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2.25 대성문 - 보국문

PAROM 2021. 12. 26. 11:50

올해의 마지막 토요일. 배낭에 넣은 물병이 얼을 정도로 엄청나게 추운 날이었다. 2007년 크리스마스에 울란바토르 체체궁산(2,256m)을 오르며 느꼈던 추위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그땐 산 아래에서 영하 37도 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그때도 눈썹과 모자, 마스크가 얼었고 물병이 완전히 얼었었다. 딱 14년 전의 일이었구나.
 
새벽에 깨어 날씨를 보니 기온이 영하 12도 인데 해 뜨기 직전엔 14도 까지 내려간다고 나왔다. 날이 너무 추우면 뜨거운 컵라면을 먹어도 젓가락질 하기가 힘이 든다.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이불속을 나오기 전에 방한을 위해 든든하게 입고 핫팩도 챙기기로 했다. 지난주엔 아들식구들이 집에 오고 일요일엔 친구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일찍인 목요일에 다녀왔으니 오늘은 산에 가야한다.
 
쉬는 날인데 나 때문에 일찍 일어난 아내가 날이 추우니 샌드위치 대신 컵라면을 먹으라고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놓았다. 낙타털 양말을 신고 기모가 있는 두꺼운 피엘라벤바지를 1년 만에 꺼내 입었다. 핫팩도 두 개를 배낭에 넣고 하나는 뜯어 주머니에 넣었다. 가장 열을  많이 뺏기는 머리엔 털달린 방한모를 쓰니 든든하다.  중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니 추운줄 모르겠다.  
 
집을 나선 시간이 7시 41분. 7분 후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뒤뚱거리며 탄현역까지 거의 뛰었다. 승차장에 내려가니 열차가 곧 도착했다. 열차에 탔는데 발이 시리다. 엄청 추웠는데 뛰느라 몰랐다. 등산화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열을 내보다 귀찮아 이내 그만 두었다. 
 
주말버스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데 온동네가 다 꽁꽁 언듯하다. 길엔 어디서 흘렀는지 모를 물이 도로를 꽉 채우며 얼어 있다.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대답해주고 탐방지원쎈터로 가는 데 발이 시려온다. 계곡으로 들어가니 어제 내린 눈이 길가에 발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물소리는 이미 차가워져 있다. 장갑을 잠시 벗었는데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핫팩을 꼭 쥐었다. 추워서 겉옷을 벗지도 못하고 역사관까지 올랐다. 
 
역사관 앞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스틱을 펴려다 손이 시려 그만 두고 물 한모금만 마시고 출발하는데 눈비돌에게서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보국문에서 보기로 하고 계산을 하니 행궁지로 돌아 갈 시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몸이 둔해서 그런지 대피소갈림길 아래까지 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곳까지는 길에 눈이 많지 않아 미끄럽지 않았는데 갈림길을 지나서부터는 길에 눈이 꽤 있어 발을 조심해 딛어야 했다. 산을 내려오는 이들 중엔 아이젠을 신은 이들도 많았다. 
 
보국문 갈림길을 지나며 갑자기 들린 인기척에 돌아보니 보이지 않던 여산객이다. 잡히지 않으려 부지런히 걷는데 간격이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 좀 멀어졌다 싶으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벙어리 장갑을 벗고 다시 끼고 하는 사이에 따라잡힌 것 같다. 
 
대성암을 지나 시간이 되는데도 대남문으로 가지 않고 대성문으로 가는데 아직도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도망가다 힘들어 죽겠다 싶다. 지름길로 간다고 가파른 낙엽길로 들어섰다가 미끄러지고 중심이 흐트러지고 하며 세 번이나 눈덮인 차가운 땅을 짚어야 했다. 옆길로 돌아서 오른 것보다 두세 배 더 힘이 들었다. 스틱을 썼으면 힘이 덜들었을 텐데.... 뒤에 바짝 따라 붙었던 산객은 대남문으로 향하고 있다. 어휴 살았다. 
 
대성문 앞 광장에 볕이 따스하게 내리고 있었다. 온몸이 편하다.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꺼냈는데 물이 많이 얼어 있다. 눈비돌이 전화해서 이제 보국문까지 1키로 남았단다. 여기선 6백 미터니 일찍 가면 추운데서 기다려야 한다. 따스한 이곳에서 좀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스틱을 펴려고 쇠에 손을 대니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한 마디를 펴고 핫팩으로 곱은 손을 녹이고 하는 식으로 하여 한참 걸려 스틱을 폈다.  
 
대성문을 돌아 능선으로 오르는데 바람이 분다. 너무 차가운 바람에 숨이 턱 막힌다. 두꺼운 벙어리 장갑 때문에 스틱을 잡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스틱에 의지해 얼어붙은 능선길을 걸어 내렸다. 내리막 계단길은 미끄러지기 쉽다. 더구나 눈이나 얼음이 덮였으면 더욱 그렇다. 길이 얼면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걸어야 조금 더 안전하다. 
 
길이 미끄러워 시간이 많이 걸린 탓에 눈비돌이 보국문에 1분 먼저 도착해 전화를 했다.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물을 마시려고 보니 물병의 물이 반쯤 얼었다. 이곳 고도가 6백 미터 쯤 될테니 영하 15도가 넘을 것이다. 추워서 어디 따스한 곳을 찾아 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을 내려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섰다. 계곡으로 내려오는 4백 미터의 길은 눈과 낙엽이 섞여 미끄럽기 짝이 없다. 스틱을 하나씩 나눠 쥐고 길을 내려왔다. 
 
추우니 몸이 잔뜩 움츠려들었다. 말도 많이 하기 싫다. 어디 뜨끈한 곳에 몸을 뉘고 싶은 생각에 부지런히 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쉼터에 들려 둘이 얼큰순두부와 치킨으로 막걸리 세 병을 비웠다. 물론 비상용으로 넣어간 고량주 플라스크도 함께 비워졌다. 
 
집으로 오는 길은 알코올 기운 덕분인지 그리 춥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몽둥이질을 당한 것 같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단다.
이불속에서 꼼짝 않고 싶은데 배가 고프다.

 

이제 산으로 가자

수암사 옆길. 절짐에서 피운 장작불 냄새가 구수했다.

계곡폭포. 간만에 폭포에 얼음이 있어 계절을 실감하게 했다.

중성문 아래 계곡. 눈이 덮인 길이 정감나고 부드럽다.

잎이 다 지고 나니 다리에서 정자가 보였다.

산영루

경리청상창지 앞길에서 보이는 풍경.

계곡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금위영이건기비 앞길

대성문 앞마당에서 볕이 반사되어 문 안이 밝다.

대성문

대성문 앞마당에서. 바람 한 점 없고 따스한 곳이었다. 추위에 얼굴이 부었다.

보현봉과 문수봉이 보인다.

삼각산.

앞의 주능선을 따라 걸으면 문수봉에 이르고 그곳을 지나면 남장대지능선이 이어진다. 다음에 걸을 길이다.

남쪽전망대에서 본 서울. 맑은 날인데도 맑지 않다.

북쪽전망대에서 보이는 삼각산

전망대에서 보국문으로 내려가는 길. 저 건너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지나던 산객에게 부탁해 기념사진 한 장. 추운 날 장갑을 벗게 해서 미안했고 고마웠다.

역사관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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