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0.18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5. 10. 19. 07:30

짐을 하나 덜어냈는데도 개운하지가 않다. 아마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않은 것과 마무리를 깨끗이 하지 않고 도망치듯 나와서 일 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읽은 공자님의 말씀 중 나이 들어 버려야 할 것들이 내게 모두 맞는 것들이라 절절함을 느꼈었다. 이기심, 과거 집착, 아는 척. 즉, 고집, 욕심, 자존심, 비교심.
지난주에는 비를 핑게로 산을 걸렀다. 추석이 있는 열흘 간 손주들이 와 있다는 핑계로 운동도 쉬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겨우 숨만 쉬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한 운동에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 아침 8시에는 개는 것으로 나왔다. 등산로가 막혔는지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서 살펴보니 북한산은 소귀천계곡만 통제되고 있다. 일찍 침대에서 나와 배낭을 챙겼다. 아내가 덩달아 일찍 일어났다. 충전을 마친 이어폰과 샌드위치, 대추, 포도, 물을 넣고 머렐등산화 대신 덜 무거운 캠프라인을 신었다. 겨울용이라 웬만한 물은 그냥 건널 수 있다. 7:14 열차를 타러 가는 길의 하늘은 금방 비가 그쳐서 무겁다. 
 
텅 비어 도착한 704번을 타고 산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는 길이 깨끗하다. 비가 청소를 했나보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물소리가 요란하다. 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계곡 숲길이 처음 보는 색이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하늘이 내려 앉은 듯한 느낌이다. 시원한 물소리에 가슴이 뻥 뚤려야 하는데 답답하다. 겨울용 등산화라 발이 무겁다. 그래도 지난 번 보다는 가볍다. 머렐을 신고 왔으면 또 고생을 했을 것 같다. 
혼자 계곡을 걸으면 숫자를 세는 습관이 들었다. 백까지 되풀이 한다. 그러다 놀라서 다른 생각을 하지만 이내 다시 숫자를 세고 있다. 그래서 특정 구간은 몇 걸음인지 알고 다시 확인하곤 한다. 역사관 앞에 도착해 이어폰을 끼고나면 없어지는 습관이다. 역사관 앞 데크의 의자가 다 물이 흥건하다. 비가 금방 그친 듯하다. 다리 앞의 파고라 아래 의자로 가서 등산화에 든 모래를 털어낸 후 이어폰을 끼고 길로 들어갔다.  
 
의도적으로 백운대로 가는 길을 피했다. 젖은 바위와 돌들을 딛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다. 오늘은 간단히 걷고 내려가려고 마음 먹었다. 긴 연휴를 보낸 몸이 정상으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되어서다. 발목을 잡아주는 목이 긴 등산화인데 모래가 자꾸 안으로 들어가고 돌맹이를 잘못 딛어 발목이 뒤틀린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니 길 옆에서 나는 물소리가 크지만 어느 순간 물소리가 삭제되었다. 물소리는 안 들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옛길로 들어가니 군데군데 붉게 변한 단풍이 보였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도 그 속에 같이 쓸려 가고 있다. 
 
중흥사 아래 물 건너는 곳에 물이 가득하다. 등산화를 믿고 성킁성큼 걸어 건너 대피소 갈림길에서 윗길로 향했다. 급경사가 끝나는 태고사 앞길에 금줄이 또 쳐 있다. 또 붕괴 위험이 있나보다. 태고사 경내로 들어가 우회하여 올랐다. 봉성암 갈림길 계곡에 못 보던 다리가 놓였다. 한달 전 쯤에 봤던 공사가 마무리 된 것이구나. 이제 겨울에 비탈진 얼음을 건너지 않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 길을 더 오르자 산색이 노래졌다. 이 계곡의 단풍도 색이 좋은데 아직은 붉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그루는 억지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산길은 계속 젖어 있다. 흐르는 물이 길을 차지한 곳이 많다. 대피소를 지나 동장대로 향했다. 대피소 부터 구름에 잠겨 길이 어둑하다. 이른 시간인지 등산객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 명씩 지나칠 뿐이다. 풀숲을 지나며  맺혔던 빗방울인지 이슬방울인지가 내 몸으로 옮겨왔다. 차갑다. 대동문으로 가는 성곽길도 풀과 작은 나뭇가지로 가득하다. 바지가 물을 많이 받아드리지 않아 다행이다. 온 세상이 다 젖어 있어 엉덩이 붙일 곳이 없다. 바로 보국문으로 향했다. 이길도 성곽길은 풀과 나뭇가지가 쓰다듬어 주는 곳이다. 구름 속이라 전망은 없다. 부지런히 걸어 빨리 내려가야겠다.  
 
보국문으로 내려가기 전에 고민을 했다. 아직 다리 힘이 남았으니 대성문으로 가서 평창동으로 내려갈까 하고. 그러나 보국문에서 바로 계곡으로 내려섰다. 이렇게 걸어도 몸풀이는 되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이 비 때문에 더 거칠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거친 길인데. 계곡길로 내려오니 올라오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능선에서 보이던 구름은 이제 하늘에 있다. 밝은 하늘은 아니고 침침하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고 구름이 짙다. 날씨 때문에 가을 추수가 시원치 않을 듯하다. 
 
쉬지 못하고 계속 걸은 탓에 일찍 내려오게 되었다. 오늘도 용학사 아래 계곡 물가 같은 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아 먹거리를 비웠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서 부지런히 내려왔다. 계곡입구에 다시 서니 정오가 반 시간 쯤 남았다. 숙희네 집 빈대떡 값이 천 원 올랐다. 37번을 타고 연신내에 가서   고등어와 비지를 사서 집으로 왔다. 비를 맞지 않았는데도 몸이 춥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다. 냉장고에 쟁여져 있던 차가운 막걸리가 시원하지 않고 춥다. 이제 따스한 것이 좋은 계절이 왔다.

 

 

오랫만에 오렌지색 몬츄라티를 입고 붉은 아크테릭스모자를 썼다.

 

산으로 가는 길. 하늘이 내려 앉았다.

 

수문자리. 원효봉이 가렸다.

 

계곡폭포. 물이 많다.

 

역사관 앞 도착

 

다리 앞 파고라 의자에서 본 광장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

 

운하교 아래 계곡길

 

정자 아래 다리에서 본 계곡

 

옛길의 단풍. 아직은....

 

산영루 옆의 와폭

 

태고사 옆길이 막혔다.

 

대피소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새로 놓였다.

 

대피소 가는 길의 단풍

 

한 가지에 여러 색의 다풍잎이 달렸다.

 

대피소에 올랐다.

 

동장대로 가는 길

 

대동문 위 봉우리의 제단에서. 성벽 너머는 구름밭이다.

 

보국문 가는 길의 단풍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한 장

 

보국문

 

물 건너는 곳. 안경을 잃은 곳이라 자꾸 둘러보게 된다.

 

경리청상창지 앞길

 

역사관 앞

 

대서문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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