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에 보국문에서 대피소로 걷고 한 달 만에 다시 주능선을 걸었다. 6.13 관리단총회날은 아예 산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그 다음주 6.20은 비가 내린다고 약은 척하며 불광역에서 북한동까지 둘레길을 걸었고 지난주에는 친구들 모임이 사당역 근처에서 있어서 정 박사와 관악산 연주대에 올랐었다.
오랫만에 전화해서 산에서 보자는 눈비돌에게 대피소갈림길 위 계곡의 알탕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더운날 물속을 들락거리려면 준비할 것들이 있다. 음료와 먹거리, 수건과 갈아 입을 옷들이 필요하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하늘이 찌푸둥하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은 없다. 밥을 해 먹고 배낭을 꾸렸다. 보온병에 얼음을 채우고, 맥주 한 캔, 수박 한 그릇, 600mm 물, 찐 알밤 한 봉지, 육포, 빈 200미리 짐빔 병을 가득 채우고 갈아 입을 옷도 넣었다. 짐이 많아 스틱은 밖에 달았다. 배낭이 묵직하다. 이러면 산길을 걷기 힘들지만 일단 알탕 장소까지만 가면 되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낭이 무거워 허리벨트를 골반에 걸으니 다리가 무겁단다.
모바일폰을 사흘 전에 S26으로 바꿨다. 4년을 쓴 플립4의 힌지부분 화면이 깍은 손톱만큼 까맣게 된데다 삼성전자에서 20%의 온누리상품권을 준다고 해서였다. 폰을 바꾸니 변경할 것들이 많다. 자동이체 하던 것들, 각종 앱의 설정들을 바꾸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런데도 아직 변경하거나 새로 설정할 것들이 더 있다. 핸드폰이 길어지고 얇아졌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 주머니 속이 불편하다. 화면은 작아졌지만 글자 크기를 키우니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 앞으로 최소 2년은 이것과 지내야 한다. 집을 나와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데 핸펀과 묻고 답하고 설정하느라 멈칫거렸다. 당분간은 새 앱을 쓸 때마다 이럴 것이다.
이른 시간인데 눈비돌이 전화를 했다. 벌써 집을 나왔단다. 보국문에서 만나곤 했는데 상황을 보며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내가 산으로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각자 걷고 알탕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요 며칠 많이는 아니지만 비가 내리기는 했으니 물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배낭이 존재감을 은근히 알려준다. 평지는 괜찮지만 오르막에선 부담이 될 듯했다.
탐방지원쎈터를 지나 계곡 앞에 섰는데 조용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계곡이 말랐다. 계곡바닥은 짙은 물이끼가 덮고 있다. 그래도 숲이라 기온은 높지 않아 아직은 견딜만 하다. 서암사 옆 데크계단을 오르고 폭포 옆의 철계단을 오르고 나니 앞가슴이 젖어 들었다. 최근에 새로 터득한 오르막 걷기 기술이 조금씩 먹히는 듯해 기분이 좋다. 호흡법도 크게 내쉬는 것으로 바꿔야 하는데 아직 익숙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역사관이 가까워질수록 옷이 더 많이 젖어 온다.
젊을 때는 배낭을 어깨로만 지고 날랐다. 이제는 어깨로는 못한다. 허리로 해야한다. 진작에 골반에 걸고 걸었다면 더 무거운 짐도 견뎠을 것이다. 흐르는 땀에 안경이 걸리적 거리고 시야도 흐려져 벗었다. 발밑이 뿌옇다. 눈비돌이 계속 전화하여 위치를 알린다. 내가 많이 늦었으니 주능선에서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역사관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일어섰는데 안 들린다. 폰을 바꿨으니 불루투스를 다시 연결해야 했다. 이젠 남들 신경 쓰지 않고 걷기로 다짐했지만 앞에 누가 있으면 쫓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못된 버릇인데 고쳐지질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추월 당하면 그러려니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죽어라 쫓아갔는데, 이젠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대피소 삼거리에 가까워지며 삼거리 백여 미터 위의 알탕 장소로 가려다 너무 짧고 시간도 이른 것 같아 일단 대피소로 가기로 했다. 중흥사 앞 계곡을 건너 봉성암 갈림길 삼거리에서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손수건을 적셨다. 안경이 없어 뿌옇던 시야가 그새 적응을 했고 이제 이 길들은 돌 하나까지 기억하니 다리만 버텨주면 된다. 역시 오름길에서 무거운 배낭은 버겁다. 그래도 앞서 올르던 이들이 데크계단 위에서 쉬고 있는 사이에 지나쳤다. 생각해봐도 70이 넘은 내가 대단하다. 대피소에 도착해 쉬다 떠나려는데 그들이 올라왔다. 모두 위의 대피소건물로 향했는데 그들 제일 뒤의 두 명이 내쪽으로 왔다. 고3이고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았단다. 아직 여름방학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학입학은 수시에서 대부분 확정이 되었나 보다. 내가 대학 들어갈 때, 대학에 있을 때와 너무 많이 변했다. 그 둘이 내가 50대로 보인단다. 그냥 하는 말일지라도 기분이 좋다. 백운대에 조심해 가라고 하고 대동문으로 향했다. 눈비돌은 이미 대성문에 도착했단다.
주능선 제단 뒤에서 사진을 찍은 후 내려오는데 또 젊은이들이 백운대 가는 길을 묻는다. 도전하는 젊은 그들이 부럽고 그런 그들을 응원한다. 눈비돌은 보국문에 닿았고 바로 계곡으로 가겠단다. 대동문에서 내려가려다 600미터만 가면 보국문이라 마저 걷기로 했다. 하늘엔 옅은 구름이 끼어 시야가 좋지 않다. 사진을 찍을 때 보이는 화면이 무척 선명하다. 전에 쓰던 플립4보다 카메라가 더 고성능인가 보다. 플립4는 손주가 달라고 해서 그러마고 했다. 이제 초등 1학년인데 요즘은 애들이 워낙 빠르게 성장을 하니....
칼바위 삼거리와 전망 성벽을 지나 보국문에 도착해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바로 계곡으로 내려섰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산에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보국문갈림길의 커다란 계단 돌들을 멧돼지인지가 뒤집고 돌려 놓았다. 북한산에서 개와 고양이, 멧돼지를 추방했으면 좋겠다. 아침에 폭포 아래 철다리를 걷는데 아미타사 아래에서 개들이 영역다툼을 하는지 무척 크게 짖고 울어대는 통에 소리 지를 뻔 했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의 커다란 소에 맑은 물이 가득하고 많은 이들이 둘러 앉아 있다. 물바닥에 낙엽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눈비돌이 내려가다 얘기한 곳인가 보다. 조금 더 내려가 늘 가는 장소에 도착했다. 눈비돌은 위의 너른 바위에서 다리를 뻗고 쉬고 있었다.
배낭에서 먹거리들을 꺼내 놓고 반바지만 벗은 채 물로 들어갔다. 종아리 까지 들어갔는데 다리가 저리다. 귀에 이어폰이 그냥 있다고 말해줘서 옆 바위 위에 놓고 다시 들어갔다. 온 몸이 저리다. 1분도 못 있겠다. 얼른 온몸을 담갔다 나와 머리는 따로 감았다. 물은 많지 않은데 왜 이리 차갑지? 순식간에 더위가 사라졌다. 물에서 나와 자리에 앉은려는데 쿠션이 없다. 지난주에 빼었다 다시 넣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 치매는 아니라는데 자꾸 잊어서 큰일이다.
배낭에서 꺼낸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도 고팠고 목도 말랐으니 얼음, 맥주, 술, 안주, 햄버거, 과일,김밥, 오렌지착즙이 모자랐다. 빈 속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알딸딸 해졌다.
온몸을 물속에 담궜다 나온 덕에 땀냄새는 사라졌지만 옷은 젖은 상태다. 땀에 젖은 것 보다 훨씬 기분 좋은 축축함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함을 배가 시켜준다. 그렇게 역사관 앞에 내려와 조은네 님께 전화하니 역사관에 다 왔단다. 눈비돌과는 아주 오랫만에 만나는 것이다. 한참을 얘기하다 술이 없어 한 잔 나누지도 못하다 수도권산악회 사람들이 도착한 바람에 헤어져 큰길로 내려와 얼마전에 새로 생긴 북한산빈대떡에 들려 막걸리 세 병을 나눠 마시고 연신내에서 헤어져 집으로....
찬물에 다시 샤워를 하고 저녁상을 차렸는데 집에 막걸리가 없다. 대신 포도주를 뜯어 놓고 두 번인가 마시다 눈을 뜨니 자정이 가깝다. 대충 상을 치우고 침대로 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하지만 개운하다. 나이가 들어도 땀은 흘려야 한다. 북한산빈대떡에서 먹은 고기빈대떡(16처넌)이 맛있다. 다음에 또 들려야겠다.
오랫만에 전화해서 산에서 보자는 눈비돌에게 대피소갈림길 위 계곡의 알탕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더운날 물속을 들락거리려면 준비할 것들이 있다. 음료와 먹거리, 수건과 갈아 입을 옷들이 필요하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하늘이 찌푸둥하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은 없다. 밥을 해 먹고 배낭을 꾸렸다. 보온병에 얼음을 채우고, 맥주 한 캔, 수박 한 그릇, 600mm 물, 찐 알밤 한 봉지, 육포, 빈 200미리 짐빔 병을 가득 채우고 갈아 입을 옷도 넣었다. 짐이 많아 스틱은 밖에 달았다. 배낭이 묵직하다. 이러면 산길을 걷기 힘들지만 일단 알탕 장소까지만 가면 되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낭이 무거워 허리벨트를 골반에 걸으니 다리가 무겁단다.
모바일폰을 사흘 전에 S26으로 바꿨다. 4년을 쓴 플립4의 힌지부분 화면이 깍은 손톱만큼 까맣게 된데다 삼성전자에서 20%의 온누리상품권을 준다고 해서였다. 폰을 바꾸니 변경할 것들이 많다. 자동이체 하던 것들, 각종 앱의 설정들을 바꾸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런데도 아직 변경하거나 새로 설정할 것들이 더 있다. 핸드폰이 길어지고 얇아졌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 주머니 속이 불편하다. 화면은 작아졌지만 글자 크기를 키우니 불편하지는 않다. 이제 앞으로 최소 2년은 이것과 지내야 한다. 집을 나와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데 핸펀과 묻고 답하고 설정하느라 멈칫거렸다. 당분간은 새 앱을 쓸 때마다 이럴 것이다.
이른 시간인데 눈비돌이 전화를 했다. 벌써 집을 나왔단다. 보국문에서 만나곤 했는데 상황을 보며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내가 산으로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각자 걷고 알탕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요 며칠 많이는 아니지만 비가 내리기는 했으니 물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배낭이 존재감을 은근히 알려준다. 평지는 괜찮지만 오르막에선 부담이 될 듯했다.
탐방지원쎈터를 지나 계곡 앞에 섰는데 조용하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계곡이 말랐다. 계곡바닥은 짙은 물이끼가 덮고 있다. 그래도 숲이라 기온은 높지 않아 아직은 견딜만 하다. 서암사 옆 데크계단을 오르고 폭포 옆의 철계단을 오르고 나니 앞가슴이 젖어 들었다. 최근에 새로 터득한 오르막 걷기 기술이 조금씩 먹히는 듯해 기분이 좋다. 호흡법도 크게 내쉬는 것으로 바꿔야 하는데 아직 익숙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역사관이 가까워질수록 옷이 더 많이 젖어 온다.
젊을 때는 배낭을 어깨로만 지고 날랐다. 이제는 어깨로는 못한다. 허리로 해야한다. 진작에 골반에 걸고 걸었다면 더 무거운 짐도 견뎠을 것이다. 흐르는 땀에 안경이 걸리적 거리고 시야도 흐려져 벗었다. 발밑이 뿌옇다. 눈비돌이 계속 전화하여 위치를 알린다. 내가 많이 늦었으니 주능선에서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역사관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어폰을 끼고 일어섰는데 안 들린다. 폰을 바꿨으니 불루투스를 다시 연결해야 했다. 이젠 남들 신경 쓰지 않고 걷기로 다짐했지만 앞에 누가 있으면 쫓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못된 버릇인데 고쳐지질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추월 당하면 그러려니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죽어라 쫓아갔는데, 이젠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대피소 삼거리에 가까워지며 삼거리 백여 미터 위의 알탕 장소로 가려다 너무 짧고 시간도 이른 것 같아 일단 대피소로 가기로 했다. 중흥사 앞 계곡을 건너 봉성암 갈림길 삼거리에서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손수건을 적셨다. 안경이 없어 뿌옇던 시야가 그새 적응을 했고 이제 이 길들은 돌 하나까지 기억하니 다리만 버텨주면 된다. 역시 오름길에서 무거운 배낭은 버겁다. 그래도 앞서 올르던 이들이 데크계단 위에서 쉬고 있는 사이에 지나쳤다. 생각해봐도 70이 넘은 내가 대단하다. 대피소에 도착해 쉬다 떠나려는데 그들이 올라왔다. 모두 위의 대피소건물로 향했는데 그들 제일 뒤의 두 명이 내쪽으로 왔다. 고3이고 이제 마지막 시험만 남았단다. 아직 여름방학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학입학은 수시에서 대부분 확정이 되었나 보다. 내가 대학 들어갈 때, 대학에 있을 때와 너무 많이 변했다. 그 둘이 내가 50대로 보인단다. 그냥 하는 말일지라도 기분이 좋다. 백운대에 조심해 가라고 하고 대동문으로 향했다. 눈비돌은 이미 대성문에 도착했단다.
주능선 제단 뒤에서 사진을 찍은 후 내려오는데 또 젊은이들이 백운대 가는 길을 묻는다. 도전하는 젊은 그들이 부럽고 그런 그들을 응원한다. 눈비돌은 보국문에 닿았고 바로 계곡으로 가겠단다. 대동문에서 내려가려다 600미터만 가면 보국문이라 마저 걷기로 했다. 하늘엔 옅은 구름이 끼어 시야가 좋지 않다. 사진을 찍을 때 보이는 화면이 무척 선명하다. 전에 쓰던 플립4보다 카메라가 더 고성능인가 보다. 플립4는 손주가 달라고 해서 그러마고 했다. 이제 초등 1학년인데 요즘은 애들이 워낙 빠르게 성장을 하니....
칼바위 삼거리와 전망 성벽을 지나 보국문에 도착해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바로 계곡으로 내려섰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산에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보국문갈림길의 커다란 계단 돌들을 멧돼지인지가 뒤집고 돌려 놓았다. 북한산에서 개와 고양이, 멧돼지를 추방했으면 좋겠다. 아침에 폭포 아래 철다리를 걷는데 아미타사 아래에서 개들이 영역다툼을 하는지 무척 크게 짖고 울어대는 통에 소리 지를 뻔 했다.
행궁지 갈림길 아래의 커다란 소에 맑은 물이 가득하고 많은 이들이 둘러 앉아 있다. 물바닥에 낙엽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들어가고 싶을 정도다. 눈비돌이 내려가다 얘기한 곳인가 보다. 조금 더 내려가 늘 가는 장소에 도착했다. 눈비돌은 위의 너른 바위에서 다리를 뻗고 쉬고 있었다.
배낭에서 먹거리들을 꺼내 놓고 반바지만 벗은 채 물로 들어갔다. 종아리 까지 들어갔는데 다리가 저리다. 귀에 이어폰이 그냥 있다고 말해줘서 옆 바위 위에 놓고 다시 들어갔다. 온 몸이 저리다. 1분도 못 있겠다. 얼른 온몸을 담갔다 나와 머리는 따로 감았다. 물은 많지 않은데 왜 이리 차갑지? 순식간에 더위가 사라졌다. 물에서 나와 자리에 앉은려는데 쿠션이 없다. 지난주에 빼었다 다시 넣지 않았다. 보건소에서 검사 결과 치매는 아니라는데 자꾸 잊어서 큰일이다.
배낭에서 꺼낸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도 고팠고 목도 말랐으니 얼음, 맥주, 술, 안주, 햄버거, 과일,김밥, 오렌지착즙이 모자랐다. 빈 속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알딸딸 해졌다.
온몸을 물속에 담궜다 나온 덕에 땀냄새는 사라졌지만 옷은 젖은 상태다. 땀에 젖은 것 보다 훨씬 기분 좋은 축축함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함을 배가 시켜준다. 그렇게 역사관 앞에 내려와 조은네 님께 전화하니 역사관에 다 왔단다. 눈비돌과는 아주 오랫만에 만나는 것이다. 한참을 얘기하다 술이 없어 한 잔 나누지도 못하다 수도권산악회 사람들이 도착한 바람에 헤어져 큰길로 내려와 얼마전에 새로 생긴 북한산빈대떡에 들려 막걸리 세 병을 나눠 마시고 연신내에서 헤어져 집으로....
찬물에 다시 샤워를 하고 저녁상을 차렸는데 집에 막걸리가 없다. 대신 포도주를 뜯어 놓고 두 번인가 마시다 눈을 뜨니 자정이 가깝다. 대충 상을 치우고 침대로 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하지만 개운하다. 나이가 들어도 땀은 흘려야 한다. 북한산빈대떡에서 먹은 고기빈대떡(16처넌)이 맛있다. 다음에 또 들려야겠다.
수문자리의 계곡. 물이 말랐다.

폭포에도 물이 말랐다.

역사관 앞 데크 가장자리는 늘 바위꾼들 차지다.

중성문 아래 계곡. 이곳을 지나며 늘 언젠가는 이 물가에 자리 잡고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발로 옛길에 오르면 나월봉이 보이는데 오늘은 구름 때문에 뿌옇다.

산영루

용학사 옆길

다 젖고 나서야 대피소에 올랐다.

대피소 아래 광장이 풀로 덮여 호랑이가 나올 듯하다.

동장대로 가는 성곽길

대동문 위 제단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대동문. 여기서 내려가면 9.8키로를 걷는 것이라 보국문으로 갔다.

칼바위로 가는 갈림길

칼바위와 형제봉

보국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이는 문수봉


보국문

경리청상창지 옆길

다 왔다.

눈비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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