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불안해 지기도 하고 점점 더 불편해 지고 있다. 아마도 세월의 흐름이 제일 큰 영향을 끼치지 않나 싶다. 그 와중에 집에 있으면 더 큰 병이 날 것 같아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산에 다녀왔다.
오늘 기억될 일은 오랫동안 올스탑대장과, 이후엔 우리끼리 어울려 산에 다녔던 은단풍을 산에서 내려와 집에 오는 길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나갔으니 소식을 몰라 궁금했는데 이렇게 본 것이 참 반가웠다. 그 만남의 느낌을 노트에 적어 놓았다. 지극히 자존감이 크고 적극적인 친구라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다른 생각을 갖는 이가 있을 수 있어서....
오늘 산길을 내려와 역사관 앞에서 쉬다 옛 기억을 되살리는 바위꾼들의 말들이 들렸다. 누룽지바위와 책바위가 대화에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향하는 곳이 염초봉인지 노적봉인지는 모르지만 예전 올스탑대장과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삼삼하게 떠올랐다. 내 이십 대 시절 만큼 그리운 산길의 기억이 살아나는 날이었다.
밤새 우리나라에 이어 미국 주식이 무척 많이 빠졌다. 트럼프가 연준의장으로 똘만이를 임명해 금리 인상을 하고, AI에 대한 기대가 줄었고, 그동안 반도체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반도체 성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나는 어찌 하냐? 고민이다. 팔아? 말아? 대여섯 가지 가지고 있는 종목이 모두 엄청 내려 하루 만에 6퍼센트 넘게 까였다. 간밤에 미국이 또 내렸으니 월요일에 더 내릴 것 같은데, 그러면 최악이 될 것이다. 지금 막걸리 한 병에 취해 있다. 이제 자야 되는데....
밤새 미국장을 보며 자다깨다 하다가 4시 반에 일어났다. 혼자 있는 날이라 밥 해 먹고 치우고 씻고 배낭에 샌드위치와 수박, 물
두 병을 넣고 집을 나섰다. 탄현역으로 가는 데 버스정거장에 600번 버스가 도착했다. 탔다. 그런데 신호마다 걸린다. 그렇게 늦었는데도 대화역에서 13분 후에 출발이다. 조금 덜 걷겠다고 했다가 망했다.
구파발역에서도 한참을 기다려 산으로 갔다. 땀을 흘리며 산으로 가는데 상가 앞 길들이 너무 좁다. 공단인지 구청인지에서 왕래 인원을 고려하지 않고 길막이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점점 더 혼잡해 지는데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민원을 넣어?
늘 그렇듯 예전 매표소 앞을 씩씩하게 지나 계곡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바람과 청량한 물소리가 땀을 식혀 준다. 버스에서 같이 내린 이들이 열 명이 넘는데 나만 죽어라 걷고 있다. 서암사 옆을 돌아오르는 길가에 맺힌 개복숭아를 따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
길이 멀게 느껴질 정도로 땀이 많이 난다. 오늘은 기온이 높지는 않지만 볕이 따갑다. 지난주에 비가 내린 기억이 없는데 물이 많아졌다. 그 덕분에 가끔 얼굴에 닿는 바람이 시원하다. 힘들어 하면서도 걷고 또 걷는다. 등이 다 젖어서야 역사관에 도착했다. 그냥 여기서 편히 쉬고 싶다. 배낭 옆 주머니에서 꺼내 마신 물이 시원하다. 이어폰을 꺼내 끼고 익숙해진 노래를 들으며 길로 들어갔다. 이제 어디로 갈까?
다음주는 산에 못 온다. 상가의 관리단 총회가 있어서다. 이제 기억력이 나빠져서 일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예전엔 다음주에 산에 못 가게 되면 더 많이 걷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기운이 없다. 오히려 덜 걸으려 한다. 대성문에서 대피소로 가려다 보국문에서 가기로 했다. 최근 굳어진 코스 중 제일 짧은 코스다.
전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고관절 부위가 이젠 매일 느껴지고 발걸음도 부자연스러워 지고 삐그덕 거린다. 세월에 얹혀서 몸이 같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 덕분에 등산화 코가 많이 까이고 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등산화에 미안하다. 이젠 새 등산복이나 모자, 등산화를 사려면 많이 주저 한다. 있는 것들로 살아야겠다.
점점 더 길어지고 멀어지는 산길에 꽃들이 많다. 이제 산딸나무도 하얗게 꽃을 피웠다. 길가에 숱하게 피어 있는 싸리나무꽃과 이름을 몰라 궁금했던 국수나무꽃이 내내 반기고 있는 정다운 산길을 죽어라 걸어 보국문에 올랐다. 힘들다. 엉덩이를 붙일 곳을 찾지만 다른 엉덩이들이 차지했다. 대피소로 바로 향한다.
힘이 들어서 보국문 위 조그만 바위에 걸터 앉아 수박 두 조각을 먹고 나니 살만하다. 칼바위와 형제봉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누가 배낭을 어지럽게 펼쳐 놓았다. 옷도 그렇고 이상한 사람이다. 대동문을 지나 제단으로 가는 계단길이 언제 이리 길고 높아졌지? 무릎을 펴며 걸어도 역시 힘이 든다. 그래서 무릎을 짚으며 올랐다.
동장대복원공사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돌아가는 길이 나쁘지는 않지만 불편하고 길다. 길가 산초나무에 연초록으로 새로 난 잎을 뜯어 씹으니 향이 가득 퍼진다. 오늘 걷는 능선길의 끝 대피소에 도착해 이른 점심을 먹었다. 땀 범벅으로 우걱거리는 모습이 우습다. 먹느라 한참 앉아 있으니 모기가 덤빈다. 일어나 계곡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걸었다. 아니 힘이 달려서 빨리 걷지 못했다. 내려오다가 역사관 앞 데크의 빈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쉬었다. 이제 11시 조금 넘었다. 앞에 무리지어 있는 바위꾼들을 보며 다시 내려오는 길로 들어서서 자연산책로로 내려와 버스를 타러오다가 은단풍을 만났다. 아쉽게 악수만 하고 바로 헤어져 집으로.
집 앞에서 사온 막걸리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샤워를 하고 나와 마시니 더 시원한 듯하다.
산에 오는 이들은 두 부류다.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오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그럼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행태를 보면 보인다. 뭐, 본능을 탓할 수는 없다. 태어났으면 당연히 퍼뜨려야지. 능력 있는 이들이 부럽다.
오늘 산으로 갈 때마다 하던 작은 기대 하나가 사라졌다. 산울림의 "청춘"이 떠오른다.
산에서 만나는 첫번째 데크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계곡폭포에 물이 조금 떨어지고 있다.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중성문 아래 계곡. 물이 맑다. 옆에 앉아 쉬고 싶다.

중성문. 나무잎에 가려졌다.

산딸나무에 꽃이 피었다.

싸리나무꽃이 가장 흔했다.

산영루

늘 궁금했던 이 풀 같은 나무가 국수나무란다. 네이버렌즈가 알려줬다.

보국문에 도착했다.

보국문 위에서 보이는 문수봉을 배경으로

칼바위와 형제봉. 그 뒤로 백악, 멀리 남산과 관악산

대동문

제단 뒤에서 보이는 삼각산을 배경으로. 능선의 볕이 따가워서 모자를 바꿔 썼다.

대피소로 가는 길

대피소 도착

이 자리에서 보이던 문수봉이 나뭇잎에 가려졌다.

중성문

역사관 앞에 바위꾼들이 많았다.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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