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였으면 집이 아니라 화천 용담계곡의 텐트에서 눈을 떴어야 했다. 금요일에 갈겨니를 한 사발 잡아 큰 것들로는 매운탕을 끓이고 작은 것들로는 튀김을 만들어 막걸리 한 병 곁에 놓고 철렵을 즐기고 잘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화천에 가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낮 기온 32도와 정오경에 소나기가 내릴 것이란 예보에도 산에 가기로 했다. 이번주도 아내가 손주들 보러 목요일부터 안산에 가 있어서 혼자 준비해야 한다.
아침 기온이 며칠 째 24도인 것이 그나마 고맙다. 일어나자마자 밥 먹고 설겆이하고 점심꺼리를 챙기고 했는데도 7시가 한참 남았다.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등산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900번, 80번이 곧 도착이란다. 대화역으로 갔는데 열차가 10분을 넘게 있다 출발한다. 지난번에도 이 시간에 그랬었다. 열차시간표를 찾아보니 주말 6~8시 대에는 간격이 17분까지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양주37번 버스가 만석이 되어 구파발을 떠났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은 덥지 않다. 오랫만에 계곡길을 걷게 되어 지난 폭우에 어찌 변했는지 궁금하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귀를 때린다. 아직 오름길이 아닌 나무그늘 터널이라 시원하다. 계곡엔 아직 물이 많다. 길 곳곳에 물이 넘치며 남긴 홍수의 잔해물들이 나무 밑둥과 바위틈들에 걸려 있다. 저걸 다 치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 더운 날이라 그런지 일찍 나온 이들이 많다. 계곡길은 그래도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역사관 앞 의자에서 배낭을 벗는데 물이 흐른다. 벌써 땀이 이렇게 많이 날 줄은 몰랐다. 얼려 온 물병의 얼음이 벌써 다 녹았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다. 이어폰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소리에 흥얼거리며 길로 들어섰다. 중성문 아래 바위에 앉으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뭐라고 하시는데 못 들어서 이어폰을 빼고 들었다. 부왕사 건너 편 산의 작은 암자로 가신단다. 남장대지능선에서 보이던 곳인가 보다. 조심해서 가시라고 하고 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뒤에 오던 다른 이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다. 저 분이 혹시 오래전에 지나가던 산꾼들 아무에게나 돈을 달라고 했던 분인가?
중흥사 아래 계곡물을 건너며 손수건을 물에 빨았다. 한동안 시원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걸을 수 있겠다. 아까 할머니에게 문수봉으로 간다고 했으니 이 길 끝까지 가야 한다. 이렇게 더운 날은 중간에서 알탕만 해도 되는데 말을 잘못했다. 더워서 물을 만날 때마다 손수건을 적셨다. 손수건을 적시기 위해 쭈그리고 앉는 것도 힘들다. 산영루 앞 폭포에서 쉬지 않고 온 바람에 마땅히 걸터 앉을 곳이 없다. 보국문갈림길을 지나며 부터 대성암까지는 물 건너는 곳도 없다. 앞뒤로 보이는 산객들 덕에 죽어라 걸었다.
대성암 앞에서 수건을 물에 적시고 대남문으로 바로 오르는데 자꾸 쉬고 싶다. 길가 작은 바위에 배낭을 내리고 쉬는 사이 제친 두 산객이 모두 지나갔다. 그래도 바로 일어날 수가 없다. 역사관 앞에서 바른 모기약 덕인지 아직 모기가 덤비지 않는다. 앞 가슴에 동전만한 크기만 남기고 웃옷이 다 젖었다. 바지도 엉덩이 위는 색이 짙어졌다. 더운데 바람도 없다. 죽을 힘까지 짜내며 대남문에 올라 구기동에서 오는 바람을 한동안 즐기다 문수봉으로 올랐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듯하다. 무릎을 짚으며 겨우 올랐다.
문수봉에 이미 사람들이 많다. 다들 젊다. 보기 좋다. 웬일로 바람이 분다. 바위에 걸터 앉아 10분 넘게 바람을 즐겼다. 아직 티셔츠는 마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꾸 올라온다. 자리를 비워줘야 겠다. 남장대지로 가려다가 거미줄에 얽히는 것이 싫어 다시 대남문으로 내려와 성벽을 따라 대성문으로 갔다. 아주 오랫만에 걷는 느낌이라 신선해서 좋았다. 대성문 아래에서 쉬었다 가려고 했으나 이미 마루가 꽉 찼다. 그대로 보국문으로 향했다. 바위능선을 지나며 갑자기 후회가 된다. 대성문에서 바로 내려갈 껄. 쇠난간이 있는 바위를 난간 밖에서 오를 때 발이 삐끗해서 깜짝 놀랐다. 큰일 날 뻔했다. 이젠 예전의 몸이 아닌데 자꾸 잊는다.
남쪽전망대가 있는 봉우리 이름이 성덕봉이란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봉우리로 바로 오르는 돌계단이 폭우에 무너져 우회로로 가라고 걸어 놓은 현수막 덕분에 알게 되었다. 성곽길의 나무들 잎이 무성해져서 전망이 많이 가려진 것이 아쉽다. 보국문으로 힘겹게 내려오니 여자아이들 둘이 성곽 위에 앉아 있다. 내려오라고 말하려다 지쳐서 그만 두고 문앞 돌계단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서양여자들 넷이 올라온다. 한참을 쉰 후 내려오려고 보니 이 넷도 성곽 위에 올랐다. 이런....
내려오는 길이 미끄럽다. 엉덩방아를 찧을 뻔하며 겨우 내려와 물 만나는 곳마다 세수를 했다. 행궁지갈림길에 왔는데 안경이 없다. 대동문갈림길 위에서 세수하며 모자에 걸쳤는데.... 뒤돌아 다시 올라가며 찾았지만 없다. 세수하던 곳 아래, 물 떨어지는 곳까지 뒤졌지만 안 보인다. 대신 그자리에서 쉬다가 썬그라스를 벗어 놓고 출발한 이들에게 소리쳐 알려주고 되돌아 내려오는데 허전하다. 월요일에 탄현 안경점에 가서 다시 맞춰야 한다. 안경이 없다고 생각하니 길이 더 안 보인다. 구름이 잔뜩 끼었으니 썬그라스를 쓰기도 뭐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걷는 수 밖에 없다.
용학사 아래 물가로 갔다. 점심을 먹어야 했다. 먼저 쉬고 있던 십여 명이 빠져 나오며 빈 자리가 많아졌다. 나는 물 가운데 너른 바위로 갔다. 그런데 바위가 많이 높아졌다. 30센치는 더 높아진 것 같다. 사실 높아진 것이 아니라 비에 계곡 바닥이 파인 것이다. 족욕만 하며 햄버거와 수박을 먹었다. 햄버거를 물고기들에게 던져주니 잘 먹는다. 그런데 짙은 색 빵껍데기엔 덤비지 않았다. 고놈들 입이 고급이다.
내려오는 길이 참 길다. 그렇다고 걷지 않을 방법은 없다. 반바지까지 다 땀에 젖었으니 어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쉬고 싶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이 더운 여름날 조금 더 걸은 덕에 몸은 녹초가 되었다. 버스와 지하철이 시원해서 피서지 보다 좋다.
집 앞 편의점이 cu로 변경해 개업준비 중이라 서울막걸리가 없다. 힘들어 죽겠는데도 집에 다시 들어가서 자전거를 끌고 나와 큰 곳으로 가서 두 병을 사 왔다.
한 병을 다 마셨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어두워져서 창문을 열고 마루바닥에 누웠다 눈을 뜨니 아침이다.
산으로 가자!

백운대는 구름에 덮였다. 길을 막은 곳이 없어 좋다.

수문자리에도 물이 많이 흘렀다. 검었던 바위들이 하얘졌다.

계곡폭포에도 물이 있다.

땀을 잔뜩 흘리고 난 후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중성문 아래 계곡. 지난주 보다 물이 많이 빠졌다. 길도 많이 복구가 된 모습이다.

중성문으로 절에 가시는 두 분이 오르고 있다.

대성암. 참 복 받은 장소란 생각이다.

대남문 지붕아래에서 광화문 쪽을 봤다. 구름에 가려졌다.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문수봉 기념사진. 옷과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보현봉

대성문

나뭇잎들이 지나온 길을 덮었다.

성덕봉에서 본 성곽 모습

이 현수막으로 이 봉우리가 성덕봉임을 알게 됐다.

금줄 밖에서 삼각산을 찍었다.

남쪽전망대에서 보는 형제봉과 백악, 인왕산

북쪽전망대는 나뭇잎이 다 가렸다.

보국문. 담장 위에 두 명이 올라 있다.

두 명이 여섯이 되었다.

경리청상창지 위의 물 건너는 곳. 이번 폭우로 돌들이 많이 떠내려 왔다.

다시 역사관 앞으로 왔다.

대서문

다 내려왔다. 에구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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