날이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다음 절기는 소한이 되겠다. 이제 열흘 후면 다시 새해가 된다. 참 빠르다. 동지라 그런지 오늘 무지 추웠다. 계속 산길을 걸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바람이 무척 차서 큰 고생을 할 뻔 했다. 
 
한 주 거르고 온 북한산은 밝고 조용했다. 한밤에 깨어 본 일기예보는 너무 좋았다. 서너 시간 눈이 오는데 기온은 새벽 영하 3도에서 영상으로 오른단다. 그런데 불길한 기분이 느껴진다. 얼핏 본 예보는 체감온도가 영하 11도에서 13도 였다. 허나 그 예보는 다시 찾아 보려 해도 볼 수 없어 핸펀에 자장가를 틀어놓고 다시 베개를 벴다.  
 
아들 집에 다녀와서 피곤해 하는 아내가 또 일찍 일어났다. 찬밥을 끓여 먹고 보온병에 뜨거운 녹차를 넣고, 귤 한 알과 며칠 전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가져온 햄버거를 전자렌지에 돌려 넣고 물 500미리 넣는 것으로 오늘 등산준비는 끝났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아내는 내가 빨리 나가는 것이 좋은 듯하다. 그래야 제대로 쉬니까. 
 
7시 15분에 떠나는 열차가 있다. 그것을 타러 이번 겨울 들어 처음 중등산화를 신고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날이 아직 어두워서 그랬는지 안경을 쓰지 않은 것을 몰랐고 집을 나선 지 한 시간도 더 지나 계곡을 걸을 때에야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안경 없이 세상을 보던 때가 그립다.  
 
간밤에 눈이 내려 미끄러워진 길을 조심스레 걸어 열차와 버스를 타고 산으로 왔다. 차에서 내려 산을 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은 반질반질해 졌다. 아이젠을 신을까 생각하다가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했다. 눈은 습설이라 새눈을 밟으면 등산화 바닥에 들러붙어 뒤꿈치를 올려 놓았다. 스틱도 펴지 않고 걷다가 내리막에서 미끄러져 두 번이나 넘어지고 나서야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벌써 산을 내려와 옆에서 쉬고 있던 이들에게 물으니 암문에 오르려면 미끄러워서 아이젠을 신어야 될 거란다.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야 하니 아이젠을 신고 겉옷을 벗어 넣고 이어폰과 썬그라스를 끼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길로 나섰다. 잠깐 쉬는 동안에 지나쳐 왔던 이들이 모두 지나 갔다. 그들을 다시 지나쳐 바삐 걷는데 눈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다. 특히 등산객들이 적게 다니는 옛길은 눈이 돌을 덮고 있어서 헛딛게 만들어 더 힘이 들었다. 
 
오늘은 어느 길로 걸을까 고민하다 눈 때문에 힘이 많이 드니 문수봉은 포기하고 대피소에서 가는데 까지 가기로 했다. 지난주에 오지 않았으니 종주를 하려고 했는데 다음주에 또 걸으면 되니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대피소 길로 오르는데 눈이 계속 발에 들러붙어 힘들게 했다. 쉬지 않고 대피소에 오르니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이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려갈 때 대서문을 지나서 다시 만났다. 대피소에 가니 안전줄로 지붕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놓았다. 지난번 눈 때문에 기둥이 약해졌나 보다. 앉지도 못하고 배낭을 멘채 서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동장대를 아니 대동문을 향해 출발. 이때까지는 숨이 차고 힘들어서 추운 줄을 몰 랐다. 그러나 산모퉁이를 지나 능선을 만나자 찬바람이 맞이했다. 그리고 구름이 지나가는지 사위가 어둡고 습하다. 춥다. 배를 만져보니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둘러 걸어서 땀을 내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다. 
 
대동문을 지나 보국문으로 성벽길을 걷다가 아무도 딛지 않은 눈길을 만났다. 신났다. 백 미터도 넘게 내 발자국을 내느라 추운 줄도 몰랐다. 아무도 딛지 않은 눈 밑은 위험하다. 결국 돌을 잘못 밟고 넘어졌다. 그래도 신났다. 길옆 나뭇가지의 눈이 검은 티에 묻어 하얗게 만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보국문을 향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능선길을 걸었다. 눈에 묻혀 걸었는데 새로 신은 낙타털 양말 덕분인지 발은 시렵지 않았다.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계곡으로 내려섰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차가워 체온이 많이 떨어졌고 눈길이라 평소보다 힘이 더 들었다. 다음에 걸을 길을 남겨둘 필요도 있었다. 보국문에서 내려오는 너덜길은 발디딤이 가장 나쁜 곳이다. 안경 대신 쓴 썬그라스가 나름 길을 잘 보여준 덕분에 자빠지지 않고 큰길로 내려설 수 있었다. 늘 그러하듯 마주치는 이들 중에 아는 이가 있는지 보면서 내려왔는데 역시나 없다. 법용사 위의 공터 의자에서 아이젠을 벗는데 손이 곱아져서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미끄러워진 길을 따라 다시 역사관 앞으로 와서 우선 미들레이어를 꺼내 입고 아이젠을 배낭에 넣고 차가워진 햄버거를 뜨끈한 녹차와 함께 먹었다. 바짓단은 눈길을 걸은 덕에 고드름이 붙어 있었지만 걸어야 할 길이 아직 한참 남았기에 그냥 볼 수 밖에....
역사관에서 편하게 찻길로 내려오니 정오가 지났다. 추운날 집에 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마시는 막걸리가 그리운데 없어 지난 봄에 담근 살구주로 뒷풀이를 하고 피곤해 바로 곯아 떨어졌다. 눈길은 늘 힘들지만 좋다.

 

 

자, 가자. 산으로....

 

산으로 가는 길. 구름이 낮게 내려 앉았고 길은 미끄러웠다.

 

수문터에서 원효봉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 계곡에 눈이 소복했다.

 

폭포에도 눈이 내렸다.

 

역사관 앞. 산에서 막 내려 온 데크 앞 두 명에게 눈이 미끄러워졌는 지 물었다.

 

중성문. 이 두 명을 산행 중 계곡에서 부터 대여섯 번 만나고 헤어지고 했다. 전에는 많아야 세 번이었는데.

 

노적사 입구를 향해....

 

산영루. 옛길로 걷느라 헤어졌던 이들을 다시 만났다. 이들의 걸음이 빨라 내가 계속 뒤를 밟다가 앞지르는 형국이었다. 이번엔 태고사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길에서야 앞질렀다.

 

대피소와 봉성암 갈림길.

 

대피소에 올랐다. 저 지붕 아래로 들어가지 못하게 줄이 둘러져 있었다.

 

대피소 앞 광장. 곧 구름이 몰려와 시야가 짧아졌다.

 

동장대로 가는 고요한 숲길. 아직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

 

대동문으로 가는 길의 선바위. 동장대가 보수공사 중이라 빙 돌아와야 했다.

 

대동문 위 봉우리의 제단. 성벽 너머로 삼각산이 보야야 하는데 시커먼 구름이 가렸다.

 

제단 옆에서 한 장. 안경 만은 못하지만 썬그라스가 길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대동문. 눈이 오면 앞사람이 디딘 발자국을 따라 걷게 된다. 그래야 헛디딜 위험이 사라지니까.

 

아직 아무도 딛지 않은 길을 만났다.

 

아무도 딛지 않은 길에 내 갈짓자 발자국을 냈다.

 

칼바위와 형제봉이 근사하다.

 

보국문. 이제 여기서 내려간다.

 

계곡에 쌓인 눈. 이런 모습이 참 좋다.

 

역사관 앞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서문

 

다 내려왔다.

 

샤워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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