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5.30 행궁지 - 대성문

PAROM 2026. 5. 31. 09:14

지난주는 아주 오랜만에 천렵을 가느라 산을 걸렀다. 요즘들어 산길을 걸을 때나 걸은 후 다리가 예전 같지 않게 후들거리는 느낌을 받고 여기저기가 불편해 졌다가 하루가 지나야 정상으로 돌아오니 더 못 걷지 전에 오감으로 느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참에 오래 묵혀 두었던 낚싯대를 다시 잡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건강과 경제 모두 등산이 훨씬 낫긴 하지만 몸이 따로 놀기 시작했으니 어쩌랴.  
 
전날 운정에서 아롬이를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와 늦게까지 TV를 보다가 잤는데 늦게 잠이 깼다. 서둘러 밥을 먹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왔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 보다는 한참 이른 6:48 열차를 타고 산으로 갔다. 벌써 한여름 기온처럼 덥다. 버스에서 내려 산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오늘은 천천히 걸으며 작은 돌맹이 하나, 개미 한 마리까지 다 봐야지 다짐한다. 
 
계곡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을 받으러 산에 오는 거다. 계곡에 널린 계단들이 마뜩치 않지만 어쩌랴. 전엔 두 계단 씩 올랐는데 이젠 하나 씩 오르기도 벅차다. 등이 젖어 온다. 앞에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지만 어느새 발은 또 빨라져 있고 오르막을 오금을 펴지 않고 오르고 있다. 습관은 의지로 쉽게 고칠 수 없다. 
 
역사관 앞에서 쉬며 젖은 옷을 말리고 가려고 했는데 바람이 없으니 마르질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길로 들어가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법용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이젠 돌뿌리를 걷어차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등산화 코가 떨어질까 걱정이 된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대피소? 대성문? 지지난 주에 보았던 정향나무꽃이 어찌 되었을 지 궁금해졌다. 그래 오늘은 남장대지능선의 꽃향기를 맡으러 가자. 그러면 정말 좋겠다.
 
이젠 산길이 나뭇잎들 덕분에 응달이 되었으니 몸을 조금이라도 더 식히기 위해 모자를 벗었다. 벗을 때만 효과가 있고 만다. 숲을 지나며 머리가 자꾸 나뭇가지에 닿아 거미줄도 걸리고 벌레들도 덤빈다. 정향나무꽃의 향을 맡으러 가는 길이 고되다. 행궁지 옆 오르막을 한참 오르다 문득 조용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 이어폰이 없다. 잃어버리고 그냥 오를까 하다가 찾으러 길을 훑어보며 내려갔다. 이 길에서 오래전 겨울에 눈속에 썬그라스를 잃은 적이 있어 같은 경험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오르막을 다 내려가 행궁지 발굴공사 안내 입간판 앞에서 이어폰을 찾았다. 모자를 벗으며 떨어진 듯하다. 이길은 다니는 이들이 적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밟히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찾은 방법은 모바일의 소리를 나게 해서 소리가 끊기면 그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이니 그곳을 살피면 되는 것이었는데 와이파이 범위가 사오십 미터는 되는 듯했다. 이제 다시 오르는데 힘이 갑절은 더 든다. 쉬었다 가면 좋겠는데 이 길에는 엉덩이를 붙일만 한 곳이 마땅치 않아 계속 오른다. 
 
이젠 산길을 오를 때 손의 역할이 매우 커졌다. 무릎을 짚는 일이다. 스틱을 써도 그렇다. 능선에 오를 때까지 수십 번도 더 멈춰 숨을 골라야 했다. 겨우 능선에 오른 후 이젠 눈이 바빠졌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능선 오른쪽을 유심히 살폈다. 정향나무를 찾기 위해 천천히 걸었지만 청송대가 다 와 가도록 보이지 않았다. 2주 전에 보았던 정향나무를 간신히 찾았는데 시들은 꽃이 한 가지에 겨우 달려 있다. 향기를 맡아보니 맞다. 하지만 겨우 구분할 정도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몇 년 만에 맡은 향기다. 
 
목적을 이루었으니 이제 어디로 가던 상관 없다. 하지만 여기 왔으면 문수봉은 가야지. 힘이 들어 남장대지에 털썩 주저 앉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월봉이 보였다. 숨을 고르고 난 후 걷는 길이 가볍다. 상원봉을 가지 전에 있는 사잇길로 청수동암문으로 가서 문수봉에 올랐다. 사람들이 많다. 힘이 들어 바위에 앉아 쉬며 수박 두 조각을 먹고 대남문으로 내려와 바로 내려가려다 대성문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대성암으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돌이나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않으면 좋다. 그런데 걸리지 않을 수가 없다. 
 
대성암 앞에서 여산객 한 명이 한참을 서 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앞서 걷기 시작한다. 물을 건너며 손수건을 적셔 땀을 닦고 쫓는데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 너덜지대라 뛸 수도 없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 계곡가에서 등산화 끈을 고쳐 매는 사이에 앞질렀는데 쫓느라 너무 무리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내가 역사관 앞에서 잠시 쉬는 틈에 지나갔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뒤에서 쫓느라 봐서 알지만 저니는 모를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경쟁하듯 걷긴 아주 오랫만이다. 덕분에 산을 4시간 만에 걸었지만 몸은 죽을 맛이다.
어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시원한 막걸리를 삭힌 홍어 삼합을 안주로 마셔야겠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조금 늘었다.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중성문이 녹음에 묻혔다.

 
네발로 옛길로 올르면 보이는 나월봉. 이때까지는 저곳을 내려다 보고 걸을 줄 몰랐다.

 
행궁지 아래길에 핀 산딸기

 
남장대지능선 아래 바위길에서 보는 삼각산. 너무 더워서 모자를 벗어 배낭에 걸었다.

 
남장대지능선 끝의 소나무

 
아직 지지 않고 피어 있는 정향나무꽃. 희미하지만 향기까지 맡을 수 있어 행복했다.

 
청송대에서 보는 삼각산과 도봉산

 
청송대에서 보는 주능선

 
남장대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나월봉. 한참 내려다 보인다.

 
의상능선.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 . . 그 너머 내 고향 신원리도 보이고....

 
남장대지 옆 바위에서 보는 원효봉, 염초봉, 삼각산

 
의산능선의 끝 나월봉

 
청수동암문 앞으로 구파발과 삼송리가 보인다.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삼각산을 배경으로

 
대성암

 
청수동암문. 이 앞 산객과의 간격을 내 걸음으로 좁히지 못했다.

 
대서문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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