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산에 간단하게 다녀오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 산에 가서는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허황(?)된 생각을 늘 한다. 이번 일주일은 아내가 집에 계속 있으니 편하기도 하지만 잔소리가 듣기 싫어 혼자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같이 겹쳤다. 아직 40년도 같이 살지 못했는데 이게 웬....
어제 혼자 김장 몇 포기를 담고 피곤해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기 뭐해서 배낭에 넣을 물을 담고, 샌드위치를 꺼내고 과일을 깎는데 덜그럭 소리에 깨어 부엌으로 나와 잔소리를 한다. 그냥 깨우는 것이 맞았나 보다.
일기예보가 오늘은 0도에서 15도다. 그럼 지금이 0도라는 얘기다.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겨울용 검정 페이즈 티셔츠와 조금은 더 두꺼운 가을용 바지, 그리고 지난주에 입었던 감마MX자켓을 입었다. 등산화에 모래방지용 스패츠를 덧신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모래가 조금은 덜 들어가니 신어야지. 그런데 신발과 종아리에 밀착되는 것이 있다면 더 좋겠다. 아직 산에 갈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스패츠를 신는데 시간이 걸려서 뛰다시피 걸어서 역에 갔는데 열차는 금릉에 있다. 뭐 운동 한 셈 쳐야지. 경기도 버스요금이 오르기 전에는 50원 차이라도 경기 버스만 탔는데 이젠 200원 차이니 서울 버스만 탄다. 8772번 주말버스를 타고 산으로 갔다. 산으로 가는 길이 704번에서 내린 이들과 합쳐져서 혼잡하다. 단풍철이 끝났는데도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계곡입구에서 보이는 산은 칙칙해 졌다. 아직은 원색이 많이 남았지만 나뭇잎들이 떨어져 검은 가지를 드러낸 탓이다. 붉고 노랗고 갈색인 잎들은 늦게 핀 것들이거나 아직 잎을 떨구지 못하고 가지에 매달려 바싹 말라버린 것들이다. 그것들은 이제 다가올 엄동설한에도 꿋꿋이 버티다가 봄의 새싹에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 계곡 가의 길이 하얗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떨어져 쌓인 낙엽 위와 흙바닥에 옅은 서리가 내렸다. 이제 막 땀이 나려고 하는 데 다시 옷깃을 여몄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추워 보인다. 그 나무들 사이를 죽어라 걸어 올랐다. 산 입구에 많이 보이던 등산객들이 산길에선 띄엄띄엄 보인다. 신기하다. 앞에 아무도 없었는데 산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것 처럼 이해가 잘 안 된다. 오늘도 역사관 앞 데크에 올라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길로 들어섰다. 날이 아직 추운 탓에 겨울용 티셔츠 차림이 더운 줄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년 봄 까지 이렇게 겨울 티셔츠 하나만 위에 입고 산을 누빌 것이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지난주에는 나월봉에서 대성문으로 걸었으니 대성문 부터 대피소 쪽으로 걸으면 되겠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대성문과 보국문 사이의 길을 걸은 기억이 한참 되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려 걷다가 갑자기 아랫배가 꾸룩거려서 주차장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휴지가 없어서 배낭을 뒤져 간신히 찾아 해결했는데 미리 준비하고 확인을 해야 했었다.
단풍은 이제 산 밑에만 있고 중턱 위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가끔 보이는 붉은색과 노란색은 다 바래고 바싹 말라 비틀어진 것들이고 떨어지지 못하고 겨우내 매달려 있을 것들이다. 그러고보니 산이 훤해 졌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낮아진 해가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었다. 이젠 계곡을 가득 채우고 흐르던 물도 거의 다 말랐다. 귀에서 흐르는 아주 오래전 노래인 어니언스의 '혼자서'와 김창완의 '집에 가는 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걸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통나무 집을 짓고...."
등이 다 젖어 땀이 엉덩이로 흘러 바지까지 적셔서야 대성문에 올랐다. 이제 앞으로 가는 길은 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문 남쪽 의자에서 쉬고 있는데 평창동 쪽에서 우르르 올라온 이들 중 한 명이 스틱을 펴지 못해 끙끙댄다. 나도 처음에 그랬던 기억에 웃음이 나왔다. 보국문으로 가는 길 중간 봉우리 중 하나인 성덕봉의 여장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 길을 막아 놓았다. 금줄을 들고 들어가 형제봉 사진을 찍고 바로 나왔다. 어서 공사를 끝내고 산길을 돌려주길 바란다.
보국문에서 내려가려다 그대로 대동문으로 직진했다. 아직 시간도 이르고 기운도 남아서 였다. 여차직하면 대피소로도 갈 생각이었다. 이제 시야를 막는 구름안개가 없어서 능선길에서의 전망이 제대로 나온다. 그래도 아주 맑은 날은 일 년에 한 두 번 밖엔 없지만 관악산까지 보이는 전망이 고맙다. 대동문에 도착하니 11시다. 이제 내려가면 된다. 산길을 걷는 것은 다 좋은데 낙엽으로 덮인 돌길은 정말 싫다. 내려가는 길의 이런 길은 힘이 떨어진데다 잘못 흔들리는 돌을 딛으면 발목이 돌아버린다. 자칫 엎혀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조심하는 수 밖에. 이런 길에서는 스틱을 펴야 하는데 내 게으름이 귀찮아 해서 그냥 걷게 되었다.
몇 번 뒤틀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무사히 계곡으로 내려와 험한 돌길에 계속 채이며 용학사 아래 계곡 물가 따스한 볕이 드는 작은 돌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고 물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고 다시 길로 들어가 사람들과 섞였다. 법용사 아래 데크길 아래 단풍이 남아 있는 곳이 있었다. 오늘 산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그곳을 사진에 담고 역사관을 그냥 지나쳐 큰길로 북한동으로 내려오니 정오가 22분 지났다. 오늘은 산속에 세 시간 반을 있었다. 걸은 거리는 11키로. 북한동에 병천순대가 새로 생겨서 들렸는데, 다음에 먹고 싶으면 연신내로 가는 것이 좋겠다.
집에 와서 며느리가 보낸 과메기를 안주로 막걸리 병을 비우고....
집 앞의 단풍이 더 좋다.

9시가 가까운 시간. 아직 산이 깨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물이 말라 시커멓게 변한 계곡. 수문자리에서의 모습이다.

물이 말라 초라해진 폭포

역사관 앞. 바위꾼들이 많았다.

중성문 아래 계곡. 잎들이 다 떨어져 황량한 모습이다.

중성문

계곡 옆 정자 아래 길

네 발로 예길에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나월봉. 지난주에 저 곳을 지나 올랐다.

금위영이건기비 앞길

대성암. 늘 생각하지만 참 좋은 입지다.

대성문

대성문을 배경으로

아주 오랫만에 보현봉을 배경으로 능선길을 보얐다.

앞 봉우리가 여장공사 중인 성덕봉이다.


성덕봉에서의 전망

남쪽전망대에서의 전망. 관악산까지 보인다.

북쪽전망대. 잎들이 떨어져 조금 시야가 트였다.

보국문. 오늘은 그냥 통과했다.

보국문 위에서 문수봉을 배경으로

칼바위와 형제봉, 백악, 인황, 남산, 관악산.....

대동문

발굴 중인 경리청상창지

용학사 샘터 아래 계곡

법용사 아래 데크길의 단풍

역사관 앞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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