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산길에 보고 싶었던 반가운 분을 중성문 아래에서 만났다. 올스탑대장. 50을 지났을텐데 아직도 리더를 하니 대단하다. 게다가 전에 봤을 때 보다 더 젊어지고 좋아진 것 같다. 단풍도 그렇고 산친구들이 만날 때 마다 더 다 좋아지는 것 같다. 나만 세월의 흐름을 탔나보다.
엊그제 새벽에 축구를 봤는데 응원한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했고 며칠 계속 죽을 쑤던 투자시장도 모처럼 반등을 해서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던 것은 전동치솔로 바꿔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약간 통증이 줄어들었다. 물론 아침운동을 할 때 근력운동 시 미는 동작은 한 단계를 낮춰서 하고 있다. 어서 완치가 되기를 바란다.
이젠 산에 오는 날의 일상은 판박이다. 아내가 물어보고, 간다고 답하고, 빵 굽고, 샌드위치 내용물 만들고, 과일 담아 놓고. 난 간다는 대답만 한다. 늘 무척 고맙지만 말 한마디 안 한다. 출근하면서 바쁜데 내 점심까지 챙겨 주는데도. 그래도 아내는 내가 고마워 한다는 것을 알거다.
지난주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 그런데 거의 없는 일이지만 열차가 5분 정도 연착이다. 덕분에 대곡역에서 열심히 뛰어야 했다.
궁금한 것이 사람들이 늘 뒤에 주말버스가 빈 차로 오는데 먼저 온 704번 만원버스를 타는 것이다. 심지어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은데. 덕분에 나는 텅 빈 차에 편하게 오니 좋긴 하지만....
계곡에 물이 많이 줄었다. 꽃도 병꽃과 이팝나무꽃만 띄엄띄엄 보인다. 게다가 새들도 봄날이라 다 소풍을 갔는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나뭇잎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여러 줄기 빛에 작은 날짐승들이 뒤엉켜 온세상을 헤집는 것이 보였다. 빛을 지나는 것이 두렵다. 저 것들이 코와 귀와 눈으로 들어 올 수 있으니.... 드디어 만물이 활동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싫지만 어쩌냐? 쟤네들도 살고 번식하려고 저러는 것을....
아주 오랫만에 다시 엉덩이 아래 쪽이 저림을 느꼈다. 척추관 신경이 눌림을 당했단 얘기인데 그동안 괜찮았는데 왜 그럴까? 특별히 변한 행동이 없었는데.... 계속 저리고 감각이 없어지면 내려가야 하는데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한 순간 불편한 느낌과 걱정이 사라졌다.
산영루를 지나도록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저 앞에 가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앞지르려고 다른 생각은 전혀 못했다. 역사관 앞부터 시작한 추격이 산영루 앞 비탈 끝에서 이뤄졌으나 기진맥진한데다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다시 사이가 잔뜩 벌어져 헐레벌떡 다시 죽어라 걸어야 했다. 그런데 결말이 너무 허무했다. 이분이 중흥사 앞의 큰 돌을 찍고 바로 되돌아 내려갔다. 난 한동안 멍 했다. 허탈했다. 이런 게 아닌데.... 이제 난 어디로 가나? 갑자기 큰 목표가 사라져 허망한 상황.
대피소로 가는 길과의 갈림길에서 직진을 했다. 행궁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 키로 더 돌 투성이 계곡을 올라야 한다. 힘이 드는지 발아래 돌들이 자꾸 이사 가는 느낌이다. 등산화가 너무 부드러워 돌을 꽉 잡아주지 못하는 탓이다. 집에 다른 등산화가 뭐뭐 있나 헤어 본다. 그 사이에 행궁지에 닿았다. 문이 열렸으면 가로지르려 했는데 굳게 닫혔다. 옆으로 돌아 오르는 가파른 흙모래길. 자꾸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을 무릎에 대고 꼬부랑 올라야 했다.
행궁지 옆을 빙 돌아 오르는 길의 끝에 자일이 걸린 짧은 오름이 있다. 이 길이 갈 때마다 자꾸 파여 나가는 느낌이다. 다른 길을 개척해야 하나? 아니면 국립공원공단에 말 해야 하나?
늘 그렇지만 힘들게 능선에 올랐다. 산 아래에선 정향나무꽃이 이미 졌는데 여긴 이제 움을 틔우고 있다. 다음주엔 향기를 온세상에 뿌릴 것 같다. 다음주에도 여길 와야 되나? 힘이 많이 들텐데.
남장대지능선이 북쪽에서 오는 바람을 가로 막는 형태라 늘 바람이 세다. 오늘도 능선에서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불었고 흐르는 땀이 차갑다고 느껴져 서둘러 바람을 피해야 했다. 그래도 경치는 이곳이 최고다. 의상능선 너머로 보이는 고양시는 내가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이라 더욱 보기 좋다.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불어 그런지 시야가 깨끗해 집 앞의 제니스가 오랫만에 훤히 보였다.
문수봉에 가서 증명사진을 찍고 엉덩이를 붙였다 가려고 했는데 산객들이 너무 많다. 처음 온 듯한 젊은친구들에게 삼각산을 배경으로 하라고 얘기하니 고맙단다. 그런데 이 친구들 절벽으로 너무 가까이 간다. 조심하라고 하고 대성문을 향해 능선의 성곽을 따라 걸었다. 성곽길에는 가끔씩 보이는 철 늦은 철죽, 이팝나무꽃, 병꽃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꽃보다 더 좋은 상쾌한 모습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싱그런 젊은 친구들이 자주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10여년 전 내가 재직 중에는 아니 퇴직 후 얼마 동안도 산은 퇴직자들 차지였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롬이도 산에 다니니 더더욱....
대성문을 지나면서는 보국문이나 대동문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뭔 바람이 불었는지 발길이 대피소까지 이어졌다. 대피소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오전이었다. 중흥사까지 빨리 걸은 때문인 것 같다. 대피소에서 배낭을 풀고 점심을 먹으며 보니 외국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방향표지판을 보고 안내판을 보는데 모두 두리번 거린다. 뭔가 잘못 됐다는 이야기다. 결국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백운대나 가기로 했던 곳으로 간다. 내가 보기에 이 산에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니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헛갈리게 표지판이 잘못된 방향으로 있다. 정방향이 아니라 뒤돌아 봐야 한다. 그러니 더 방향을 잡기 어려운 거다. 이건 고쳤으면 한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다가 멋진 일이 있었다. 가끔 산에 오는 친구들이 있어 혹시나 하고 지나치는 이들을 본다. 중성문 비탈을 내려왔는데 오르는 한무리의 산객들 속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혹시 실수할까봐 작게 "올스탑... " 하니 바로 돌아본다. 맞다. 우와 반갑다. 전 같으면 얼싸안았는데 악수만 했다. 어쩐지 오늘 겨울용 배낭을 메고 오고 싶더라니, 그속에 쟁여 놓은 낙타털양말이 있는데.... 마주치는 길이니 길게 얘기를 할 수도 없어 헤어지려는데 누군가를 불러 세운다. 서울이다. 그런데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특히 앞니 그것도 윗니가 빠졌다. 웃으며 인사하는데 유난히 눈에 띈다. 왜 그런 것만 보였지? 그래도 건강하게 산에 다니니 좋다.
반가운 분을 만나서 이후 산을 내려오는 것이 가쁜했다.
갑자기 산친구들이 보고 싶다. 같이 걸으며 옛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
산을 벗어나 집에 오는 길에 지난주에 붐볐던 육전 집을 지나치며 보니 텅~~~~ 이다. 이게 뭔 ?
세상 참 어렵다.
산으로 가자. 올 들어 처음 연두색 바람막이를 입었다.
계곡폭포에 물이 말랐다. 비가 많이 와야 계곡의 이끼들을 다 씻어 가는데....
역사관 앞. 등산객들이 참 많아졌다. 바위꾼들도 그렇고.
산영루. 여긴 완전히 여름이다.
능선 바로 아래 바위위에서 보이는 칼바위와 주능선
남장대지능선의 이 길이 참 편하고 좋다. 푹신하고....
내가 청송대라고 부르는 곳의 바로 아래 숨어 있는 철 지난 철죽.
청송대에서 보는 주능선
의상능선 너머로 펼쳐진 고양시. 오른쪽은 은평구다. 예전엔 여기도 다 고양군이었다.
상원봉에서. 전날 이발을 했더니 내 얼굴이 낯설다.
상원봉에도 병꽃 천지였다.
문수봉에서 보는 삼각산
비봉능선이 짧게 느껴진다.
오랫만에 서울시내가 많이 보였다. 내가 광화문에서 일할 때만 해도 관악산도 빤히 보였는데....
대남문이 숲에 묻혔다.
보현봉과 지나온 능선
남쪽전망대가 있는 봉우리. 저곳에서 내려가면 보국문이다.
전망대봉우리에서 본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남쪽전망대에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칼바위. 저 뒤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보인다.
늘 칼바위를 찍던 곳에 사람들이 많아서 비껴서 칼바위를 보았다.
동장대. 이제 대피소까지 800미터만 가면 된다.
동장대에서 보이는 문수봉과 남장대지능선
대피소. 저 앞에 많은 이들은 내가 가자 이동했다.
역사관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서....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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