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7.11 백운동계곡 알탕, 안경을 잃어서....

PAROM 2026. 7. 12. 15:31

장마 한 가운데인데 오늘은 비 소식이 없다. 솔직히 오늘 아침부터 비가 오기를 바랐다. 난 늘 실제와 어긋나는 기대를 한다. 몸이 이상한 것인지 내가 무리를 한 것인지 요사이 아침에 헬스장에서 돌아오면 늘 퍼졌다. 하여 오늘은 장마를 핑게로 알탕만 하고 오고 싶어 비를 기대했었다. 허나 기대와 달리 비 예보가 없고 새벽하늘은 밝다.  
 
어제 저녁에 한 전기밥솥에 남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배낭을 꾸렸다. 매년 한 번씩은 하는 제낌을 오늘 하기로 전날부터 마음 먹었다. 알탕만 하고 오려면 그래도 그럴듯한 준비는 해야 되겠다 싶어 이것저것 쟁여 넣었다. 말리부 2백 미리 짜리, 5백 미리 캔, 얼음 한 통, 6백 미리 물, 과일, 샌드위치, 육포, 수건과 옷 .... 종류로만 보면 1박 캠핑을 가는 것 같다. 
 
아내 도움 없이 산에 가는 것이 타성에 젖었는지 이젠 게으름이 생겨 집을 늦게 나왔다. 덕분에 탄현역 까지 죽어라 뛰었다. 역 앞 전광판을 보니 열차는 금릉에 있다. 시간을 봤으면 숨이 턱에 닿지는 않았을 터였다. 플랫폼에서 땀을 닦으려는데 손수건이 없다. 집에서 흘린 것이 분명하다. 배낭 속에 있는 큰 수건에 기대기로 하고 마음을 달랬다. 정말 요즘 왜 자꾸 금방  앞의 일을 잊는지.... 치매의 전조증상인가? 
 
버스에서 제일 먼저 내려 앞장 서서 계곡으로 향했다. 손수건이 없으니 이 덥고 푹한 기온에 나올 땀을 닦아낼 걱정이 앞선다. 지난주에 내렸던 비 덕분에 계곡입구에서 시원한 계곡물이 몰려들어 환영해 준다. 그런데 시끄럽다. 지난주엔 메말랐던 계곡이 물에 넘치며 생기가 가득하다. 매년 오는 장마가 반가운 이유 중 작은 하나다. 
 
막상 산에 들어오니 욕심이 생긴다. 오늘은 한동안 가지 않았던 행궁지와 남장대지능선을 걷고 싶다. 대신 먼저 대성문으로 가서 상원봉으로 가고 싶다. 시원한 물보라와 물소리에 쉽게 계곡을 걸어 역사관 앞에 도착했다. 쉽게 걸었어도 옷은 이미 물 아니 땀으로 다 젖었다. 데크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고 땀을 닦으려 안경을 벗어 의자에 놓았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앞서 떠난 바위꾼들 뒤를 쫓았다. 바위꾼들을 선암사 비탈에서 제치고 그 앞 사람들도 앞지르며 법용사를 지나는데 길이 흐릿하다. 어? 안경이 없다. 모자에 걸친 줄 알았는데.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오늘 같이 돌이 젖어있는 상황에선 남장대지능선길이 위험하다. 역사관 앞으로 되돌아 바삐 걸었다. 아니 뛰었다. 데크에 도착해 앉았던 의자 주변과 그 아래 계곡을 봤지만 흔적도 없다. 근시와 난시가 있는 싸구려 안경을 누가 가져갔지? 자기눈에 맞기라도 한다면 좋지만 그럴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잊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역사관에다 맡기지도 않았다. 기운이 빠진다.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더위에 땀이나 식히고 가야겠다 하고 걷는데 영 흥이 나지 않는다. 법용사 위에 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 바람에 힘이 두 배는 더 드는 듯하다. 
 
어서 가서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식히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올랐다. 흥이 없으니 힘만 더 든다. 억울한 기분이 떨쳐지지 않는다. 자기에게 쓸모 없는 물건에 왜 손을 대냐? 그냥 놔두면 주인이 찾아갈텐데.  그러고 보니 산에서 안경을 몇 번 줍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잃기는 겨울 동장대 옆 깊은 눈속에서 잃은 썬그라스와 오늘의 난시 안경 두 번이고 보거나 줏은 것은 여러 번인데 바닥에 놓인 안경은 집어서 나무나 바위에 올려 놓았었다.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벌을 받는 것인가? 
 
기분이 내려 앉으니 힘이 덩달아 없다. 상실감을 겨우겨우 견디며 걷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중흥사 아래 물 건너는 곳에서 발이 더 무거워졌다. 안경이 없으니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징검돌 까지 흔들린다. 게다가 젖은 돌을 딛고 미끄러지기 까지 한다. 더구나 흐르는 땀이 눈을 적시는데 손수건이 없으니 더더욱 죽을 맛이다. 
 
이제 그만 걸어야 할 것 같다. 문수봉과 남장대지는 다음에 걸어야겠다. 지난주에 눈비돌과 알탕을 했던 장소로 갔다. 물이 맑고 수량도 최적으로 보였다. 이끼가 잔뜩 덮힌 너른 바위 아래로 내려가 물속에서 납짝한 돌들을 줏어와 쉴 자리를 마련하고 바지만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또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이어폰을 빼어 바위에 두고 제대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시원하다. 지난주엔 다리가 저릴 정도로 차가웠는데 오늘을 기분 좋은 시원함이다. 
 
물에 발을 담그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한참을 보내다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내려오다가 역사관 앞 앉았던 자리를 다시 둘러봤는데 있을 리가 없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오는네 우울하다. 마치 신체 한 부분이 없어진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집으로 와서 배낭을 벗자마자 예원의 마춤돗수표를 들고 근처 안경점으로 달려 갔다. 월. 화요일 내리 새벽 4시에 안산에 가야 하는데 안경이 없으면 운전이 안 되므로.... 뿔테 1만 원, 렌즈 3만 원에 새로 맞췄다. 그런데 병원에서 해 준 돗수표가 실제 눈 상태와 다르단다. 안경점에서 해준 안경이 훨씬 더 잘 보인다. 이럴 수도 있구나. 
 
새 안경을 쓰고 집에 돌아와 빈 속에 마시다 남은 포도주로 얼큰해졌다.
핸드폰을 바꾸고 생긴 많은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뭔가 쫓기는 기분이다. 오늘 손수건을 챙기지 못해 벌어진 일들이다. 불안하고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고.... 이 모든 기분 나쁜 기운들이 어서 지나가길....

 

가자!

 

계곡 입구에 왔다. 원효봉을 묻고 답하던 이들이 화면에 다 있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계곡에 물이 넘치고 있다.

 

수량이 많으니 폭포가 근사하다.

 

폭포에 수량이 많다.

 

여기 앉아서 쉬다 안경을 두고 그냥 일어났다. 되돌아 갔을 때는 없었다. ㅠㅠ

 

중성문 아래 계곡. 수량이 많고 시원해 보여서 주저 앉고 싶었다.

 

중성문

 

나월봉이 오랫만에 보였다.

 

산영루

 

산영루 옆 와폭

 

대피소 갈림길 위 게곡에 숨어 있는 소에 도착했다.

 

찻길에서 의상봉으로 가는 길

 

다 내려왔다. 다시 더워졌다.

 

이 안경처방전은 내 눈 상황을 제대로 적지 못했단다. 새로 맞춘 안경이 더 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