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21 보국문 - 대피소

PAROM 2026. 2. 22. 08:06

지난주 금욜에 큰 처남댁에서 장모님 첫 제사가 있었다. 돌아가신 지 벌써 한 해가 지난 것이다. 출근해야 하는 아들 내외 때문에 손주들을 봐야 했고, 설 차례를 지내야 해서 이틀 전에야 겨우 속박에서 풀려났다. 그런 덕분에 지난주에는 산에 갈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아내가 또 손주들 보러 가서 6시에 일어나 찬밥을 끓여 먹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배낭이라야 보온병에 둥굴레차를 담고 샌드위치와 간식거리를 넣는 것 뿐이다. 한 주를 거르고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왔는데 날이 많이 밝다. 속담에 "동지를 지나면 낮이 하루에 쥐꼬리 만큼 길어진다"는 말이 실감된다. 아직 7시가 되지 않았다. 일찍 나왔으니 느긋하게 걸어 탄현역에 갔는데 열차가 야당역에서 오는 것이 보인다. 서울역으로 가는 4칸 짜리 열차다. 대곡역에서 환승하려 내렸는데 대화에서 오는 지하철이 들어온다고 해서 늦은 것 같아 포기했었는데 열차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떴어도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후 숨 차.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10분 기다렸으니 뒷차를 탔어도 결과는 같았다. 
 
덥다. 집에서 영상 7도였고 북한동에서도 그랬다. 겨울용 두꺼운 바지를 오늘 입고 빨려고 나왔는데 덥다. 며칠 전에 마무트 경량 패딩을 인터넷에서 구입했는데 미드레이어용이었다. 그것도 오늘 입고 세탁을 하려고 나왔는데 많이 덥다. 아직 2월인데 날이 왜 이리 덥냐? 구파발 버스정거장에서 켑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경량 패딩은 산 입구에서 벗어서 배낭에 넣었는데 티셔츠가 얇아 추위가 느껴졌다. 이러면 바삐 걸어 땀을 내야 한다. 그런데 맘만 급하고 발이 나가질 않는다. 지난주를 걸렀다고 산과 몸이 같이 심술을 부리는 듯하다. 
 
계곡으로 들어가 걷는다. 왼쪽의 개울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얼음에 구멍이 군데군데 뚫렸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소리다. 이제 얼음을 얼리는 추운 계절은 거의 지나간 듯하다. 볕을 많이 받은 땅은 질척거리다 밤새 다시 얼어 밭을 갈아 엎은 듯하다. 계곡이 높아질수록 발이 자꾸 돌에 걸린다. 설이 지났다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기운이 빠졌나? 늘 다니던 길인데 보름 사이에 왜 이리 멀어졌냐? 
 
역사관앞에 도착해 배낭을 벗으니 등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바지 뒤도 다 젖었을 것이다. 뜨거운 둥글레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낀 후 텅 빈 길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지난주를 걸렀으니 짧고 쉽게 걷자. 무리하면 안된다. 늙은이들이 산에서 쓰러져 헬기를 탔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나는 혼자 다니는 터이라 쓰러져도 바로 도울 이가 없으니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오래도록 산에 다니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다. 
 
이른 시간에 산에 오는 것이 참 좋다. 조용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 좋다. 정자를 지나 옛길로 올라 가는데 다리가 무거워진다. 애꿎은 땅만 걷어찬다. 오른쪽 봉우리들 사이로 나월봉이 웃으며 인사하는데 다음에 가까이서 보기로 했다. 길이 높아지며 길가 계곡에 가득한 얼음색이 푸석하게 보인다. 저런 얼음은 딛으면 깨진다. 그런데 가는 길에 두 곳의 얼음 계곡을 더 지나야 한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의 물 건너는 곳은 얼음판 위에 검게 발자국이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렸고 그 아래로 돌이 보였다. 그 위의 두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 이를 피해 보국문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그는 계곡을 따라 올라 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보국문 까지는 급하게 오르는 길이고 돌이 잔뜩 깔린 험한 길이라 힘이 든다. 스틱을 꺼내고 싶은데 귀찮음이 가로 막는다. 헐떡거리며 겨우 보국문에 올랐다. 오르면서 대동문 쪽에서 몇 명이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내가 오르고 나니 지나가는 이가 없다. 희한하다. 
 
이제 대동문으로 가야 하는데 바지가 무겁다. 이런 적이 없는데.... 두꺼운 바지가 땀에 젖어서 그런가? 무겁고 힘 들어 죽겠다. 바지가 무거우니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땅과 돌을 걷어차는 것은 좋은데 헛 딛지 않기를 바란다. 성곽 능선길에 바람이 많다. 산 아래에서도 바람이 많았지만 그 바람은 봄바람과 비슷했는데 능선의 바람은 몸을 오싹하게 했다. 그렇다고 젖은 몸에 바람막이나 패딩을 꺼내 걸치긴 싫다. 어서 탈출하자. 대피소에서. 그러려면 힘들어도 빨리 걸어야 한다. 그런데 길이 정말 멀어졌나 보다. 
 
능선길에서 한두 팀을 만나고 대피소에 도착했다. 처음 생각엔 쉬면서 기운을 차리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휑한 모습에 앉기가 싫다. 바로 계곡으로 내려갔다. 지금까지 6키로가 넘었는데 역사관 앞에서 잠깐 쉰 것 뿐이라 다리가 흔들린다. 미끄러운 내리막 길이니 더욱 조심한다. 이제 등산객들이 떼로 보인다. 그들 중에 외국인들 무리도 섞였다. 태고사 앞길은 여전히 통제 중이라 중흥사 앞으로 가는 샛길로 내려가는데 세 명이 올라온다. 가족 같이 보여 부럽다. 
 
아침밥 먹은 지 4시간이 넘으니 허기가 진다. 용학사 아래 늘 앉던 곳에 가 배낭을 벗고 샌드위치와 보온병을 꺼냈다. 나보다 늙어 보이는 이가 내 앞 계곡을 건너 산을 넘어 사라진다. 응? 저기로 가는 곳이 있나? 저쪽엔 한참 위에 부황사가 있는데. 아니다. 산 위에서 봤을 때 부황사 계곡 건너 산 위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몸을 겨우 지탱하는 이가 거기를?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볼까? 
 
다시 계곡길로 들었는데 정오 전에 산을 벗어날 수 있다. 샌드위치가 힘을 줘서 부지런히 걸어 오랫만에 계곡길로 내려왔다. 북한동에서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집에 설을 지낸 음식들이 있으니 바로 집으로.... 집에서 나간 지 5시간 20분 만에 돌아왔다.

 

 

7시가 거의 되었는데 아직 어둡다.

 

계곡입구. 차분하고 조용하다.

 

얼음으로 가득하던 계곡에 얼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산 위에는 볕이 들었고 계곡 얼음엔 구멍이 생겼다.

 

이런 얼음구멍에서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폭포의 얼음도 많이 녹았다.

 

역사관 앞에 해가 났다.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 아래 얼음이 녹은 작은 못에 청둥오리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중성문

 

봉우리들 사이로 나월봉이 보인다.

 

산영루

 

경리청상창지 앞길

 

대동문 갈림길로 가는 길가 계곡의 얼음이 푸석해 보인다.

 

길을 가로막은 얼음을 건너다닌 흔적이 뚜렸하다. 계곡 얼음 높이가 길보다 높다.

 

보국문이 빤히 보이면 더 힘들어 진다.

 

보국문에 올랐다.

 

이 바위들을 올라야 대동문으로 갈 수 있다.

 

저 멀리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있다.

 

칼바위와 형제봉, 백악

 

대동문

 

대동문 위 제단 뒤로 삼각산과 아직 공사 중인 동장대가 보인다.

 

대피소에서 동장대로 가는 평화로운 길

 

북한산대피소 도착

 

대피소광장 너머로 문수봉이 보인다.

 

대피소 갈림길 계곡 위에 놓인 다리

 

태고사 앞길은 여전히 통제 중이다. 무너진 옹벽은 언제 복구할 지....

 

역사관 앞에 등산객들이 많다.

 

요즘은 산에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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