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17 대피소 - 보국문

PAROM 2022. 2. 17. 16:59
산에서 추위에 떨다 내려와 쉼터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있으려니 볕에 쬐이는 왼쪽이 너무 뜨겁다. 쉼터에 자주 들린다는 승근이는 산에 다니는 것은 보인다는데 주말에만 들리는가 보다.
산속에서 3시간이 넘는 동안 물 한 모금만 마시고 너무 추워서 아무 것도 못 먹었고 산을 한 바퀴 돌아 산영루로 내려올 때까지 7명(여 3, 남 4)을 스쳤다. 길에서 떨어져 쉬던 3명은 빼고. 내려오는 길에 산영루를 지나면서 부터 등산객들이 늘어나 계곡 입구에 달할 때까지 30명(여자 10, 남자 20)을 더 지나쳤는데 북한산에 온 이래 이리 산객들이 적은 적은 없었다. 
 
주말에 아들이 친구 집들이에 간다고 손주를 데리고 올테니 봐 달란다.해야지 어쩌겠냐? 내가 오히려 보겠다고 할 판인데. 오늘이 헬스장을 하루 제끼는 날이니 미리 산에 가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일어나기 전에 산에 갈 거냐고 다시 확인한다. 컵라면을 가져가겠다고 하니 과일도 주냐고 묻는다. 오늘 날이 춥다고 예보가 되었어서 됐다고 했다. 우리 동네의 오늘 아침 5시 기온이 영하 10도였다. 산은 더 춥다. 내가 가는 길은 북사면이고 가끔 바람도 쎄다. 이틀 전엔 동네에 눈이 왔으니 산에 쌓였을 것이었다. 
 
7시 25분에 출근하는 아내를 보내고 오랫만에 작은 맨티스배낭을 챙겨 집을 나섰다. 몇 주간 주말마다 길게 산길을 걸었고 주중엔 운동 중인 상태니 많이 걸으면 외려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짧게 걷기로 했다. 금요일인 내일이 근력운동을 하는 날이라 더욱 오늘 산에 올 생각을 했다. 특히 토요일에 집에 올 손주와 놀기 위해서. 
 
출근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해 대화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최소 20분을 넘게 기다려야 버스가 도착한단다. 탄현역으로 갔다. 오는 열차는 서울역으로 가는 4량짜리다. 역시 예상과 같이 만원이다. 다음 차를 타려고 했지만 너무 추웠다. 출근하는 분들에게 참 미안했다. 다음엔 시간을 바꿔야겠다. 
 
구파발역에서 앞 열차 때문에 대기를 한참 했는데도 산에 일찍 왔다. 주말버스가 없는 평일이니 송추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배낭을 멘 이는 나 뿐이다. 빈자리가 많았던 것으로 변명을 대신 한다. 평일인 오늘도 산아래 동네로 출근하는 분들이 많다. 요즘은 등산객이 아니어도 찾아 오는 분들이 많단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 내 앞에 아무도 없다. 여기가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발이 시려왔는데 이젠 온 몸에 한기가 스며 든다. 오늘은 양말을 두 개를 신었는데도. 다행스럽게도 지난주와 같이 차갑고 센 바람은 없다. 그런데 길에 눈이 딱 미끄러져 자빠지게 쌓였다. 이틀 전에 온 눈 때문이리라. 그런데 산새, 너는 왜 자꾸 이리 구슬피 우니? 
 
수구정화장실을 지나 계단 위에서 완전무장한 아주머니 한 분을 지나친 후에는 빈 길이다. 계곡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인지 얼음이 단단해 보였고 숨구멍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물은 여전히 얼음 아래를 소리쳐 흘렀다. 역사관으로 오르는 길 끝의 돌계단에서 내려오는 남자를 마주쳤다. 산에서 만난 두 번째 사람이다.
역사관 앞에서 배낭을 벗고 켑자켓을 벗어 넣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땀을 흘려야 되니까. 그런데 매우 춥다. 커버트가디건이 바람구멍이 커서 그런 것인지, 원체 날이 추워 그런 것인지. 
 
역사관 앞 데크에서 배낭을 벗은 사이 스타렉스 두 대가 지나 갔고 한 쌍이 올라와 시간을 끌다 내게 추월 당했다. 그 팀은 백운대 길을 살피다가 내가 가는 길로 바꾼다. 법용사 아래 데크길에서 앞에 가던 남자 분을 앞질렀다. 이제 길이 텅 비었다. 왜 그랬지? 춥고 일러서? 이런 적 없는데....
중흥사 앞에서 태고사를 지나 대피소로 가는 봉성암 갈림길 계곡에 처음 보는 자일이 가로 질러 있다. 보니 비탈진 얼음판 때문에 국립공원공단에서 설치한 것 같다. 아이젠이 있어도 자일을 잡아야 되겠다. 
 
지난 토요일에 내려오다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접질릴 뻔한 곳을 지나 올랐다. 역시 미끄럽다. 그러나 오를 땐 넘어지지 않을테니.... 이제까지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 대피소에 헐레벌떡 올랐다. 그런데 땀이 잔뜩 났지만 아직도 매우 춥다.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면 바로 동태가 될 것 같다. 아쉽지만 쉬지 말고 대동문으로 향해야지. 혹시 좋은 일이 있을 지? 어림 없는 일이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이 있었다. 여섯 번 째. 남자. 
 
길에 내려 쌓인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들었는가? 여러번 밟은 눈은 "뽁. 뽀복"한다. 밟지 않은 눈은 "뽀드득. 뽀드득"한다. 참 듣기 좋은 소린데 듣기 쉽지 않아 아쉽다. 오늘 소리 나는, 남이 밟지 않은 길을 원 없이 걸었다. 
 
텅 빈 대동문은 어색했다. 이런 곳이 아닌데. 추위에 빨리 내려가려고 바로 보국문으로 향했다. 역시 산길엔 아무도 없다. 눈 밟는 소리만 나를 쫓아 온다. 그곳도 텅 비었다. 보국문 남쪽 한참 아래 붉은 색이 보여 성곽에서 자세히 보니 쉬고 있는 산객이다.
눈이 쌓였을 때 스틱과 아이젠을 하지 않고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은 엉덩이를 바닥에 맡긴 것과 같다. 나도 오늘 몇 번을 그럴 뻔 했다. 경리청상창지를 앞두고 혼자 오르는 여 산우를 봤다. 오늘 일곱 번 째 산 속에서 본 반가운 사람이다. 여기까지 자빠지지 않고 내려와 고맙다. 
 
백운동계곡길은 빙판으로 변한 곳이 많았다. 사실 이런 곳이 위험하다. 계속 빙판이면 항상 긴장하는데.... 여러 번을 미끄럼 타며 아이젠과 스틱 없이 산을 내려왔다. 잘했다는 것이 아니고 추우니까 귀찮아서 아이젠을 신지 않았다.
산영루를 지나며 부터 산객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해 계곡입구까지 30명을 지나치며 산을 내려왔다. 다들 추우니까 늦게 산에 왔나 보다. 
 
너무 추워  손이 얼었다. 이 상황에서 컵라면은 고역이다. 빨리 내려가는 것 만이 살 길이다.
내 말이 맞다. 시비 걸지 마라.ㅋㅋㅋ
이제 집에 가야지....

 

계곡폭포 바로 옆에서 본 얼어붙은 폭포

북한산역사관 앞. 텅~~

중성문으로 오르는 길도 텅~~

중성문을 지나 노적교로 가는 길. 억시 썰렁하다.

산영루도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외롭다.

대피소와 봉성암 갈림길 계곡이 얼음비탈로 변했다. 계곡에 걸린 자일이 아니었으면 많은 이들이 낭패를 봤을 거다. 고맙다.

대피소로 오르는 길에 눈이 그대로다.

대피소에 올랐다. 역시 아무도 없다. 오늘은 다 휴가냐?

동장대로 가는 길. 봄에 꽃이 피면 이 길은 화려한데....

대피소를 지나서 나오는 첫 안부. 바람이 여기서부터 불기 시작한다. 오늘은 고맙게도 약했다.

동장대 앞에서도 보현봉과 문수봉의 눈이 환하게 보인다. 역시 춥다.

해발 610미터. 시단봉의 동장대.

대동문 위의 제단에서 본 삼각산과 동장대

대동문으로 내려가다가 본 노원구

대동문. 오늘처럼 아무도 없기는 처음이다.

지나다니면서 늘 봐도 여기 경치 참 좋다. 오늘은 남산타워도 보였다.

오늘은 여기서 내려간다. 저 뒤에 희게 보이는 문수봉이 조금 아쉬울 듯하다.

보국문. 저 성곽을 따라 가고 싶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제 큰 산길로 나왔다. 산 입구까지 4.1키로 남았다.

게곡길이 빙판으로 변했다. 이게 평지면 모르지만 내리막이니 벌벌.............

경리청상창지를 지나며 보이는 삼각산군.

행궁지 갈림길 아래의 계곡길. 옆 계곡의 얼음이 길을 덮칠 기세다.

중성문.

역사관 위의 공원. 지난주에 저 뒤의 벤치에서 쉬었다.

역사관 앞. 사람이 많은 시간인데 역시 텅~~~

무사히 다 내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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