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28 보국문 - 옆길 - 대성문 - 행궁지

PAROM 2026. 3. 1. 07:56

이제 일흔이 넘었으니 세상 일을 놓고 잊혀질 때가 됐는데 주변에서 그러질 못하게 한다. 나이 들어 이게 무슨 변고냐? 사심 하나 없이 동네를 위해 십 년을 넘게 일 했는데 이사 온 지 2년도 안 된 어거지 부리는 어린 이와 다투고 싶지 않아 내려 놓았지만 그들은 그걸로 승리의 축배를 거하게 들고 있으니 속상하기 그지 없다. 오죽했으면 새로 온 소장도 견디다 못해 그만 두면서 내게 하소연을 했을까. 이런 답답하고 거북한 속을 털기 위해 산에 가기로 했다. 그래야 세상일을 잊고 땀 냄새  속의 환희를 느끼니까. 
 
아내는 어제 집에 온다고 했는데 애들 근무 시간이 바뀌어 하루를 더 자식들 집에 있어야 한단다. 전날 새벽에 나스닥을 보고 큰일 났다 싶었는데 짐작에 어긋나지 않게 코스피도 죽을 쑨다. 그것도 늘 그렇듯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만 더 크게 떨어진다.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깨어 나스닥을 보니 또 내렸다. 필라델피아 지수가 제일 크게 내렸다. 엔비디아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런 것이라는 AI의 분석이다. 뭐 그래도 크게 잃지는 않았으니 심기일전을 위해서라도 산에 가야 한다. 그나저나 이것에서도 손을 털어야 하는데 중독이 되었나 보다. 
 
5시에 일어나 밥솥 코드를 꼽고 배낭을 꾸리고 밥을 먹고 설겆이 했는데도 시간이 너무 이르다. TV를 켜고 뉴스를 보다가 별게 없어 끄고 집을 나왔는데 밖이 어둡다. 시간이 이르다. 탄현역에서 6:56 차를 타고 대곡에서 내려 죽어라 뛰었는데 무정한 열차는 눈 앞에서 문을 닫았다. 그 큰 승강장에 나만 덩그라니 남았다. 쓸쓸함이다. 한참을 기다려 구파발로 가서 버스를 타고 산으로 갔다.
이른 시간인데 부지런한 이들이 많다. 요즘엔 산 입구에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산악마라톤을 하는 이들도 자주 보인다. 내가 직장 다닐 때 처럼 단체로 온 이들도 이른 시간인데 보인다. 
 
탐방지원쎈터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니 한적하다. 이제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입구의 흙길이 녹아서 번들거린다. 피해서 조심하여 발을 딛는다. 앞으로 길게는 한 달간 이럴 것이다. 오늘은 데크길과 돌길이 반갑다. 기온이 많이 올랐는데도 계곡엔 얼음이 거의 그대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구멍이 많이 나서 푸석해 졌다. 저런 얼음은 딛으면 깨진다.
요즘 산에서 짐승들 소리를 듣기 어려운 것이 산짐승화가 된 개와 고양이 때문 아닌가 한다. 이제는 산에서 꿩과 산토끼를 볼 수 없다. 오로지 멧돼지들 발자국만 보인다. 제발 산에 사는 개와 고양이에게 먹을 것 좀 주지 말자. 
 
이제껏 산에 다니면서 발걸음을 의식하지 않고 다녔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힘을 덜 들이고 걷는 법이라 하여 보니, 오를 때 보폭을 좁게 하고 오금을 펴고 조금씩 자주 마시고 먹으란다. 숨은 내쉬란다. 스틱도 쓰고. 오늘은 그걸 시험해 보려고 했다. 하지 않던 짓을 하려니 참 어렵다. 모두 예전에 한두 번씩 해 본 것들이다. 오를 때 뒷다리 오금을 펴는 것은 전에 생각 없이 여러번 해 본 것이만 힘이 덜 드는 것처럼 느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역사관 앞이다. 
 
자켓을 벗어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이어폰 끼고 다시 길로.... 다리를 건너 바로 맞닥드리는 가파른 오르막을ㅡ 빈 속에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한 잔 마시고 나니 바로 쓰러질 듯하다.  눈꺼풀이 왜 이리 무겁냐? ㅡ 새로운 걸음으로 오르는데 기분은 힘이 덜 드는  듯하다.  새로운 걸음법을 배우는데 길에 사람이 없으니 좋다. 그런데 집중하지 못해 자꾸 걸음이 흐트러진다. 그래 그럴 꺼야. 70년 버릇이 바로 바꿔지냐고? 
 
네 발로 옛길에 올라 고개를 돌리니 나월봉이 한참 위에서 하얀 이를 드리우고 웃고 있다. 오늘은 가까이서 내려다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걸으며 생각하니 아주 오랫동안 걷지 않은 길이 있다. 그 돌아가는 옛길로 가서 문수봉에 올랐다가 가기로 했다. 늘 그렇듯  흔들리는 돌맹이들을 딛고 힘들게 보국문에 올랐다. 성곽길과는 전혀 다른, 돌아가는 길을 위해 오랫만에 스틱을 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로 급경사의 내리막길 바위가 나타난다. 스틱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성곽길은 돌계단으로 된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지만 이 길은 예닐곱 개의 봉우리와 모퉁이를 지나야 하고 오르내림이 훨씬 심하고 낭떠러지 길도 세 곳이나 되고 전망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긴 흙과 바위길을 오르내리고 돌고 해서 대성문으로 갔다. 
 
여기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성곽길로 올라갔다. 스틱에 의지하는 데도 힘이 많이 든다. 대성문에 오느라 힘을 너무 많이 썼나?  대남문으로 내려가는 바위길에서 전과 같지 않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렇게 노화가 진행되는 거구나. 문수봉을 오르는 길에서도 스틱에 의지했다. 이미 기운이 떨어졌으니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배가 비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허기가 진 느낌이다. 벌써 열 시 반이니 그럴만도 하다. 밥 먹은 지 네 시간, 산에 들어온 지 두 시간 반이 지났다. 
 
사진만 찍고 바로 청수동암문을 지나 상원봉을 향했다. 두어 해 전만 해도 더 멀리서 부터 그냥 쉽게 지나다니던 길인데 이젠 힘에 부친다. 내가 다니는 코스가 위험한 곳도 있고 인적도 드문데 혼자 다니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안된다. 사람이 많은 편안한 길을 다녀야 하나? 이젠 그래야 할 것 같다.
기온이 많이 올랐고 햇볕이 내리쬐는 남향받이 바위에서 쉬고 싶지 않아 행궁지를 돌아가는 길로 내려 왔다. 내려오며 보니 행궁지가 변했다. 포크레인이 행궁지 속에 들어가 있고 터를 덮었던 파란 천막이 대부분 걷혀졌다. 이제 다시 발굴복원공사를 하려는가 보다. 하긴 내일부터 3월이다. 
 
행궁지를 지나 큰길로 나왔다. 이제 3.7키로 남았다. 그래도 대피소갈림길 까지 오백 미터를 바위와 돌들 때문에  더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점심은 요즘 매번 들리는 물가 돌 위에서 하기로 했다. 날이 더워졌는데도 뜨거운 차가 좋다. 먹다보니 오늘 새로 꺼내 입은 검은 색의 몬츄라 바짓가랭이가 흙투성이가 되었다. 물로 씻어냈는데 시원찮다. 이번 시즌에 처음 꺼내 입었는데 이제 다음 겨울에나 입어야 한다. 
 
역사관을 그냥 지나쳐 자연관찰로로 내려왔다. 큰길에서 올라오는 수도권산악회 사람들을 마주쳤는데 아는 이가 없다. 그래 점점 이렇게 되는 거다. 자연관찰로의 통나무계단이 버겁다. 오늘 왜 이리 힘이 들었지? 봄날씨에 겨울옷을 입어서 그런가? 아니면 세월에?
이틀전에 아롬이가 준 생연어가 냉장고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디 들리지 말고 바삐 가야  한다. 젖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샤워를 하고 닭백숙과 동태전, 생연어를 놓은 막걸리 상을 마주하니 부러울 것이 없다.

 

 

새벽엔 아직 쌀쌀하니 두텁게 입고 산으로 간다.

 

아직 볕이 들기 전인 조용한 시간의 계곡 입구

 

해가 모습을 보이기 직전의 폭포 전경

 

폭포에 얼음이 많이 녹았다.

 

역사관 앞 광장에 해가 들었다.

 

중성문 아래 계곡. 얼음이 녹은 물이 고였다.

 

중성문 아래 계곡

 

노적사 입구 위의 정자. 잎이 나면 보이지 않는다.

 

나월봉. 오늘은 남장대지에서 내려다 볼 생각이다.

 

폭포 위에서 본 산영루

 

경리청상창지 앞길. 나를 지나쳐 간 이가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대동문 갈림길 아래의 물 건너는 곳

 

보국문. 오늘은 여기서 성벽을 따라 오르지 않고 옆길로 간다.

 

대성문. 잠시 쉬었다 간다.

 

대남문 가는 길에서 보는 문수봉과 문수사

 

구기동계곡

 

비봉능선

 

삼각산을 배경으로

 

청수동암문 앞으로 보이는 은평구와 그 뒤의 덕양구

 

상원봉의 이정표

 

의상능선과 지축리의 아파트

 

웬 늙은이?

 

남장대지 앞 바위에서 보는 의상능선. 나월봉과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남장대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나월봉

 

주능선 너머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였다.

 

청송대에서 보는 삼각산과 도봉산 수락산

 

이 사진으로 보니 참.....

 

행궁지, 포크레인이 보이고 파란 천막이 치워졌다.

 

내가 요즘 내려가다 자주 앉아 쉬는 물가 옆 자리

 

역사관 앞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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