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대에 다녀온 이후로 산길을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 하여 산에 가지 않을까 하다가 운동으로 하는 등산이니 산에 가서 천천히 걷다 오자 생각하며 배낭을 꾸렸다. 배낭은 오늘도 지난 번들과 같다. 물, 샌드위치, 과일. 집을 나서기 전에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맑다. 바람막이를 입고 지난주와 같은 시간에 나섰다.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더워 땀이 난다. 이제는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날이 되었다. 환승을 하며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역에서 나와 곧바로 도착한 양주37번 버스를 타고 산 입구에 도착하니 7시 반이 조금 넘었다. 오늘도 일찍부터 걷는다. 긴팔 셔츠를 입었더니 덥다. 소매를 걷어 붙이고 계곡으로 들어갔다. 등산객들이 참 많다. 이른 시간인데 외국인들도 보인다. 계곡에 들자 아까시 꽃의 달콤한 향이 코를 기분 좋게 한다. 아까시 꿀 생각이 난다. 시원한 꿀물이 좋겠다.
계곡은 또 다시 가물어졌다. 비가 찔끔 내린 탓이다. 이제는 해가 거의 들지 않는 계곡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랐다. 계곡 입구에서는 시원했는데 더워서 모자를 벗어 던지고 싶다. 역사관 앞에 도착했는데 등은 물론이고 바지 뒤춤까지 다 젖었다. 역사관 근처의 아까시 나무들도 하얗게 꽃을 피웠다. 그런데 향이 영 시원치 않다. 내 코의 성능이 떨어져서 그런가?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이어폰을 끼고 다시 길로 들어갔다.
선봉사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의도적으로 뒷다리를 펴며 걸었다. 확실히 힘이 덜 드는 느낌이다. 이제 오르막길은 이렇게 걸어야겠다. 오늘은 보국문으로 가서 짧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남장대지능선의 정향나무가 궁금해 방향을 바꿨다. 일부러 빨리 걷지도 않았는데 행궁지삼거리에 도착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스틱을 꺼낼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무릎을 짚으며 올랐다. 행궁지를 옆으로 감아 오르는 길이 거칠고 가파라 힘이 들기에 행궁지를 통과해 뒤의 데크 계단으로 올랐다. 다리가 너무 힘들어 해서 계단 위의 너른 바위에서 한참을 앉아 쉬었다.
이제 여덟 곳의 난해한 구간을 지나야 절벽 같은 바윗 앞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길이 점점 더 파이고 있다. 가파른 바윗길에 도착해 나무뿌리나 바위에 손을 대지 않고 오르려 했지만 안되겠다. 이 바위를 오르면 오래전에 여기서 잃은 파란 손수건이 꼭 생각난다. 참 좋았는데 늘 아쉽다. 물론 지금도 색만 다른 같은 재질과 크기의 손수건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지나 남장대지능선 끝에 올랐다. 고난은 끝났고 이제부터 행복 시작이다. 기분이 좋다.
어디선가 정향나무의 향이 풍기는 듯하다. 두리번 거렸지만 보일 리가 없다. 능선길 오른쪽에 있던 정향나무를 찾느라 발걸음이 더뎌졌다.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예전에 있던 자리에 나무가 없다. 실망이 크다. 왜 없지? 누가 베었나? 죽었나? 아쉬움에 걷는데 청송대가 가까운 곳에서 반갑게 꽃이 보였다. 역시 길의 오른쪽에서다. 지난주에 주능선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꽃이다. 향을 맡았는데 실망스럽게도 없다. 구글과 네이버 렌즈를 켜고 사진을 찍어 검색을 하니 할 때마다 다른 이름이 나온다. 네이버는 좀자작나무, 비슬나무 구글은 조록싸리, 정향나무. 드디어 찾았다. 다음주에 다시 와서 향을 맡아야겠다.
이 능선에 철쭉은 흔적을 겨우 남기고 있고 한창인 흰꽃 나무들이 있다. 노린재나무와 팥배나무. 조그맣고 예쁘다. 상원봉에서 성곽을 따라 내려가서 청수동암문 위를 지나 문수봉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다.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삼각산을 배경으로 찍으라고 했더니 고맙단다. 처음 들은 말이다. 문수봉을 차지한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했는데, 개들이 버려진 이유를 잘못 얘기하면서 20년을 북한산에 다녔다며 아는 척을 하는 60대에게 나는 이 산 아래에서 지금껏 살며 산에 다니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입을 닫는다. 어디에나 늘 고수는 있다.
대남문으로 내려와 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려던 생각을 바꿔 대성문으로 가서 마루에 앉아 쉬다가 대성암으로 내려왔다. 오랜만에 대성암 문이 열려 있다. 보국문 갈림길까지의 긴 너덜지대를 수도 없이 걷어차며 내려왔다. 이렇게 걷어차고 다니니 등산화 코가 버티지 못하는 거다. 지금 오른쪽 쪼인트가 아픈 것은 아까 내려오다가 바위에 부딪혀 까지며 피가 나서 그렇다.
계곡을 내려오며 물이 있는 곳마다 쭈그리고 앉아 손수건을 적셨다. 물이 적어도 시원하기 그지 없다. 긴 길을 억지로 내려와 역사관 앞 데크 의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자연산책로로 내려왔는데 길 옆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나 하여 가까이 갔는데 조은네 님이 있었다. 먼 평택에서 매주 다음산악회 비원대장 산행에 참석하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시다.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져 조은네 님은 산으로 올라가고 나는 집으로....
집에 와서 샤워하고 막걸리 상을 마련하다 어묵탕이 먹고 싶은 생각에 냉장고를 뒤지니 없어 편의점에 갔는데도 없다. 포기하고 불고기와 번데기 통조림으로 상을 차리고 마시다 정신을 차리니 마루에 엎어져 자고 있다. 잔을 다 비우긴 했지만 자다가 술상을 엎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아내에게 걸렸으면 잔소리 깨나 들었을 것이다. 이제 푹 자고 일어났으니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걱정이 이틀 전에 주식이 폭락했는데 내일 어찌 되려는지?
하늘을 보니 무척 덥겠다.

수문자리의 아까시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내 코가 기능을 잃었는지 향이 그리 짙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곡폭포가 말랐다.

역사관에 도착했는데 옷은 이미 다 젖었다.

중성문 아래. 앞에 노적사로 가는 분의 커피를 내가 노적사 입구 다리까지 들어다 주었다.

멀리 높게 보이는 나월봉. 곧 내려다 보며 걷게 될 것이다.

행궁지 뒤의 계단을 올라서 내려다 보았다.

앞 사진의 계단을 오른 후 다시 이런 계단과 비탈을 올라야 쉴 수 있는 바위에 닿는다.

능선으로 가는 길 중간의 가파른 바위를 넘고 나서 보이는 삼각산

능선 바로 아래의 바위를 넘으면 삼각산이 이렇게 다가온다.

주능선과 그 너머의 칼바위도 보인다.

능선 끝에 철쭉꽃이 아직 남았다.

노린재나무 꽃이다.

정향나무의 어린 꽃. 향기를 맡으려면 다음주에 다시 와야 한다.

남장대지능선 건너편으로 달리고 있는 주능선

팥배나무꽃이다.

의상능선 너머로 내 고향이 보였다.

의상능선 가운데에 나월봉이 내려다 보인다.

상원봉에서 의상능선과 삼각산을 한 번에 보았다.

상원봉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성곽길에서 보는 문수봉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문수봉에서

산에 개들이 너무 많다. 공단에서는 적극적으로 잡으려 들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산길에서 가끔씩 보이던 꿩과 산토끼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들 때문으로 추측된다.

대남문

대성문

담장 너머로 보이는 대성암

발굴 중인 경리청상창지 앞길

다시 역사관 앞에 왔다.

다 내려 왔는데....

조은네 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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