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시간 참 어렵다.
그 속에서 젊음이 계속 되는 줄 착각하고 살려니 힘들기 그지 없다. 인간이 만든 어떤 기계든 70년 이상을 계속 처음처럼 쓰는 것은 거의 없다. 내 몸도 그렇다.
이제 산길을 걷는 것이 점점 더 힘이 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생각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산길을 걸으며 이제는 '낚시대를 들고 강으로 가야 되나 보다'란 생각을 했을까. 강으로 갈 명분이 좋다. 차에 차박할수 있게 배터리 등등을 수백만을 들여 만들어 놓고 쓰지 않고, 아니 못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가 새롭게 일을 하러 다니는 바람에 일주일에 두세 번, 많을 땐 네 번을 가야 하니 그 날들은 운동을 하지 못한다. 쉬고 난 후 운동을 가면 몸이 엄청나게 반항한다. 늙었으니 꾸준히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니 몸이 적응을 못하는 거다. 그러니 내 몸만 힘들고 나만 죽을 맛이다. 백운대에 갔던 날부터 오늘까지 세 번 다 너무 힘이 들었다. 지난 두 번이야 그렇다 쳐도 오늘은 대성문에서 대피소로 겨우 11키로 걸었는데....
어제 아내가 출근하고 화요일까지 또 혼자다. 혼자 산에 갈 준비를 해야해서 일찍 불을 끈 탓에 3시에 깼다. 이불 속에서 뉴스를 보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늦게 일어났다. 지난 3월 경부터 눈이 더 보이지 않아 의구심이 들었는데 6개월 만에 안과에 가서 정기 진찰을 하니 눈꺼풀에 염증이 생겼단다. 그래서 수요일부터 눈에 온찜질도 하고 항염, 항균약을 투약 중이다. 그래서 시야가 많이 좋아졌다. 그동안 염증 탓에 시력은 그대로인데도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맑아졌다. 좋아진 눈 덕에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눈약을 넣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섰다. 지난주 보다 늦은 6시 반이다. 안경을 써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하늘도 엄청 맑아 세상이 투명하게 보인다. 지난주에 안경이 없어 잘 보이지도 않았던 길을 생각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 내린 비가 미세먼지들까지 다 가져갔나 보다.
버스정거장을 지나며 혹시나 했는데 대화역으로 가는 차는 몇 정거장 앞에 있다. 경의선을 타는 것이 낫다. 구파발역에 내려 바로 도착한 704번을 타고 산입구에서 내렸다. 해가 떴고 하늘에 구름이 없다. 세상은 온통 밝은 녹색이다. 참 오랫만에 보는 풍경이다. 오늘도 역시 젊은이들이 많다.
계곡으로 들어가며 또 습관이 나온다. 처음엔 천천히 걷자고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계곡이 말랐다. 그래도 어제 비가 왔다고 폭포에 물이 찔끔찔끔 내린다. 그런데 앞 뒤에 아무도 없는데 왜 힘이 들지? 온갖 공상을 한다. 그래서 이유가 나오면 힘이 덜 드냐? 아, 이제 나도 강으로 가야 돼?
이제는 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를 접었다. 하여 땅만 보며 죽어라 걷는다. 그러니 더 힘이 들 거다. 오늘은 꽃이름 찾기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네이버와 구글 렌즈로 알아보는 것을 했는데 둘이 조금 달랐다. 예를 들어 네이버는 노랑매화, 구글은 죽단화. 둘은 같은 말이란다. 그래도 바로바로 답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확인하느라 쭈그렸다 폈다하며 산을 올랐다. 아직 렌즈를 잘 쓰지 못하고 확인 결과를 보관하는 방법을 몰라서 더 공부를 해야겠다.
오늘은 이번 주에 헬스장에서 부터 힘이 들어서 짧게 걷고 내려가려 했었다. 그러다 지난주에 보았던 주능선 바위 위에 피고 있던 꽃이 궁금해 졌고, 남장대지능선을 걷거나 주능선을 걷자고 다짐했던 생각이 떠올라 길을 바꿨다. 보국문 갈림길을 지나치자 바로 다리가 힘들다고 난리를 친다. 아직 1/3 겨우 왔는데. 파업을 외치는 두 다리를 겨우겨우 다독여 대성암을 지나가는데 문이 닫혔다. 더 힘이 드는 기분이다. 내 앞에서 걷던 이는 대남문으로 직진했다. 나는 왼쪽으로 틀었다. 이제 더 힘든 오름길이다. 팔은 무릎을 짚으라고 있는 것이니 기꺼이 그 용도로 계속 썼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대성문에 오르니 쉬고 있는 이들이 있다. 힘 들지 않은 척 숨소리를 죽이며 의자에 가서 배낭을 벗었다. 아불싸! 내 등판과 가슴이 다 젖었다. 멋진 척 하려고 했는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이 다시 부럽다.
이제 쉬었으니 정향나무꽃을 보러 가야지. 쉬고 나서 한두 걸음은 괜찮은데 열 걸음이 넘으니 다시 숨이 가빠진다. 아, 진짜 왜 이러냐?
작은 봉우리 하나 넘어서 바위에 쇠난간이 걸린 작은 봉우리를 다시 오르면 꽃이 있는 곳이다. 보라색을 넘어 짙은 갈색으로 핀 꽃을 보고 향을 맡으니 없다. 어? 전에는 정향나무향이 났는데. 네이버와 구글 렌즈로 확인하니 털****란다. 그럼 이 산에서 정향나무는 남장대지능선에만 있나 보다. 그 꽃을 보려면 다음주에는 무조건 그 곳을 걸어야 한다. 행궁지 뒷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 힘이 든다.
맥이 빠지니 다리가 더 힘들어 한다. 보국문에서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려다 아직 더 걸을 수 있는 것 같아 대동문으로 향했다. 주능선에서 보이는 서울이 오랜만에 맑다. 비 덕분이다. 대동문에서 내려가려던 생각은 점점 늘어져 결국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러시아 말을 하는 네 명, 한 가족에게 인사하고 잠깐 돌 위에 앉아 쉬다가 보니 화장실이 없어 여자 둘이 난감해 했다. 아버지가 숲에서 나오고 난 후 숲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뒤로 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다시피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은 산영루 옆 바위에 앉아 샌드위치와 사과, 차가운 둥굴레차를 마시고 부지런히 걸어 내려왔다.
요즘 아니 오늘도 더 느낀 것이 내려오다 마주친 이들의 거의 1/3은 외국인으로 북한산이 이제 우리만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것이다. 하긴 좋은 것은 여럿이 나눠야지. 오늘도 다시 내려가는 길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연산책로 내려와 집으로 오는데....
옛날 '단지' 아래 길의 찻길과 보도를 쇠난간으로 막았다. 사람이 다니는 국립공원인데 차가 다니기 좋게 인도를 줄여서 차단공사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올라갈 때는 등산객이 없어서 몰랐는데 정오가 거의 되어 내려오면서 사람들과 마주치는데 어깨가 부딪치고 하니 저절로 욕이 나왔다. 위에서만 열심히 하면 뭐하냐? 옛 생각으로 일을 하는 주구들은 그대로 있는데.... ㅠㅠ
내일까지 금주하려다 열불 나서 막걸리 한 병 뜯었다.
오늘도 산에 간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세상은 온통 푸르다. 이제 산으로 들어간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계곡폭포에 물이 소오줌 마냥 떨어지고 있다.

역사관 앞에 바위꾼들이 일찍부터 모여 있다.

중성문 아래 계곡

나월봉이 보인다.

네이번 렌즈에서 벌깨덩굴이라고 한다.

금위영이건기비 앞의 풀을 누군가가 말끔히 베었다.

대성암 대문이 닫혀서 담장 너머로 보았다.

대성문 도착

보국문으로 가는 성곽길 한 가운데에 병꽃이 피었다. 오늘은 병꽃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 사진을 찍은 곳 바로 뒤에 정향나무와 비슷한 털개회나무? 섬개회나무가 있다.

이 나무인데 네이버렌즈에서 수수꽃다리속의 털(섬?)개회나무란다. 아직 향이 나지 않았다.

남쪽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를 보며 그 너머로 양평의 주읍산(칠읍산)도 보았다.

전망대에서 보는 삼각산

앞의 주능선을 지나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남쪽전망대에서 보는 서울. 이렇게 맑게 보이는 날이 매우 드문데, 복 받았다.

청계산과 관악산도 보이고

칼바위 너머로 양평의 산들이 보였다. 주읍산은 봉우리가 특이해서 멀리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보국문

칼바위로 가는 갈림길 옆에서 보는 서울

대동문

대동문 위의 제단에서 보이는 삼각산

대피소로 가는 숲길

대피소에 도착했다.

산영루 옆의 와폭 바위에 앉았다.

역사관 앞이 바글바글하다.

다 왔다.

차들을 위해 인도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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