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새벽에 심부름으로 장에 자전거 타고 부추를 사러가는데 더웠다. 그리고 평소의 토요일처럼 같은 시간에 산에 오는데 더워서 시내버스에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다른 때와 다른 것은 오늘은 평일인데 지방선거일이라 임시공휴일이 된 것과 아내가 오늘 쉰다고 오이소바기를 담는다며 내게 부추심부름 시킨 것이다. 하지만 배낭에 넣는 것은 샌드위치와 과일 한 그릇으로 매번 같다. 새로 산 브리즈25 배낭을 메고 나올까 하다가 여름이면 늘 사용하는 멘티스26에 먹거리를 넣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텅빈 주말버스가 바로 뒤에 왔는데 만원인 704번을 굳이 타는 이들을 말려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나야 널널하게 산에 오니 좋긴 하지만 같이 누려야 더 좋다. 모두 바쁜 이때 잠시 멈추고 한번쯤은 돌아 보는 시간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계곡으로 들어오니 녹음은 짙은데 건조하고 물소리가 없다. 게다가 벌써 덥다. 이제 6월이니 본격적인 여름인 것 같아 더 덥게 느껴진다. 계곡길을 따라 걷는데 뻐꾸기, 까마귀가 자주 운다. 딱다구리도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뻐꾸기는 처음엔 의상봉 쪽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원효봉에서 들리더니 뒤쪽에서 들려왔다. 무엇에 쫓겨서 그런건가 궁금했다. 덩치가 큰 뻐꾸기를 잡을 만큼 큰 맹금은 북한산에 없을텐데....
2주전엔 코로나 걸린 줄 알고 산에 오지 못했고 지난 토요일엔 아롬이와 구파발에서 부왕동암문을 넘어 다시 구파발까지 걷느라 싱겁게 했으니 오늘은 제대로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사흘 뒤에 다시 산에 올 생각이다. 생일이 있어 가족들 모두 모이지만 산친구들도 모인다고 하니 고민이다. 하필 그 많은 날 중에 이번 토요일이냐?
먼지가 폴폴 이는 길을 걸으며 허리가 아프지 않아 고마워하며 어느 길을 걸어야 멋지게 산길을 걸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냥 대피소로 올라가 백운대로 갈까 하다가 바위에서 밀리는 것이 싫었다. 대피소에서 보국문으로 내려오는 것도 내키지 않아 걷다보니 몸은 이미 대성암을 향하고 있다. 다른 때와 다르게 계곡에 시원한 바람이 연신 불어와 그리 더운줄 몰랐는데 등과 뒷춤은 진작에 물바다였다.
대성사를 지나 대성문으로 헐레벌떡 오르는데 대남문에서 내려오던 젊은이들이 뒤를 따라 오르다 잘못을 깨닫고 돌아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예쁘다. 나도 저런 풋풋하고 싱그러운 시절이 있었다. 40년도 더 전에.
대성문에 오르니 등에서 땀이 시냇물처럼 흐른다. 그래서 여름엔 물이 많이 필요한데 배낭엔 5와 3백짜리 물병만 있다. 아니 수박도 한 통 있구나. ㅎ~~ 성문 안 긴 통나무의자에서 땀을 식히고 위로 올라가 지붕 아래에서 다시 땀을 삭혔다. 급한 것 없고 중간을 짤랐으니 많이 쉬어도 일찍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급한 성격이 재미없게 있는 걸 그냥 두지 않는다.
성곽을 따라 오르니 익숙한 향기가 진하게 난다. 길가에 정향나무가 꽃을 잔뜩 피웠다. 대남문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온몸을 하얗게 밝히고 있다. 길을 걸으며 일일이 향기를 맡았다. 이제 지고나면 일 년 후에나 볼 수 있으니.... 그래도 제일 궁금한 것은 남장대지능선의 정향나무다.
대남문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을 네 발로 오르는 이가 있어 힘내라고 했다. 참 나, 젊어 보이는데 장난기가 보인다.
문수봉에 오르니 젊은이들 판이다. 앉고, 눕고... 사진을 찍느라 다들 분주하다. 그래, 남는 것은 사진이다. 훗날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 될 거다.
청수동암문과 상원봉을 지나 남장대지도 그냥 지났다. 내려오는 길은 모래투성이라 무척 미끄러워 조심해서 내려와야 했다. 밧줄을 잡고 내려와야 하는 길로 행궁지를 돌아내려와서 행궁지 옆 길 바윗가에서 점심을 먹고, 그 다음은 줄달음박질로 내려오는 일만 남는다. 임시 휴일이라 그런지 산악회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가족이다.
역사관에서 계곡길로 내려오다 보니 정말 비가 와야겠다. 물길이 끊긴 웅덩이는 퍼렇게 멍 들었다. 흐르는 좁은 물웅덩이에는 물고기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정치도 그렇고
전쟁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주식시장도 그렇고
다 맘에 안 든다.
쫌 좋게 좀 해라!
집을 나설 땐 늘 신이 난다.
폭포에 물이 말라 제일 아래에서만 쫄쫄 흘렀다.
이른 시간의 역사관 앞이다.
이제 산은 완연히 여름색을 품고 있다.
행궁지 삼거리를 지난 계곡으로 큰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금위영 야영지
대성문 지붕 아래에서 땀을 날리는 중이다.
대성문 기둥 사이로 보이는 서울
대성문에서 성곽을 따라 문수봉으로 가는 중이다.
정향나무가 꽃을 피웠다. 좋은 향기가 산길을 덮었다.
대남문에서 본 서울. 저기 어디에 광화문이 있고, 내가 일했던 자리도 있다.
구기동계곡
문수봉애 올랐으니 사진 한 장은 남겨야지.
문수봉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
발아래 비봉능선이....
상원봉에서 의상능선, 원효봉, 염초봉, 삼각산
오랫만에 집 옆의 제니스빌딩이 잘 보였다.
정향나무꽃은 주로 하얀데, 남장대지 옆 절벽에 핀 이 꽃은 보라색이었다. 꽃향기는 같았다.
요즘 산행에서 썬그라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확실히 길이 잘 보인다.
건너편 주능선에서 조금 벗어난 칼바위가 보이고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도 보인다.
행궁지 아래의 산딸기
수문자리에서 본 원효봉. 계곡이 바짝 말랐다.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 등산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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