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5.20 행궁지 - 대동문

PAROM 2023. 5. 21. 07:58

4월 8일에 대남문에서 대동문으로 걷고 오늘 5월 20일에 왔으니 42일 만에 북한산에 왔다. 
 
재수술 한 눈이 아주 조금씩 세상에 적응 중이다. 아직은 세상이 수술 전 보다 흐리게 보인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밝고 맑은 세상과 그리운 얼굴들을 못 보는 줄 알고 얼마나 상심 했었는지.... 이제 보름 정도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하고 자기최면 중이다. 제발~~
매일 하던 운동과 매주 하던 등산, 하루 걸러 마시던 막걸리를 모두 한순간에 끊었으니 얼마나 심심했겠는가? 그렇게 지낸 지 어제로 한 달이었다. 
 
더 이상 못 참겠어서 어제 아내에게 토요일에 산에 가겠다고 했다. 반응은 동네 고봉산이나 심학산 정도로 다녀오란다. 몸도 성치 않은데, 병원에서 산보 까지만 하라는데 어딜 돌아다니냐고. 이러면 송창식 노래 가사 일부를 끌어 올  수 밖에. '담배가게 아가씨'의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 그런데 쫌 그렇다. 북한산에 가는데 무슨 대장부? ㅎㅎㅎ 
 
아침에 눈을 뜨니 부엌이 분주하다. 말로는 가지 말라고 했으면서 내 점심거리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중이다. 참외도 깎아 놓았다. 그러고는 오늘 일하는 분들이 일찍 나온다며 7시도 되기 전에 출근을 했다. 덩달아 나도 집을 일찍 나와 역으로 걸어 가는데 전화가 온다. 아내인가 했는데 대구에 가신다는 김정희 감사님이다. 차에서 걸어오는 것을 봤단다. 부지런히 걸어 역에서 반갑게 만나 7시 8분 열차를 탔다. 이 동네에 이사 와서 가장 이른 시간에 열차를 타고 수다를 떨며 북한산에 가는 중이다. 물론 수다는 대곡역까지만.  
 
구파발역에 이른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많다. 시간표를 보니 주말버스는 차고 대기 중이고 송추로 가는 버스가 바로 왔다. 게다가 빈자리도 있다. 내 앞에 섰으니 안 탈 이유가 없다. 북한산입구에서 내려 계곡으로 가다가 들꽃을 보니 8시인데 벌써 일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쉼터에 들린 지도 오래 되었다. 어서 눈이 나아야 한다. 
 
웅성이는 사람들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니 조용하다. 숲이 짙푸르다. 길이 어두울 정도다. 40일이 넘게 있다가 오니 이렇게 변한 것인데 매주 온 그동안은 변함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비가 내린지 오래되어 계곡에 물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조용했던 것이었구나. 다행스럽게도 허리가 아무말도 안한다. 땡큐다. 오랜만에 왔으니 무리하지 말고 걷자 했는데 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왜 자꾸만 앞지르느냐고. 계곡에서 그런 바람에 무리가 되어 오늘 후반의 산행에서 발목과 다리가 꼬였다. 버릇을 고쳐야 되는데....ㅠㅠ 
 
역사관앞 데크 위의 벤치에서 쉬는 것은 이제 빼놓지 못하는 일상이 되었다. 땀에 등판이 다 젖은 스쿼미시 점퍼를 벗어 배낭에 넣고 이어폰과 썬그라스를 꺼내 쓰고 출발. 아직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 눈 상태에 따라야 하니까. 선봉사 앞 비탈길을 오르는데 숨이 가쁘다. 운동을 한 달 넘게 하지 않았으니 드디어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다. 그래도 걷는다. 
 
대피소로 가서 주능선을 걷다 힘들면 탈출할까 하다가 그러면 이 즈음에만 볼 수 있고, 향을 맡을 수 있는 곳을 못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남장대지능선을 먼저 가기로 한다. 그 능선 위에 정향나무가 많아 이 즈음에 가면 그 향기에 넋을 잃을 정도니 안 갈 수가 없다.
백운동계곡에서 행궁지 가는 길로 들어서니 쫓아오고 쫓아 갈 이들이 없어 살 맛 났다. 그러나 체력은 이미 방전이 많이 됐다. 행궁지 옆 비탈을 올라 잠시 쉬면서 스틱을 폈다. 스틱 없이는 무리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쓰는 스틱이 어색하지만 다리 힘을 많이 덜어 주니 계속 오를 수 있었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 옆에 이 계절에 진달래는 아닌 것 같고 철쭉인듯 한데 꽃이 다 떨어지고 한 송이만 남았다. 애처롭고 아름다워 사진을 남겼다. 진작에 보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이 길 거의 끝에 있는 비탈의 로프를 잡지 않으려고 우회를 하다가 더 고생을 했다. 미끄러지고 긁히고 부닥치고 낙엽에 빠지고 거리도 길어 지고.
능선이 아직 멀었는데 정향나무  비슷한 잎에 하얀꽃이 솜털처럼 피어 오른 것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향을 맡으니 구린내? 노린내가 난다. '모야모'에 물으니 냄새 대로 노린재나무란다. 
 
나월봉이 보이는 낮은 능선 나무에 흰색과 보라색이 담긴 꽃들이 삐죽하게 피었다. 향을 맡으니 없다. 다른 조금 더 핀 꽃의 향을 맡으니 정향이다. 정향나무는 활짝 피어야 향기가 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정향나무꽃이 피었나 살피며 걷다가 보니 어느새 능선 바로 아래다. 앞의 큰 바위만 넘으면 남장대지능선 끝의 편한 길들이 펼쳐진다. 남은 힘을 짜내어 겨우 능선에 올랐다. 다리 힘이 풀린 후이니 힘든 것이 정상이겠다. 운동을 매일 해야 하는데 눈수술을 핑게로 그러지 못한 탓이다. 
 
능선을 걸어 우리 동네가 보이는 남장대지 앞 탁 트인 장소에 도착해 동네 쪽을 보니 뿌옇다. 탄현역 옆 제니스빌딩이 보이지 않는다. 나 살아생전에 맑은 하늘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이웃을 잘 둬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 걱정이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문수봉에 올라 삼각산을 보니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웃는다. 배낭을 벗어 흠뻑 젖은 등을 바람에 맡겼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이들로 소란스러워 대남문으로 내려 갔다. 이제부터 어디로 내려갈 지 고민을 한다. 
 
지금 내려가는 것이 좋지만 너무 짧다는 생각에 성곽을 따라 대성문으로 향했다. 스틱이 있으니 내려가는 길이 참 편하다. 물론 오르는 길에서도 몸을 의지하니 좋다. 균형을 잡아주니 발이 삐끗거리지도 않는다. 이 능선엔 병꽃나무꽃만 조금 있었다. 대성문을 그냥 지나쳐 보국문으로 향했다. 이정표 상으로 여기서 북한동 까지 계곡으로 바로 내려가면 5.2키로 인데 보국문으로 내려가면 5.1키로다. 더 많이 걷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봉우리를 세 개 넘어야 해서 힘은 더 들지만 능선에서 보이는 풍경이 참 좋다. 이 구간에 전망대가 두 곳이나 있기도 하고 꽃들이 많은 구간이니 그냥 빼고 가기는 아쉬운 곳이다.  
 
보국문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가림막 너머로 보니 석재가 많이 올라간 모습이 보였다. 내려가는 길이 험한 이곳보다 조금 더 걷더라도 대동문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바로 위의 봉우리만 오르면 대동문까지는 내리막길이고 완만한 흙길이다. 비틀거리기 시작한 다리에 대피소에서의 하산을 포기하고 계곡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돌들로 걷기 힘들다. 흔들리는 돌도 많아 스틱이 없었으면 발목을 다치거나 크게 넘어질 뻔했다. 계곡의 큰길을 만나니 다리가 따로 놀려고 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너무 많이 걸었나보다. 산에 들어와 네 시간이 되도록 5백미리 물 반 병과 사탕 한 개 먹은 것이 전부다. 8시 부터 걷기 시작해서 정오가 됐으니 배가 고프기도 하다. 
 
늘 앉아 쉬던 용학사 아래 계곡의 물 한가운데 바위에 배낭을 내렸다. 물이 많이 줄어 겨우 쫄쫄 소리를 낸다. 내가 나타나자 물속을 휘젖던 버들치들이 황급히 도망친다. 바위 끝 그늘진 자리에 앉아 참외와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이제 다시 걷자. 집을 향해서.
이 시간에 내려가면 늘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고 실제 많은 친구들을 만났었다. 오늘도 같은 기대를 했지만 산악회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간이 다 되도록 아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역사관까지 내려왔다. 전에는 데크에 올라 쉬었는데 오늘은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고 힘이 들어 편한 찻길로 내려오려다 나를 지나친 누군가를 찾기 위해 계곡길로 내려섰다. 그런데 내려서자 있는 너른 공터에서 수도권산악회 일행들과 식사 중인 단풍을 만났다. 같이 산행을 많이 했지만 단풍을 산속에서 따로 만난 것은 처음이다. 놀랍도록 무척 반가웠다. 역시 산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눈이 완쾌되는 다음달 쯤에 올빠들과 산을 걸어야겠다. 단풍을 만난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힘든 줄도 모르고 산을 내려왔다. 이럴수도 있구나. 
 
집에 와서 샤워를 한 후 시원한 음료수-맥주였으면 더 좋았을- 한 잔하고 쉬다 깨니 새벽 2시다. 이제 다시 부지런히 산에 다니고 다음주부터는 헬스장에 가서 열심히 쇠질을 하자.

 

42일 만의 산행. 나무들이 옷을 다 입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걸어보자.

숲이 우거져 길이 어둡다.

수문자리에서 보는 원효봉. 계곡에 물이 말랐다.

빈약한 물에 폭포가 안쓰럽다.

나뭇잎이 우거져 중성문이 거의 가려졌다.

용학사 앞으로 가는 옛길로 바로 오르는 바윗길. 내가 네 발로 애용하는 길이다.

계곡 건너의 큰바위얼굴이 나뭇잎들에 가려졌다.

산영루 주변이 푸르다.

행궁지 발굴과 복원을 하는 데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월봉이 보였다.

아직 덜 피어 향기가 나지 않는 정향나무꽃

이제 능선에 다 올라왔다.

철 지난 철쭉이 아직도 아쉬움이 남았나 보다.

남장대지 끝자락의 흙길. 참 걷기 좋은 길이다.

청송대에서 바라본 주능선 파노라마

잎이 정향과 비슷한 노린재나무의 꽃

이 바위를 넘으면 조금 위에 남장대지능선이 있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낭떠러지 앞에 핀 정향나무꽃

의상능선의 끝 나한봉과 그 너머의 고양시

상원봉 앞에서 보는 삼각산

청수동암문 앞으로 구파발이 보인다.

문수봉으로 가는 길에 핀 병꽃나무꽃

오랜만에 문수봉에 왔다.

비봉능선

구기동계곡

대남문이 숲에 숨었다.

대성문은 그냥 지나쳤는데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을 마셨어야 했다.

지나온 길들이 벌써 멀어졌다.

오늘 걸은 길 중에서 이 정향나무가 향을 가장 많이 뿜었따.

남쪽전망대 앞으로 형제봉과 백악, 인왕, 안산이 보인다

제일 왼쪽의 보현봉을 빼고 능선을 따라 걸은 길이 한 눈에 보인다.

북쪽전망대. 나무가 잎이 무성해지면서 시야를 가렸다.

칼바위에 사람들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국문 공사현장. 많이 복원이 되었다.

칼바위와 형제봉

대동문 모습. 이제 지붕이 올랐다.

역사관 앞

다 내려왔다.