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또 다시 시작하는 새해의 첫날이다.
1.2에 이사하는 아들이 손주들을 맡긴다고 해서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산에 다녀와서 아이들을 봐도 될 것 같아 컵라면 하나와 커피 한 봉만 넣고 배낭을 꾸렸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기온을 보니 영하 12도란다. 낮엔 영상이지만 옷을 두껍게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대동문 위의 제단에서 절을 하며 올 한 해도 산에 다닐 수 있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고 싶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니다. 그저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뿐이다. 이제 자식들도 스스로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뭘 바란다고 되지도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못 만나던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마주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그리고 매년 다니던 배낭여행도 더 나이 들기 전에 가고 싶다. 터키, 조지아, 치앙마이, 바이칼호와 홉스굴 등등등.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도 다시 가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 소망이 어마무지하게 많구나.
평소 산에 가던 날 집을 나서던 시간 보다 늦게 나와 역으로 가니 열차가 바로 온다. 횡단보도 신호에 뛰지 않았으면 뒷차를 탈 뻔했다. 경의선과 3호선엔 승객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버스엔 등산객들로 자리가 꽉 찼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내려 산으로 들어가는데 발이 시리다. 벙어리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 끝이 시려와 주먹을 꼭 쥐었다. 계곡으로 오르는데 평소 보다 등산객이 적다. 오늘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올라간 사람들이 많지 않았나 보다.
숨도 차고 마스크에 물이 생겨 턱스크를 하고 산길을 올랐다. 계곡엔 이번 겨울들어 제일 많이 얼음이 얼었다. 중간중간 뚫린 숨구멍으로 들리는 물소리가 청아하고 상쾌하기 그지 없다. 그래 이런 소리들 때문에 더 좋다.
산길이 높아질수록 두껍게 입은 옷이 부대낀다. 어서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싶지만 귀찮아서 역사관까지 그냥 가기로 한다.
역사관에 도착하니 백운대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물 한모금 마시고 겉옷을 벗어 커버트가디건과 티셔츠 차림을 하고 스틱을 폈다. 대피소갈림길을 지나서 스틱을 펴려고 했는데 추운데 다시 배낭과 장갑을 벗고 차가운 쇠를 만지기 싫어서 들고 가더라도 쉬는 김에 편 것이다.
중성문을 지나 오르는데 산적 같은 3명이 내려오기에 바라보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엉겁결에 같이 인사를 하고 지나치며 생각하니 오늘이 새해 첫날이다. 온누리에 기쁨이 있으니 이를 누릴지어다.
산영루를 지나는데 눈비돌이 어디냐고 전화를 했다. 11시에 보국문에서 보기로 했으니 다른 곳에 갔다가 갈 여유가 없다. 쉬엄쉬엄 걷다가 급하게 오르려니 숨이 차고 발이 자꾸 돌뿌리를 걷어 찬다. 이럴 때 스틱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낙엽이 잔뜩 덮여 땅이 보이지 않는 길에선 더욱 그랬다. 헐레벌떡 보국문에 오르니 눈비돌이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한 잔 만들고 있는데 왔다. 일 때문에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왔다고 했다.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시고 대동문을 지나 성곽을 따라 제단이 있는 봉우리(나는 이 봉우리가 시단봉이라 생각했는데 지도에서 보니 아니었다)로 갔다. 그곳에 먼저 와서 제단에 배낭을 놓고 있던 산객이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낭에 들은 먹거리들을 다 꺼내 제단에 놓고 올해도 산에 올 수 있게 해 달라 절을 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니 날이 풀려서 제단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고 대피소를 지나 북한동으로 내려오다가 집에 전화를 하니 벌써 아들 식구들이 와 있단다. 오를 때 보이지 않던 산객들이 내려올 때는 많이 보였다. 특히 젊은 이들이. 이제 산에 오는 이들도 세대교체가 되었다. 뒷방 늙은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힘이 다시 난다. 손주들 보려면 쉼터에 들릴 수가 없다. 눈비돌은 쉬었다 가고 싶어하는데.... 다음에 해야겠다.
집에 와 손주들을 보니 보름전보다 훨씬 더 컸고 예뻐졌다. 이 녀석들 보는 재미가 엄청 크다.
새해 첫날, 단단히 차려 입고 산으로 간다.
계곡 얼음판 위에 숨구멍이 생겼다. 여기 흐르는 물소리의 청아함을 들어 보았는가?
물이 얼음에 구멍을 내고 잔신이 살아 있음을 소리쳐 외치고 있다. 이 계절에만 들을 수 있는 아우성을....
계곡폭포도 얼어 붙었다. 그러나 그 속으로는 물이 자신의 길을 내고 갈 길을 가고 있다.
역사관 앞에 눈부신 볕이 들기 시작했다.
법륜사 앞 계곡. 이제 더 추운 곳이니 계곡은 얼음으로 덮였다.
중성문 아래 계곡
중성문
산영루
산영루 앞 계곡 폭포가 얼었다. 이제 봄까지는 이 모습일 것이다.
경리청상창지 앞길
보국문
보국문 윗길에서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이 보이고 있다.
칼바위와 형제봉, 그 뒤로 백악과 인왕이 보인다
눈비돌과
대동문. 올해는 이 금줄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단 앞에서 보이는 삼각산
동장대
동장대 앞에서 보이는 문수봉
대피소
대피소와 봉성암 갈림길. 얼음이 징검다리를 덮을 기세다.
역사관 앞
다 왔다. 오늘은 많이 걷지 않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한 살 더 먹어서 그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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