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3.14 대성문 - 대남문- 구기동, 청송회, 정 박사와

PAROM 2026. 3. 15. 09:19

오늘은 종일 '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 였다. 시간이 깊어짐에 사이가 더욱 도탑게 됐다.
손주를 보러 갔던 아내가 어제 닷새 만에 돌아와서 모든 것이 좋아졌다. 오늘은 정 박사와 오래전에 약속했던 등산을 함께 하는 날이다. 작년 11.2일에 같이 걷고 네 달 보름 만이다. 날씨를 살펴보니 덮지도 춥지도 않은 걷기 딱 좋다. 하여 옷을  봄날에 맞게 가볍게 입었다. 오랫만에 꺼낸 옷은 시간이 흔적을 짙게 만들어 놓아 한참을 손 보게 했다. 시간은 나와 내 주변의 것들을 낡음의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5시에 인사동 '선천'에서 청송회 모임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11시에 구파발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나왔다. 기온이 예보 보다 낮아졌는지 춥다. 배낭엔 내의와 양말 외에 껴입을 옷이 없다. 이 환절기엔 여벌 옷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댓가는 몸이 때워야 한다. 추위를 피해 구파발역 버스정거장의 따스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내 기준으로는 아주 늦은 시간인데 이 시간에 산에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지금 시간이면 산을 한 바퀴 돌고 중성문 근처를 내려올 때다. 아는 다음산악회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보고 싶은 얼굴은 없다.
 
넉 달 넘게 만에 산에서 본 정 박사는 건강하고 환한 얼굴이다. 정거장의 많은 승객들에 묻혀 산으로 갔다. 산에 봄날이 온 것은 맞는데 아직은 겨울이 묻어 있어 산에 냉기가 감돈다.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 몸을 덥혀야 한다. 될지는 모르지만 유튜브에서 본 걷는 방법을 오늘도 써 볼 생각이었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딱다구리가 요란스레 반갑다고 인사한다. 초반엔 천천히 걷겠다고 했지만 습관이란 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혼자 걸을 땐 몇 시간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데 오늘은 산이 시끄럽다. 
 
역사관에 도착해 이제는 낡아버린 감마MX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으니 쌀쌀한 기운이 엄습한다. 아직은 얇은 옷을 하나 더 입어야 하는 때다. 오늘은 이어폰을 끼지 않고 걷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얼음이 더 많이 보인다. 열심히 얘기하며 걸어서 그런지 주변 풍광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곧 꽃들의 계절이 온다. 그 시절에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진달래 가지 아래에 앉을 것이다. 
 
정오가 지났으니 출출해 졌고 5시에는 모임이 있으니 올라가는 도중에 식사를 해야 해서 금위영이건기비를 지나서 있는 길옆 공터에 자리를 폈다. 역시 늘 그렇듯 정 박사의 라떼는 맛이 기가 막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구운 빵과 곳감도. 따스한 커피와 둥굴레 차를 마셨지만 한참을 앉았더니 다시 추워졌다. 이 계절의 단점은 길이 진창이라는 것과 어딘지 추운 듯한 기운과 차가운 바람이다. 오늘은 볕이 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삼사 년 전에 사 두었던 새 머렐등산화와 두 겹의 양말 덕분인지 발이 따로 놀지 않고 꽉 조이는 느낌이다. 지난주까지 신었던 캠프라인화 보다 가볍고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땅을 덜 걷어찼다. 보광사지를 지나자 길이 질척거리는 얼음길로 변했다. 우리 둘 다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아 행궁지로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곳이 이러면 문수봉으로 가는 그쪽 길은 아마도 네 발로 기어서 가야 했을 것이다. 
 
대성암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을 얼핏 보니 내려오는 이들이 나무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성문으로 가는 길로 가야한다. 아이젠을 빼지 말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지만 늦었다. 대성암 위로는 지난주에 내렸던 눈들이 거의 녹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녹아내리며 길을 더욱 미끄럽게 했다. 대성문에서 시간을 보니 문수봉에 올랐다가 내려가도 될 듯해서 대남문으로 향했다. 
 
녹아내리는 눈길을 힘겹게 지나 대남문에 도착해 문수봉을 보니 하얗다. 올라가는 것은 좋은데 내려오는 것이 문제다. 엎드려서 내려오느니 그냥 내려가자.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돌계단이 많다. 조심을 해도 쿵쿵 딛아야 해서 무릎이 나갈 수 있다. 가끔씩 나타나는 흙길은 진창이다. 이 계절에 산길을 걸으려면 감수해야 한다. 그 2.5키로의 짧은 구간을 한 시간도 넘게 걸어 내려왔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생강나무가 곧 피울 듯 꽃눈을 잔뜩 부풀리고 있는 계곡, 80년대 초 전두환 시절에 광화문에 있던 큰 기업 직원들을 자연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토요일에 동원해  쓰레기 주우러 다니게 했던, 이제는 철거된 무허가 술집들이 늘어서 있던 계곡 그 술집들에서 마셨던 소주의 기억이 삼삼한데 이제는 다 어디로 갔는지....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는 기억들을 두고 산을 벗어나니 샤워를 하고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다. 광화문 직장생활의 큰 공간이었던 경복궁역에서 안국역으로 가서 약속장소인 선천으로 갔는데 반 시간이 남았다. 그냥 앉아 있기 지루해 인사동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가서 조금 있으니 11명이 모두 모였다. 빠짐없이 다 모인 것이 아주 오랜만이다. 아주 맛 있는 모듬전과 해물파전, 낚지볶음, 정식 .... 막걸리.
선천에서 끝난 후 2차는 가지 않았다. 이 또한 오랫만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놀란다. 일찍 들어왔다고.

 

 

구파발역에서. 집에서 나오며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산길엔 이미 많은 이들로 북적거렸다.

 

계곡폭포

 

폭포엔 얼음이 아주 조금만 남았다.

 

역사관 앞. 사람들이 많다.

 

중성문 아래 계곡. 이미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다른 때 였으면 나도 그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중성문을 정 박사가 오르고 있다.

 

나월봉. 해가 나지 않아 어둡다.

 

산영루 앞의 와폭에 얼음을 배경으로 정 박사를 세웠다.

 

경리청상창지 앞길

 

대성암 아래의 길은 질척대는 얼음길이었다.

 

같이 사진 한 장

 

대성암

 

대성문

 

대성문에서 대남문으로 돌아가는 눈길에 잠시 멈추고 한 장

 

대남문

 

정 박사가 대남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남문 지붕 아래에서 본 서울 시내

 

구기동으로 내려가다 같이 한 장

 

구기동계곡. 다 내려온 지점이다.

 

다 내려왔다.

 

정 박사가 찍은 생강나무 꽃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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