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참 바쁘다. 일이 계속 생긴다. 그래서 삶에 활력이 돋나?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결혼하고 상가관리단 총회가 열리고 오래된 차가 소리를 질러대서 정비소에 가고 농협조합원 자격 유지하려고 농지대장 만들고 큰 손주 생일 차리고 하느라 2주가 순식간에 지났다. 그런데 오늘은 내 생일이다. 집에 혼자 덩그라니 놓였다. 밖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지난주에 못 갔으니 오늘은 반드시 간다. 둘레길이라도. 그래 비가 이리 쏟아지면 산을 막을 것이니 오랫만에 구름정원 구간을 걸어 보자.
방수배낭을 꺼내 꼭 필요한 물건들만 옮겨 넣었다. 그리고 수건과 갈아 입을 옷, 물, 과일, 샌드위치, 비상용 알콜, 간식을 더 넣었다. 무겁다. 반바지를 입으려다 반팔 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등산화 대신 오래된 머렐 아쿠아 신발을 신고 긴 우산을 집었다 놓고 접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제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역으로 가는데 아롬이가 전화를 했다. 비가 오는데 위험하니 집에 있으라며 비 오는 날 산에 혼자 가서 행방불명 됐다 몇 달 후 백골로 발견 되었던 제 친구 아버지 얘기를 한다. 오늘은 길이 험한 곳으로 가면 안 되겠다.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대곡역을 떠났다. 능곡에서 되돌아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 타고 불광역으로 가기로 했다.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우산이 뒤집어 질 듯하다. 창을 겨눠 든 병사처럼 우산을 앞세우고 전진한다. 지난주에 산에 오지 않은 벌을 받는 듯하다.
장미공원 앞에서 불광사로 향했다. 산으로 들어오니 바람도 비도 약해졌다. 아롬이가 조심하라고 또 전화했다. 북한산둘레길 제8구간 구름정원길에 들어섰다. 아마도 이 구간이 오르내림이 가장 쎈 구간일 듯하다. 길을 따라 무심히 걷다 예전엔 더 힘들고 멀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은 듯하여 왜 그런가 생각하니 전에는 거의 북한동에서 불광역으로 걸었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비 때문에 분명 산을 막았을 거라는 기대는 향로봉으로 가는 길이 트여 있는 것을 보고 실망으로 변했다. 그냥 북한동으로 갈 껄 하는 후회가 잠시 스쳤다. 비 오는데 아쿠아슈즈를 맨발에 신고 우산을 들고 걷다보니 덥다. 하그롭스 벙거지를 벗어 배낭벨트에 꿰고 걸었다. 불광중학교 까지 2.5키로는 어려움 없이 만나는 이들도 거의 없이 걸었다.
어디 마땅한 곳이 있으면 엉덩이를 붙이고 잠시 쉬었으면 했는데 불광중학교 뒷산에 정자가 있다. 비에 젖지 않은 곳도 넓다. 냉큼 정자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리고 물을 마시고 쉬었다. 이어폰을 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데도 길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다닌다. 대부분이 부부로 보였다. 정자에서 나와 조금 걷다 허리를 보니 모자가 없다. 정자로 돌아가 찾았는데 없다. 어딘가에서 벨트를 풀었다 떨군 듯하다. 되돌아가 찾을 까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아깝다. 참 오래된 아끼던 모자인데. 북한동에 도착해 비슷한 것으로 하나 살까?
아까워 하며 걷다 기자촌전망대 아래에 왔다. 이제 이 긴 계단만 오르면 내려가는 길만 남는다. 전망대에서 대머리바위를 보고 한옥마을로 향했다. 진관사와 삼천사 입구를 지나 개울을 따라 걸어 백화사를 향하는데 비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옷은 이미 비와 땀으로 다 젖었다. 신발 안에 모래가 들었는지 발바닥이 따갑다. 길에서 물을 만나면 들어가야겠다. 백화사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걷는데 등산객 뭉테기가 온다. 산을 막았나? 그러면 다행이다. 그런데 의상봉으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 실망이다.
북한산초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딸이 또 전화를 했다.제 동네에 비가 무척 많이 오는데 그냥 집으로 가란다. 다 왔으니 이제 곧 갈 것이라고 했다.
탐방지원쎈터를 지나 계곡 앞에 섰다. 물이 엄청 많고 흐리다. 물소리가 크다. 소리만으로 시원하다. 아니 서늘하다. 발을 물에 씻어야 되는데 없다. 계곡을 따라 걸었다. 수문자리 위에 작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있어서 그곳에서 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래된 우쿠아슈즈는 이제 양쪽 모두 입을 벌렸다. 고쳐 신기는 어려울 듯 하고 그래도 또 그럴 듯하다. 수문자리 위의 데크를 올랐는데 물의 양도 적고 들어갈 수도 없다. 뒤돌아서 내려왔다. 계곡 입구 자연산책로 끝에 작은 샛개울이 있어서였다. 그곳으로 들어가 발을 씻고 바지 아래에 묻은 흙도 닦았다. 이만 보가 훨씬 넘었다. 11시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집으로 간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어가 클라우드를 하나 사서 벌컥이니 춥다. 양주37번을 타고 연신내에서 내려 시장끝에서 간고등어 한 손을 산 후 지하철을 탔다.
집에 와서 다 젖은 옷을 세탁기에 던지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온몸이 느슨해지고 평안해졌다. 땀을 흘린 후에 갖는 행복이다.
곧바로 막걸리 상을 차리고 앉는다.
눈을 뜨니 맑은 아침이다.
비가 내리지만 산으로 간다.

불광역을 나오니 비바람이 거셌다.

불광사 옆에서 8구간 구름정원길 시작이다.

곧 나타난 전망대에서 우산을 내리고 한 장

바위를 따라 도는 데크길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

연신내로 내려가는 길에 공사가 한창이다. 파헤친 흙이 비에 곤죽이 되어 발이 푹푹 빠졌다.

불광중학교 후문에서 올라가는 둘레길

작은 멧돼지 한 마리가 갇혀서 발버둥 중이었다.

배드민튼장 아래 갈림길

기자촌에서 보는 구파발. 국립공원 자원봉사자들이 풀을 베고 있었다.

기자총 위의 대머리바위를 보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구름정원길이 끝나고 이제 마실길 시작이다.

둘레길 옆의 이 왕가 종친의 묘역

진관사 앞을 흐르는 계곡물이 둘레길을 지난다.

은행나무 숲. 가을이면 금빛으로 물든다.

삼천가로 가는 길. 냇가를 따라 간다.

백화사 옆에서 9구간 내시묘역길이 시작된다.

북한산 입구에 도착했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과 계곡

북한동. 이제 집으로 간다.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7. 4 대피소 - 보국문, 눈비돌과 알탕, 조은네 님 만남 (1) | 2026.07.05 |
|---|---|
| 6.27 관악산 연주대, 정박사와 (0) | 2026.06.28 |
| 6. 6 보국문 - 대피소 (0) | 2026.06.07 |
| 5.30 행궁지 - 대성문 (1) | 2026.05.31 |
| 5.16 행궁지 - 대성문 (1) | 2026.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