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행궁지 - 대성문, 계 사장과

PAROM 2026. 4. 12. 09:02

지난주와 다음주 토요일은 손주들 돌보러 가야해서 산에 가지 못했고, 못한다. 요즘 산이 산뜻하면서 화려해지는 때인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내가 새롭게 일을 시작해서 올해는 금요일 부터 화요일 까지에 손주들을 봐야 되면 내가 가야 한다.
전날까지 몇 친구들의 몽골여행을 알아보다 일정과 항공료 때문에 여행이 취소되어 오히려 홀가분해 졌다. 그나저나 이란, 우르라이나, 레바논, 미얀마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살육이 어서 그쳐야 한다. 
 
며칠 전에 헬스장에서 산에 진달래가 피었으니 막걸리 한 병 넣어가 꽃잎 띄워 한 잔해야 겠다는 말을 듣고 계 사장이 같이 가겠단다. 7시 반에 탄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제 아내가 금요일 부터 화요일 까지는 집에 없으니 집안 일은 내가 다 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 밥 해 먹고 다 치웠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아 TV뉴스를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온 동네가 꽃으로 화려해졌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친구와 만나 열차를 탔는데 고교동창인 준규를 또 만났다. 일산역 근처로 일을 다닌다는데 대단하다. 
 
계곡 앞에 물소리가 엄청 크다. 목요일 부터 내린 비에 계곡이 넘치고 있다. 물소리에 모든 소리가 묻힌 듯하다.
산이 화려해졌다. 생강나무꽃, 진달래, 벚꽃, 산괴불주머니꽃, 살구꽃, 복사꽃, 개나리, 현호색, 노랑제비꽃이 모두 피어 길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하늘이 어둡다.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기온은 8도라는데 서늘하다. 이건 봄기운이 아니다. 겉에 입은 MX자켓을 그대로 입은 채 계곡을 걸었다. 일행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천천히 걷자고 하니 나를 따르는 것이라 한다. 이게 아닌데.... 두세 살 차인데 60대라고 이럴 수가 있나? 하긴 이삼 년 전의 내가 그랬을 수 있다. 오늘은 종일 따라 걷느라 죽을 고생을 했고 지금도 걷기 힘들다. 이삼 년 전에 처음 산에 갔이 갔을 때 나를 따라 오기 버거워 했는데 이제는 내가 더 힘들어 한다. 헬스장에서도 내가 드는 무게가 더 되고 운동시간도 길고 기구도 더 다양한데....  나이 탓인가? 
 
보름여 만에 온 산은 많이 밝아졌다. 꽃들도 그렇지만 잎이 나와 산이 푸르러졌다. 노란 빛이 감도는 초록의 새싹이 참 예쁘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겨워도 산에 오는 이유 중 하나다. 둘이 걸으니 아니 내가 쫓아다니는 형국이니 힘이 많이 든다. 우리를 추월하는 이들은 산악마라톤을 하는 이들 뿐이다. 빠른 걸음으로 가파른 길들을 오르려니 말도 하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니 참 안됐다. 
 
계곡 물이 맑다. 너무 맑아 추위가 느껴진다. 산 입구 부터 행궁지 갈림길 까지 이어지는 계곡 내내 보이는 계곡물이 투명했다. 갈림길에서 행궁지로 들어갔다. 계곡을 따라 대남문으로 가려다 먼저 능선에 오르려고 했다. 같이 이 길로 걸은 적이 없어서 의상능선과 그 너머로 보이는 우리 동네를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었는데 행궁지 뒤로 돌아오르는 길 부터 끼기 시작한 구름 때문에 시야가 짧아져 아무 것도 보질 못했다. 대신 내 거친 숨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혼자 걸을 때는 내 페이스 대로 했는데 일행이 있어 그 속도에 맞추려니 힘이 들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남장대지능선에 올랐을 때는 기운이 거의 다 떨어져 쓰러질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조망도 없으니 더 힘들고 구름 속이라 나무에선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몸을 적신다. 구름이 지나며 나뭇가지에 만든 물방울이다. 땀이 나지만 몸은 오들거린다. 산길은 어제와 그제 내린 비로 질척거린다. 바위도 다 젖어 있다. 엉덩이를 붙일 공간이 보이질 않아 그대로 문수봉으로 올랐다. 역시 사방이 하얗다. 시야는 열 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추워서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대남문으로 내려섰다. 대남문도 구름에 잠겨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였다. 성벽을 따라 대성문으로 가려다 젖은 길이 부담스러워 아랫길로 갔다. 
 
대성문에서 평창동으로 가려다 대성암으로 내려섰다. 길이 짧아 급하고 젖은 돌길이라 미끄러질 확율이 높다.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가자. 이제 모험을 할 때는 지났다. 백운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올라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시야도 길어졌다. 막걸리잔을 들 곳을 용학사 아래 계곡가로 정했다. 진달래꽃을 따다 종이컵 잔에 띄우니 그럴 듯 한데 춥다. 친구가 가져 온 홍어무침 맛이 기가 막히다. 내가 가끔 생각나면 사는 곳인데 역시 훌륭하다. 덜덜 떨며 한 병 씩 마시고 서둘러 일어섰다. 추워서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였다. 
 
추울 땐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내리막길이라 힘이 덜 드는 것이 다행이지만 아직 3키로가 남았다.  정오가 지나며 볕이 조금씩 났다. 대개 아침에 안개가 짙으면 볕이 짱짱하다. 늦기는 했지만 오늘도 그랬다. 계 사장이 나이가 어떻냐고 묻는다. 자기도 이삼 년 후에 나 같이 힘들어 할까 봐 걱정이 된단다. 참 나.... 
 
산을 내려와 시외버스를 탔는데 피곤해 거의 잔다. 연신내에서 내려 목노집 앞의 불오징어집에 들려 막걸리를 한 병 씩 더 하고 집으로 왔다. 천천히 속도를 올렸어야 했는데 바로 빠르게 걷는 바람에 온 몸이 쑤신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역으로 가는 길. 동네의 벚꽃도 참 좋다.

 

이제 산으로 든다.

 

수문자리. 수채화다.

 

얼마만에 보는 풍부한 수량인가?

 

역사관에 참 힘들게 도착했다.

 

노란빛을 띤 새싹들이 참 예쁘다.

 

중성문 아래 계곡의 맑은 물과 푸른 잎들

 

중성문

 

산영루 옆의 와폭

 

남장대지능선 아래 바위를 넘고 난 후의 표정이.... 힘이 많이 들었다.

 

능선 끝의 굽은 소나무

 

능선길

 

이 앞으로 의상능선이 보여야 하는데.... 구름 뿐이다.

 

오늘 같이 걸은 증명으로

 

상원봉 성랑터

 

청수동암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청수동암문

 

문수봉

 

대남문

 

대성문

 

오늘도 대성암의 문은 닫혔다.

 

내려가던 중에 청둥오리 한 쌍이 길 옆 작은 소로 날아들었다.

 

 

역사관 앞

 

대서문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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