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어제는 작은 손주의 첫돌이었다. 나는 지금 산에 가는 중이다.
지난달부터 무척 바빠졌다. 내겐 많은 돈으로 투자하고 있는 주식시장이 폭락을 거듭하여 많은 손실을 보고 있어 매일매일이 가슴 쓰린 날이 되었고, 세를 놓고 있는 가게가 장마에 물이 새는 바람에 마음이 편치 않고, 아파트에서는 직원 간 불화를 해결하느라 마음이 조급해 졌다. 게다가 6월초에 한 위내시경 건강진단결과는 최종적으로 내일이나 되어야 나오니 뭣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답답하다. 그나마 손주들이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만 수족구병에 감염되어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안타깝다.
손주들을 돌보느라 지난주 내내 신경이 많이 쓰였다. 큰 아이가 유아원에서 감염되어 작은 아이를 안산에서 데려 왔는데 3일 만에 증세가 확인되어 작은 애를 아들에게 데려다주고 큰 아이를 데려왔다가 어제 작은 손주의 첫 돌에 가서 부모에게 돌려주었다. 아직 어려서 자다가 깨면 부모를 찾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제 안산에 가면서 느낀 것은 길에 차가 무척 많다는 것. 기름값이 엄청 올랐는데도 주말 고속도로는 꽉곽 막혔다. 여행자들이 기름 값이 더 오를 여지를 주고 있었다.
오늘은 산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려고 했는데 오랫만에 아내가 집에서 쉰다고 하여 집을 나왔다. 내가 집에 있으면 청소한다고 시끄럽게 해서 싫어 하니. 하산해 집에 가서 구리반지나 한 개 사줘야겠다. 08:23.지축역 지하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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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 생일이라고 집에 왔던 식구들 다섯이 다 가고 아내와 둘만 덩그라니 큰 집에 남겨 졌다. 다 보내고 나니 조용하고 편하긴 한데 뭔가 허전하다.
구파발역에서 내려 버스정거장으로 가니 주말버스가 차고에 있단다. 오늘 운동을 힘들게 하면 일주일이 힘들기에 조금만 걸으려고 했었다. 둘레길로 송추까지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버스가 일찍 왔으면 북한산성입구에서 내려 계곡을 따라 주능선 한 곳을 올랐다 내려왔을 것이지만 주말버스 시간표가 안 나온 바람에 이말산으로 올랐다. 평소에 타던 열차 보다 10분 뒤에 출발하는 차를 탄 것이 나비효과를 냈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고 기온도 높다. 이말산을 오르는데도 숨이 턱에 찼다. 하나고교 앞까지는 2.4키로 정도 된다.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벗었다. 꼭 끼는 런링복을 입은 한 쌍이 휙 지나쳐 가는 걸 그냥 봤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힘이 닿지 않는 걸 어쩌냐.
진관사 앞 한옥마을을 지나쳐 둘레길로 내려섰다. 개울가 은행나무 숲에 누군가가 텐트도 쳤다. 여기서 쉬면서 물에 들락거리면 종일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겠다 싶다. 삼천사로 가는 길과 둘레길로 가는 갈림길에서 고민을 했다. 둘레길을 걸을까, 부왕동암문을 넘을까? 삼천사를 지나며 힘이 들어 돌아나갈까 한 번 더 고민을 했다. 벌써 더워 숨이 턱에 차고 있어서였다. 마음은 쉬고 가자고 하는데 몸은 나를 극한으로 쑤셔 넣고 있다.
19:30 쓰다가 잠이 듬
늘 불편한 돌계단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지났다. 부왕동암문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더 욕심을 부려 폭포 옆길로 해서 사모바위로 갔다가 불광이나 구기동으로 내려갈 생각도 했는데 그쪽으로 가면 10키로도 걷지 못하니 청수동암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길은 북한동으로 내려서면 최소 13키로 정도 된다. 게다가 비봉능선과 청수동암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오르막 막바지에 있고 길 중간에 계곡을 위험하고 불편하게 가로질러야 해서 눈이 나빠지고 난 이후로는 자주 찾지 않던 길이다. 길을 오르다보니 전에도 그랬지만 등산객이 거의 없고 길이 젖어 미끄럽고 풀과 나뭇가지가 길을 거의 차지해 풀잎들을 걷어내며 올라야 했다. 더운데 한 가지 일을 더하며 오르려니 죽을 맛이고 스틱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올라야 했다.
겨우겨우 비봉능선길 바로 아래 우뚝 선 바위에 올라 배낭을 벗고 물을 한 잔 마시는데 뒤에 오던 이들이 올라와 낭떠러지에 자리를 잡았다. 배낭을 벗은 김에 수박을 꺼내 먹으니 피로가 어느 정도 가시는 느낌이다. 한동안 쉰 후 일어나며 보니 앉았던 자리에 물이 흥건하다.
힘이 들어 비봉능선에 오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문수봉에 오를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청수동암문으로 오르는 너덜길 끝자락에 닿으니 내려오던 이들이 길에 말벌집이 있으니 조심하란다. 한 팀은 자신들이 쏘였단다. 참 고맙다. 이 더위에 말벌에 쏘이면 죽음이다. 되돌아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발은 그냥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무계단에 벌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너덜길 아래쪽 작은 바위틈에 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와 벌집과의 거리는 2미터 정도. 오른쪽 옆으로 빙돌아 올랐다. 그리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말해주니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청수동암문 아래 데크길에 기진맥진해 겨우 올랐는데 내려오던 젊은이가 이 길이 문수봉 가는 길이냐며 묻는다. 손가락을 들어 오른쪽 위 하늘을 향했다.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니 잠시 고민 후 뒤돌아서 올랐다. 문수봉까지 그 마포 청년과 같이 올라 사진도 찍어 주며 한참을 쉬었다.
옷은 이미 마른 곳을 찾을 수 없고 모자도 거의 다 젖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지갑도 축축하고 핸드폰도 사진은 찍을 수 있지만 젖어서 전화가 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산을 다 내려가고 나서야 알았는데 전화는 집에 와서 재부팅한 후에 제대로 작동되었다.
문수봉에서 쉬며 얼음물을 만들어 마시고 나서 보니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큰일이다. 휴대용 정수기를 가지고 올 걸. 배낭에 늘 넣고 다니던 300미리 짜리 물병도 없다. 언제 꺼냈는지 기억이 없다. 아껴 먹으며 역사관 앞까지 가면 되는데 고생하겠다. 그곳 자판기에 물이 있긴 한데, 내가 상 먹을까?
한참을 쉰 후 대남문으로 내려왔다. 이젠 바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 오기로 했으니 나도 일찍 가야한다. 대남문에서 옆길로 대성문으로 갔다가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섰다. 최근에 새로 산 4단 레키스틱이 잡으면 짧아서 배낭에 넣을 수 있어 좋은데 충격방지 기능이 없어 전에 쓰던 것 보다 불편하다. 그래도 내려올 때 받는 도움은 불편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계곡에 흐르는 찬 물 덕분에 내려오는 길은 휠씬 수월했다. 수시로 땀을 씻으며 내려오다가 알탕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지난주에 했던 자리는 남이 차지하고 있어서 내려오다보니 배도 고프고 힘도 들고 해서 용학사 아래 계곡으로 찾아 들었다. 그곳도 이미 쉬는 이들로 꽉 차 있어서 겨우 물가의 바위에 앉을 수 있었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물에 담그니 시원함이 머리끝까지 차 오른다. 늘 이런 재미 때문에 힘이 들어도 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이미 다 젖었는데 왜 알탕을 하지 않았나 싶다. 했으면 내려오는 길이 훨씬 시원했을 터인데. 앉을 자리를 물로 씻어 낸 후 샌드위치와 수박을 먹고 발이 시려질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의 내려오는 길은 무더위와 땀 속에 어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 시원한 맥주 한 잔-왜 막걸리가 아닌 맥주였지?- 의 시원함에 대한 생각으로 걸었다.
그렇게 힘겹게 계곡길을 걸어 내려오니 2시가 넘었다. CU편의점의 클라우드를 뒤로 하고 집에 어서 가서 가족과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 줘야 했다. 완전히 땀으로 젖은 옷으로 버스와 열차로 집으로 와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지만 더위를 먹은 느낌으로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자는데 그럴 기운이 없고 작은 손주들 둘을 더 데리고 외식하기도 곤란할 것 같아 인근 중식당에서 배달해 먹고 케이크를 자르는 것으로 파티는 종료. 나는 식구들이 가지마자 피곤에 곯아 떨어져 잠이 깨니 새벽 3시.
이제 다시 힘든 일주일이 시작됐다.
평소 보다 10분 늦게 나왔다.
구파발역에서 바로 이말산 계단을 올랐다.
하나고 앞의 이정표
진관사 입구 둘레길 이정표
오늘 계획엔 없었는데 이길로 왔다.
삼천사 아래 계곡. 물이 참 맑았다.
이른 아침인데 무슨 행사가 있는지 차가 꽉 찼다.
부왕동암문으로 가면 너무 짧아서....
오래전에 아내와 같이 와서 내려가다 쉬던 곳이다.
계곡 제일 위의 물 건너는 곳. 이 위로는 길가에 물이 없다.
청수동암문 앞 암벽 사이로 구파발이 어렴풋이 보인다.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증면사진. 모자까지 젖었다.
대남문
대성문으로 가는 옆길로 내려서며 본 대남문
대성문
역사관 앞
계곡폭포
힘들게 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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