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토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에 답답했었다. 비가 온다는 얘기는 춥지는 않다는 것이지만 비를 맞은 상태에서 칼바람을 맞거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면? 산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금요일에 확인을 하니 정오 경부터 내린다던 비는 오전 열 시로 당겨져 있고 정오부터는 눈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어떻하지 고민하다가 우산과 핫팩을 넣고 가기로 했는데 아내는 한 번 거르거나, 집 근처 산에 다녀오라고 한다. 아직 내 다리로 다닐 수 있고 힘이 있으니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배낭을 지고 나오는데도 비가 온다는데 둘레길이나 걷고 오란다. 이젠 걱정이 되는가 보다.
배낭에 우산과 핫팩, 새 아이젠을 넣고 비상용 작은 알콜에 뜨거운 둥굴레차를 담은 보온병까지 넣으니 묵직하다. 아내가 과일통과 샌드위치를 건네며 한 마디한다. "비가 오면 지난번처럼 물만 마시고 다 그대로 가져오겠네."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다. 비에 젖은 상태에서 젖은 땅에 쭈그리고 앉아 뭘 먹는 일은 한 적이 없으니 그냥 다 뺄까 하다가 필요할 수가 있으니 그냥 배낭끈을 조였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어둡다. 탄현역에 도착하니 열차는 네 정거장 앞을 향해 오고 있다. 겨울이 되어 그런지 여름과 같은 시간대인데 빈 자리가 여럿 있다. 배낭을 멘 이들이 별로 없다. 비가 온다고 집에 있기로 했나 보다. 주말버스도 텅 비다시피하여 산으로 갔다. 산으로 가는 길도 깨끗하고 조용하다. 지난주에 보였던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고인물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비가 오지 않고 산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열차를 탄지 딱 한 시간 만에 계곡 입구에 섰다. 자, 이제 걷자.
계곡에 물이 제법 소리를 내며 흐른다. 지난주에 비가 오지 않았으니 눈 녹은 물일게다. 겨울에 듣는 물소리는 밝고 청아해서 좋다. 데크계단을 오르며 보니 바닥에 좁쌀 같은 것이 떨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작은 물방울이다. 이제 산길이 시작이고 9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내리면 어떻하냐?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면 중간에서 내려오기로 하고 올랐다. 그래도 최소 십 리는 가야 하는데.
비가 오는 지도 모르겠는데 길은 조금씩 젖어 있다. 그런 계곡길을 걸어 역사관 앞에 도착했는데 데크 위의 의자가 젖어 있다. 하여 파고라 아래 의자로 가서 배낭에 자켓을 벗어 넣고 우산을 꺼내 배낭 옆 포켓에 넣고 이어폰을 끼고 보온병의 뜨거운 차를 마셨다. 겨울엔 뜨거운 차가 좋다. 이젠 먹거리도 컵라면 종류로 준비할까? 이번 겨울 들어 처음 착용한 넥워머를 올리고 자꾸 돌아가는 비니를 바로 한 후 길로 돌아갔다.
고도가 높아지며 비는 눈으로 변했고 위로 갈수록 싸라기눈의 알이 커지는 듯하다. 이제 길 곳곳에 눈이 모여 있다. 지난주에 길을 알려주었던 곳을 지나 중흥사로 가는데 내가 말했던 오백 미터가 훨씬 넘는 듯하다. 오늘은 먼저 대피소로 올라가서 가는 데까지 가기로 했다. 중흥사 앞으로 가는데 눈이 많이 쌓였다. 봉성암으로 가는 샛길이 눈으로 덮였다. 내려오는 이를 두 명이나 보았다. 참 부지런한 이들이다. 새로 내린 눈은 습설인 듯하다. 눈이 낙엽과 함께 발바닥에 들러 붙어 순식간에 키를 5센티 이상 키웠다. 깨끗한 눈밭에 내 발자국을 새기며 대피소에 올랐다. 힘들었다.
대피소 마당 한구석에 이제는 먹지 못하는 샘이 있다. 그 샘에서 청년 서넛이 물통에 물을 담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한 명이 20리터 물통 두 개씩 들고 가다쉬다를 한다. 지나가며 물으니 동장대공사 현장의 물이 다 얼어서 소장 지시에 물을 길러 온 것이란다. 편도 8백 미터의 산길인데. 난 못할 일인데 운동 삼아 한다며 농담으로 노동부에 고발해 달란다. 이제 능선길이 눈으로 다 덮였는데도 눈은 계속 내린다. 눈이 비보다는 낫다. 안경이 눈 때문에 뿌옇게 되고 젖어서 보이지 않아 벗는 것이 오히려 낫다. 한참을 안경 없이 걷는데 하얀 눈에 덮힌 길의 높낮이를 볼 수가 없다. 배낭에서 썬그라스를 꺼내 끼니 훨씬 낫다.
대동문에서 내려가려다 조금 더 가서 내려가기로 했다. 대동문 안의 통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젠을 신고 보온병의 따스한 차를 마시고 보국문을 향했다. 새 아이젠이라 자꾸 바닥을 훑는다. 눈도 더 많이 들러 붙었다. 능선의 풍경은 구름 속이라 전혀 없다. 온몸이 구름 물방울에 젖어든다. 이제 눈은 뜸해졌다. 보국문에 도착해서 대성문으로 가려다 돌계단에 쌓인 눈을 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금까지 산길에서 마주치거나 지나친 이들은 열 명이나 되나?
보국문에서 내려오는 너덜길은 눈이 없어도 힘이 드는데 눈이 덮여 돌이 잘 보이지 않으니 발목이 자꾸 삐끗대며 돌아간다. 매일 운동하며 발목힘을 키우길 다행이다. 백운동계곡 큰길도 눈에 덮히니 힘들긴 마찬가지다. 중흥사 앞 물건너는 곳에서 아이젠을 벗고 나니 길이 훨씬 걷기 쉽다. 역사관 앞을 그냥 지나쳐 오랜만에 자연산책로로 내려오는데 배가 고프다. 산책로를 거의 다 내려온 곳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입에 쑤셔 넣다시피하고 계곡 입구에 서니 12시가 되었다. 몸이 다 젖어서 빈대떡과 뜨끈한 어묵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약속에 늦지 않게....
7시 15분 쯤인데 아직 어둡다.

지난주 눈은 흔적도 없다.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런지 춥지도 않았다.

게곡의 첫 데크길. 비는 10시부터 예보가 되었는데 9시도 전인데 여기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과 계곡. 물이 있어 좋았는데 계곡의 물이 흐른 자리는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폭포에 눈이 녹은 물이 떨어지니 보기 참 좋다.

역사관 앞. 데크는 다 젖어 있어서 저 뒤의 파고라 아래 의자로 갔다.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으로 가는 오름길

중성문

산영루. 길에 눈이 덮였다.

대피소와 봉성암 갈림길

대피소에 거의 다 왔는데 눈이 꽤 내리기 시작했다. 눈 때문에 안경을 벗어야 했다.

내려가는 길

대피소 도착

동장대에서 대동문으로 가는 길의 선바위 앞

대동문. 저 문 안에서 아이젠을 신었다.

성벽 너머로 칼바위가 보여야 하는데 구름이 가렸다.

보국문으로 가는 길

흑백으로 보이던 풍경에 푸른 소나무가 들어왔다. 이 아래가 보국문이다.

보국문.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장

경리청상창지 앞길

중성문

역사관 앞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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