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렇게 바람 쎈 날이 있냐!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을 뻔 했다. 입춘이 지났는데 너무한다. 정치판 같다.
지난주는 설 연휴로 토욜부터 5일을 쉬며 손주들 보는 재미와 고생을 같이 겪었는데 이제 아들이 일요일 마다 출근해야 해서 주말이면 안산으로 손주를 봐주러 갈 모양이다.
아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일을 하는 것과는 담을 쌓은 것으로 보여서 기술로 먹고 살게 해야겠다고 생각해 그 방향으로 진학하라고 했고 그렇게 됐다.
며느리는 아들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둘은 졸업 후 오랜시간이 지나 우연히 만났고 내가 결혼했던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아이가 둘이 되자 혼자서는 돌보기 힘들어 구원요청을 한 것이다.
산에 다녀온 얘기가 왜 여기로 왔냐?
전날, 오랫만의 치열한 주식 전쟁에서 피곤했는지 이불깃이 포근해 그랬는지 한 시간 늦게 일어났다. 서둘렀지만 절대적인 시간은 줄일 수 없었다. 결국 한 시간 늦게 집을 나왔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느라 한참 뒤에 오는 열차를 탔다. 그리고 환승열차마저도 평소보다 배는 오래 기다려 타게 되었고 그렇게 계속된 늦음이 산봉우리까지 이어졌다. 늦게 시작한 영향이 지연, 기다림, 힘듬, 더딤, 실망, 짜증을 유발하니 그러지 말아야겠다.
삼송역을 지나면 지하철은 땅 위로 오르고 지축역을 지나며 잠시 삼각산이 보인다. 눈을 돌리면 주능선이 이어지고 그 능선 끝 문수봉에서 뚝 떨어진 줄기가 비봉능선 되어 이어져 흐르다 멀리 사라진다. 어릴적의 기억과 여전히 같다.
지금은 변했지만 예전 삼송국민학교 신원분교였던 지금의 신원초등학교 운동장 자리에 내가 태어난 집이 있었으니 태어나 처음 본 산이 삼각산이었을 것이고 자라며 늘 본 산도 삼각산이었다. 내 작은 기억들 속에도 늘 삼각산이 배경에 있으니 분명 삼각산의 기를 받기는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북한산만 찾는 까닭일까? 그런데 왜 이야기가 등산과 다른 곳으로 자꾸 가냐?
다시 시작하며,
처음 집을 나설 때는 추운 줄 몰랐는데 산으로 들어가며 발가락부터 얼어옴을 느꼈다. 주머니에 넣지 못한 손목에 찬바람이 느껴져 더 깊이 넣으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이번 겨울은 핫팩이 많이 지켜주고 있다. 계곡에 들 때마다 들리던 물소리가 안 난다. 계곡을 오르는 내내 새소리조차 없는 적막이 찬바람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물이 줄어 들어 허기진 계곡엔 눈 덮인 얼음이 졸졸 흐르는 물을 억누르고 있었다.
어제 친구가 보여준 눈꽃사진이 좋아서 오늘 나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풍광은 하루 차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산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니 다음에 우연히 보면 된다 위로하며 욕심을 접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길을 걷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걸었다. 북한산 백운동계곡은 친근한 곳이고 넋이 나가야 좋은 곳이다. 어릴때의 나에게 천렵할 물고기를 키워주는 산이었고 소망을 몰래 듣고 들어주는 신앙과도 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릴적의 경외감, 신비함과 두려움이 왜, 어디로, 언제 갔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일까? 이젠 경쟁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산속에 들어 신선이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난주에 많이 걸어 힘들었던 탓에 조금만 걷기로 했다. 집에 오면 바로 아들에게 가자던 아내의 말에 하산의 기쁨 중 가장 큰 것을 잃게 되어 기분도 예전만 못하다. 대피소에 힘들게 올랐지만 쉬지도 않고 동장대로 향했다. 좌우 계곡이 맞닿은 길에서 찬바람이 숨을 멎게 한다. 마스크가 얼어 서걱거린다. 추운데 모자는 왜 자꾸 귀를 밖으로 밀어내는지. 장갑을 낀 손이 자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 능선길을 걸었다.
그런 추위 속에서도 그늘진 길의 녹지 않은 눈을 밟는 재미, 사각거리는 소리, 푹신함을 즐겼다. 겨울엔 역시 눈을 밟아야 제격이다.
이계절 주능선의 양 옆은 극과 극이다. 남쪽과 달리 북사면은 눈세상이다. 보국문 앞에서 아이젠을 신고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계곡으로 내려섰다. 계곡으로 내려서면 거의 바람이 없는데 오늘은 능선과 별 차이 없이 바람이 계속 불었고 고목에선 곧 부러져 내릴듯한 소리가 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산속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니 열심히 내려와야 했다.
추워서 그냥 집으로 올까 했지만 배가 출출해서 역사관 계곡 건너 공원 정자에 들어가 배낭을 벗고 컵라면을 꺼내는데 손이 곧 곱아졌다. 녹차도 한 잔 만들어 마신 후 잘 익은 튀김우동면으로 더워진 속을 이끌고 자연산책로로 내려와 3시경에 집에 왔는데 일요일에 안산에 가잔다. 이런.... 그 좋아하는 쉼터에도 들리지 않고 달려왔는데.
정 박사와 같이 걷기로 한 다음주를 기대해야겠다.
계곡폭포도 얼었다. 그 위에 쌓인 눈이 아직 녹기 않았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본 계곡
중성문
산영루
대피소. 저 속에 들어가 쉬려다 추워서 그냥 통과하여 동장대로 향했다.
동장대로 가는 여유로운 산길
이 능선에 닿으면서부터 찬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동장대에 다 왔다.
동장대 앞에서
대동문
칼바위와 형제봉
오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국문. 더 위로 가고 싶은 생각이 거의 들지 않은 날이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눈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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