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12 행궁지 - 대피소, 김정도

PAROM 2022. 2. 13. 06:59

일기예보에 다음주 중간에 영하 10도인 날이 며칠 있지만 오늘은 바람도 없었고 봄기운을 받아 추운 것을 모르고 걸었는데 중국쪽에서 온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이 종일 뿌옇했었다. 산길을 걸으며 재채기도 많이 했는데 춥더라도 미세먼지가 없는 것이 좋다. 
 
오늘 정 박사와 같이 걷기로 한 날이었는데 발바닥을 다쳐 산에 못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니 모두 조심해야 한다.
약속이 없어졌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준비하고 그냥 산에 가면 될 일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배낭에 컵라면과 물, 레드향 한 알을 넣고 탄현역에서 7시 37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러 집을 나섰다. 아파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시간을 잘못 보는 바람에 너무 일찍 집에서 나왔다. 산에 가는 시간은 즐겁다. 배낭을 멘 산객이 보이면 더욱 흥이 나고 저사람은 어디로 갈까하고 궁금해진다. 즐거운 마음이어서 그런지 환승도 바로바로 이어져 일찍 산에 도착했다. 산아래 동네 가게들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가게들에는 적어도 서너 시간은 지나야 손님들이 들 것이다. 
 
계곡에 들어 조금 걸으니 땀이 난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켑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고무로 덮은 나무계단, 돌계단, 철계단, 흙길이 이어진 계곡길들을 걸었다.
계곡을 덮은 얼음 위에 숨구멍이 보였다. 그 사이로 물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은 지 산새들이 계속 지저귄다. 이어폰을 쓰지 않기 정말 잘했다.  
 
요즈음은 산길을 걸으며 발자욱을 센다. 백까지 세고 다시 세기를 되풀이한다. 그 덕분인지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오늘도 그랬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은 줄어 있다.  
 
역사관 앞에서 쉬며 커버트가디건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참 오랫만에 티셔츠 하나만 입고 걸으니 처음엔 한기가 느껴졌고 해가 높아진 후에야 괜찮아졌다.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산에 와서 그런지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적어 마스크를 한쪽 귀에다가만 걸고 걸었다. 여유롭게 걷자고 다짐을 하지만 인기척이 나면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이제는 추월 당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러면 내가 몇 살인가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 오르는데 짙은 노란색의 기다란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이 계곡을 건너 바위 사이를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족제비다. 참 오랫만에 보는 귀한 놈이다. 몇 번 모습을 보이던 녀석은 이내 바위 사이로 사라졌다.  
 
조용한 깊은 산속에서 전화기가 노래를 한다. 김정도 회장이 어디냐며 묻는다. 대남문 쯤에서 보기로 하고 행궁지로 발길을 옮겼다. 행궁지를 지나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올랐다. 이 계단을 다 오른 후 8곳의 큰 장애물을 지나면 가파른 바위길이 나온다.  이 바윗길은 손까지 써야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오늘 같이 바위에 눈과 얼음이 덮여 있으면 더 조심해야 한다. 
 
티셔츠를 다 적시고 나서 남장대지능선 끝자락에 올랐다. 기분 좋은 길이 한동안 이어진 후 조금 더 오르면 전망이 트이고 삼각산부터 뻗은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 청송대에 이른다. 조금 더 오르면 남장대지가 나오고 바위길을 돌면 시야가 넓어지며 의상능선이 발아래 펼쳐진다. 그 의상능선 너머로 우리동네가 있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상원봉에서 성곽을 따라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에 올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구기동에서 이제 산에 들었단다.  대남문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산길을 더 걷기로 하고 대남문 앞에서 아이젠을 하고 아랫길로 대성문으로 가 아이젠을 벗고 대신 스틱을 펴서 짚으며 보국문으로 향했다. 보국문을 지나 대동문을 향해 가다 통화를 하니 친구는 이제 대남문에 도착했고 문수봉에 오른 후 의상능선이나 남장대지능선으로  갈 것이고 그 아래 큰 길에서 보자고 한다. 내가 대피소로 가서 내려가면 남은 거리가 비슷해지지만 나는 내리막길이고 친구는 봉우리를 두세 개 올랐다 내려와야 한다.

천천히 걸어 대동문과 동장대가 있는 시단봉을 지났는데 갑자기 허기가 진다. 혼자서 뭘 먹기도 뭣해서 대피소도 그냥 지나 계곡으로 내려섰다. 스틱에 의지해 내려오다가 낙엽이 덮인 곳에서 미끄러져 발목이 꺾일뻔 했다. 다음부턴 넘어진 곳을 피해야겠다.
봉성암과 대피소로 가는 길이 갈리는 계곡은 한참 전부터 얼음으로 덮였는데 오늘은 얼음길이 더 늘어난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계곡을 건너려고 얼음판에 발을 디딘 순간 앞에 가던 젊은이들 셋 중 뒷사람이 꽈당한다. 웃음이 바로 나왔지만 남 일이 아니라 발끝과 스틱에 더욱 힘을 주게 되었다. 
 
무사히 큰길로 내려와 용학사 아래 부황사 갈림길에서 친구를 기다리려다가 편한 곳에서 쉬며 기다리려고 길을 계속 내려와 역사관 건너 식물공원 안 벤치에서 배낭을 벗었다. 배는 고픈데 혼자 컵라면을 먹기 뭣해서 커피를 한 잔 타 마시고 초코렛과 양갱, 귤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빈 속에 먹은 귤이 정말 달고 시원하고 상쾌하게 맛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부암동암문에서 산을 내려온 김 회장을 만나서 자연산책로로 내려와 두부집에서 뒷풀이를 하고 구파발로 오는데 친구가 전화기를 식당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어 김 회장은 다시 산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집에 와서 샤워하고 막걸리 한 잔을 했는데 순식간에 피곤이 몰려와 바로 쓰러져.... 새벽 한 시에 깨어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 하늘이 온통 먼지에 휩싸였다.

수문터에서 본 원효봉. 계곡엔 얼음이 흔적을 군데군데 남기고 있다.

윗쪽 계곡엔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폭포에도 아직 겨울이 있다. 해가 낮아 눈이 부셨다.

역사관 앞. 아직 사람들이 드물게 다닌다.

산영루

행궁지로 오르는 따스한 길에 파릇한 풀이 돋았다.

가파른 바윗길을 넘어섰다.

가파른 바윗길 위는 아직 눈이 그대로다.

능선을 오르기 전 막바지 바위에서 삼각산을 배경으로

삼각산에서 주능선이 남쪽으로 달리고 있다. 산 넘어 동네는 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남장대지능선에 오르면 처음 만나게 되는 의자소나무

이 여유롭고 한갖지고 평온한 길이 너무 짧아 아쉽다.

청송대에서 본 주능선의 파노라마 사진

남장대지를 지나 바로 마주치는 발아래 의상능선의 풍경

상원봉에 서면 왼쪽의 의상능선부터 원효, 염초,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성곽을 따라 청수동암문으로 가다 보이는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내려서는 암릉길. 오른쪽에 희미하게 쇠난간이 보인다.

성곽길에서 본 비봉능선

청수동암문 앞 암벽 사이로 보이는 구파발

문수봉에서 보는 구기동계곡

대남문. 오늘은 대남문에서 성곽길을 버리고 아이젠을 신고 아랫길로 돌아 대성문으로 갔다.

대성문

보현봉과 문수봉

형제봉이 미세먼지 속에 외롭다

전망대 꼭대기에서 본 보현봉과 문수봉

전망대에서 보이는 지나온 길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었다.

삼각산. 소나무 아래로 보이는 모습이 참 좋아 늘 여기에 오면 이 사진을 찍게 된다.

칼바위와 형제봉

동장대. 오늘은 따스해서 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친 이들이 많았다.

북한산대피소. 오늘은 그냥 통과

스틱이나 아이젠이 없는 이들에겐 공포의 장소다. 내 앞의 젊은이가 엉덩방아를 크게 찧은 곳.

다 내려왔다. 하늘이 아침보다 조금은 맑아졌다.

역사관 앞 공원에서 만난 김정도 회장과

두부집에서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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